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룬티코노미스트' 한익종 작가
나무젓가락으로 그린 해녀 작품
24일 이상서전서 북콘서트 개최
"내가 만든 이벤트로 3막 즐기기"

"인생 3막에 접어들었어요. 타인이 시키는 대로 사는 낙타의 삶이 1막, 피 튀기는 직장생활 중인 사자의 삶은 2막이죠. 은퇴 후 맞이하는 3막은 모든 걸 내려놓고 봉사‧기여‧공헌에 집중하는 삶, 마치 '어린아이' 같은 삶이에요. 제가 제주도로 내려가 나무젓가락으로 해녀 그림을 그리는 이유죠."
신간 <발룬티코노미스트> 작가 한익종은 1959년생이다. 그는 1986년 삼성 그룹에 입사해 이건희 회장 비서실에서 '삼성신경영 전도사'란 별명을 얻으며 '사자와 같은 삶'을 살았다. 삼성화재를 끝으로 50살이 되던 해 퇴직을 결정했다. 그렇게 인생 2막을 마무리했다.
한익종 작가가 5월 24일 서촌에 위치한 북카페 '이상서전'에서 신간 '발룬티코노미스트' 북콘서트를 개최했다. /김현우 기자
제주도에서 폐가를 고치며 은퇴 후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을 '인생 3막'이라고 한 작가는 부른다. 2년여에 걸쳐 펴낸 <발룬티코노미스트>는 봉사란 의미의 '발룬티어(Volunteer)'와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이코노미스트(Economist)'가 합쳐진 용어다. 봉사에도 수익은 필요하다. 활동 유지와 추진을 위해선 이익이 뒷받침돼야 한다.
'발룬티코노미스트'는 한 작가가 만들어 지난 2021년부터 사용했다. 책 <발룬티코노미스트>는 인생 후반부에 봉사‧기여‧공헌하는 삶의 방식을 강조한다.

"인생 후반부를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 고민해 보니 나만 잘 먹고 잘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만 먹고 살겠다는 사람은 모두 불행하더라고요. 봉사‧기여‧공헌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봉사는 이타를 통한 이기주의의 실현이에요. 결국 내가 이익이 있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봉사(Volunteer)에 이코노미스트(Economist)를 합치니 '발룬티코노미스트'가 되었습니다."
한 작가는 제주로 이사해 제주 해녀들 곁에서 해녀 그림 그리기, 환경보호 활동, ESG 전파 활동 등을 하고 있다. 해녀 그림 화가, 비치코밍아티스트, ESG 아티스트, 환경보호 활동가, 칼럼니스트, 생애 재설계 강사, 도시재생 컨설턴트 등 일명 ‘N잡러’로 누구보다 인생 3막을 즐기고 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지난 24일 금요일 저녁 서촌의 작은 북카페 '이상서전'에서 한익종 작가와 권혁주 이상서전 대표가 독자들을 만났다.
권혁주 대표는 프리랜서 방송인이다. 매주 신간을 소개하는 이상서전 서점의 대표를 맡고 있다. 북콘서트는 권혁주 대표가 진행을 맡았다.

권혁주: 책 '발룬티코노미스트'를 아우르는 키워드는 '인생 3막'인데요. 먼저 작가님의 인생 3막에 대한 얘기로 토크를 시작할게요. 50살이 되시던 해에 회사를 그만두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른 나이의 은퇴라 주변에서도 작가님 본인도 걱정이 따랐을 것 같은데요. 결심한 이유와 후회의 순간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한익종: 1986년 입사해 2009년에 사표를 냈습니다. 돌이켜보면 나이 50세가 되던 해에 사표를 내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전까지는 남이 만들어준 삶을 사는 기분이었어요. 50세 이후 나의 삶은 스스로 만든 이벤트로 가득 차기 시작했죠. 우연히 TV에서 한 단막극을 봤어요. 직장에서 임원이 안 되어 지방으로 좌천되는 내용이었죠. 일 년 동안 죽기 살기로 달리다가 다시 본사로 복귀해 임원이 된 후 사표를 던지고 나오는 등장인물의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나는 쫓겨나지 않고 스스로 나오겠다는 다짐을 한 계기가 됐죠. '토사구팽당하지 않겠다.' 그렇게 스스로 회사를 나오게 됐어요.
권혁주: 인생 3막이라는 용어를 책에 넣으신 이유, 또 3막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신 배경이 궁금하네요.
한익종: 삶의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눴죠. 시키는 대로 따르면 되는 낙타와 같은 삶,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사자와 같은 삶, 그리고 현재 제가 속한 3막, 마치 어린아이 같은 삶. 남들 사는 걸 보니 은퇴 후에도 인생 1막, 2막과 같은 삶을 살면서 생을 허비하더군요. 막이 바뀌었으면 행동도 바꾸자. 그래서 은퇴 후 삶을 인생 3막으로 정했죠. 연령이나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관의 문제에요. 나이가 제 또래여도 아직 회사 생활을 하는 사람은 인생 2막, 반대로 나이가 어려도 직장생활과 다른 자기만의 삶을 산다면 3막을 살고 있는 거죠.

