제2회 해미백일장 임지은 님 입상작

4년 차 요양 보호사 일을 하면서 이름이 참 많아졌다. 예리 엄마, 선생님, 보호사, 언나 엄마, 새댁이. 어르신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싫어하기도 하고 익숙한 것이 좋으셔서 앞에 일하신 분 그대로 부르다 보니 이름이 많아진 이유다.
오후에 방문 요양하는 어르신은 80대로 대학 교육까지 받으신 분이다. 앞에 일한 요양 보호사를 선생님이라 불렀다고 선생님으로 부른다고 하셔서 편하신 대로 불러달라 했다. 고관절 수술 시기를 놓쳐 거동이 불편해 외출 시에는 휠체어로 이동하고 주로 집에서 홈쇼핑을 보며 주문하고 커피를 즐겨 마시는 어른이신데 최근에 홈쇼핑 주문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주말 지나고 오면 택배가 8~10개씩 오고 카디건, 가방, 신발, 팬츠, 스카프 등 금액대도 다양했다.
할아버지 말씀으로 새벽 3시까지 잠도 안 자고 쇼핑을 하신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홈쇼핑 못 하게 카드를 가져가 버리자 그다음부터 문제가 생겼는데 어르신이 입을 닫아 버리고 횡설수설하고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고불고하셨다. 주말에는 의식이 없이 쓰러져 입원하고 퇴원을 했다고 한다.
우울증처럼 입을 닫으셔서 병원에서 치매 검사도 했는데 입을 전혀 열지 않으셨고 MRI 검사도 해봤지만 문제는 없었다. 며칠 뒤 거짓말처럼 정상으로 돌아오셨는데 할아버지가 홈쇼핑 못 하게 카드를 가져가서 너무 자존심 상하고 선생님 앞에서 자기 체면을 살려주지 않은 할아버지가 너무 밉다고 하셨다.
자기 돈으로 물건을 산 건데 기분이 안 좋아 말을 안 했고 여태껏 할아버지한테 쌓인 게 폭발해 아픈 척을 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를 말리지 않고 방관만 한 나에게도 화살이 돌아와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정말 걱정되어 이리저리 병원 뛰어다닌 것을 생각하면 허탈하기도 했다.
진심이 외면받을 때 풍선에 바람 빠지듯 힘이 빠져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허탈감이 왔고 어르신과 배우자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할 때가 많다.
치매 어르신을 1년 정도 모신 적이 있었는데 육체적으로 힘든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돈이 없어졌다고 하루에도 여러 번 옷장을 뒤지고 심지어 가방도 보여준 적이 있으며 가방을 방에 들고 가지 않은 적도 많다. 가족들이 이해를 해주면 그나마 위안이 되는데 의심하는 눈빛이 많다.
이 일을 하면서 고충도 많지만 그중에서 내 의견과 상관없이 어르신이 입원하거나 돌아가셨을 때 실직자가 되지만 실업급여를 타기도 사실상 어렵다. 퇴직금도 60시간을 일해야만 나오고 일선에서 문제가 발생 시 하소연할 곳이 없는 것 또한 문제다. 소속 센터에 이야기하면 바로 일자리를 잃게 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건강보험공단, 소속 센터 사이에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있다.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불안감은 늘 존재하고 6시간(두 타임)을 일해도 월급은 부업 수준밖에 안 되고 시간 외 초과근무 수당도 없다 보니 요양 보호사 자격증 취득률은 높지만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요양 보호사는 적어지고 기피 직종이 되고 있다.
올해부터는 요양 보호사 보수교육(10월)을 내 돈을 주고 들어야 하고 심지어 주말을 이용해 9~6시까지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고 한다. 점심도 내 돈을 주고 주문하거나 싸 와야 된다고 연락이 왔다. 요양 보호사 처우개선 문제에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힘 빠지는 소리다.
21세기에 이렇게 도태되어 가는 직업이 어디 있으며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래 일하는 요양 보호사가 없을뿐더러 젊은 사람이 취업 문을 두드리기 힘든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양 보호사 나이대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고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요즘은 ‘생로병병병병노쇠돌봄요양’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의학 기술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장수하게 된다는데 장수는 축복인가 재앙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