권혁주: 일찍 은퇴하시고 인생 3막을 즐길 수 있는 데엔 노후 대책이 어느 정도 마련돼 있어서 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을 거 같아요.
한익종: 발룬티코노미스트로 먹고 살 수 없어요. 욕심을 내려놓지 않는 한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충족되지 않아요. 욕심을 내려놓으니 얼마가 들어오든 수입은 문제가 안 되더라고요.
한 작가는 인생 3막을 시작하며 2019년 제주도로 이사했다. 3막을 제주에서 시작한 이유를 묻자 '안락함'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육지에 있을 때 집이란 본인의 '껍데기'였다고 표현했다. 껍데기가 한 작가를 좌우했다. 껍데기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은 채 제주도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처음 느낀 안락함이 한 작가를 사로잡았다.

권혁주: '제주' 하면 떠오르는 게 바로 해녀죠. 이상서전 공간을 둘러보시면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이 한 작가님이 직접 그리신 제주 해녀 모습입니다. 그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소통하고 표현하게 된 계기, 나무젓가락과 골판지를 도구로 택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한익종: 사람들은 해녀의 삶을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그런데 그 삶이 인류 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는 꽃을 피웠어요. 그것처럼 남들이 우습게 생각하고 쉽게 버리는 재료를 재활용해 예술로 표현할 수 있는 것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중 하나가 나무젓가락이죠. 문득 자장면을 먹다가 젓가락을 자장 국물에 찍어서 냅킨에 그려봤어요. 터치감이 투박한 게 절실한 삶을 사는 해녀들을 표현하기 딱 좋겠다 싶었죠. 돈도 아끼면서 환경 보호도 되고, 자원 재활용도 하면서 해녀의 삶을 적나라하게 나타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권혁주: 자장면을 드시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리신 게 신기합니다. 그러한 영감과 원동력을 어디서 받으시는지 궁금한데요.

한익종: 결국 자신이 택한 삶의 자세에서 온다고 봐요. 삶에 대한 열정. 다만 혼자만의 열정이 아니라 이웃과 나누는, 함께 즐기는 열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열정이 식으면 만사가 귀찮아지죠. 꾸미는 것도, 사람 만나는 것, 먹는 것도 힘들어요. 그럼 병들 수밖에 없죠. 나이가 드는 것을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간다'고 생각하자는 겁니다. 열정을 불태우면서 원동력과 영감을 찾아가요.
권혁주: 그렇다면 작가님의 열정으로 가득 찬 일상이 어떤지 궁금해지는데요. 보통 하루 루틴,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한익종: 저는 똑같은 걸 싫어합니다. 어제 걸었던 데가 아닌 새 길을 가고 싶어 오늘은 다른 길로 가요. 한마디로 정해진 루틴이라는 게 없죠. 닥치는 그 순간에 집중하다 보니 작업장도 따로 없어요. 바닷가에 가든 산속에 가든 그 자리에서 작업을 시작하죠. 순간 떠오르는 감상으로 일상을 채워갑니다.
권혁주: 작가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발룬티코노미스트가 한창 유행하는 ESG 개념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익종: 당연히 연관이 있습니다. 환경과 인간이 함께하는 삶을 지향하고, 자원을 아끼면서 합리적인 아웃풋을 만들어내니까요. 개인의 ESG 실천이 곧 발룬티코노미스트고 발룬티코노미스트가 ESG 실천이라고 봅니다.

한 작가는 제주 해녀도 곧 ESG와 연관된다고 했다. 날로 황폐해지는 바닷속 오염으로 인해 해녀들의 수확도 줄어드는 것이 빤히 보였다. 한 작가는 이런 상황이 늙어서 현장을 떠나는 해녀들의 삶과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생계 지원이 안 되니 해녀들도 줄어들고 있는 것. 이처럼 발룬티코노미스트와 해녀 문화, ESG는 떼 놓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했다.
제주 해녀는 곧 한 작가의 인생 3막 멘토이기도 하다. 물질을 한다는 것은 곧 칠성판을 짊어지고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쓰는 일. 그만큼 위험한 일이지만 해녀들에게 바다는 즐거운 집이자 놀이터다. 그들은 이웃과 사회, 국가를 위해서 물질한다.
한 작가 스스로 '국내 최고 기업' 삼성에 다니면서 자식까지 다 키워놓고 불평‧불만하는 게 이해가 안 간 순간이었다. 그렇게 해녀는 한 작가 인생을 바꾼 멘토가 되었다.
발룬티코노미스트와 해녀에 대한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독자들은 인생 3막에 대한 질문을 시작했다.

권혁주: 사전에 독자분들에게 받은 질문들이 있습니다. 작가님께서 지금까지 인생 3막에 대한 얘기를 쭉 해 주셨는데, 막상 시작하기 전 두려움이 앞설 수 있잖아요. 3막에 대한 준비는 언제부터 시작해야 하고, 첫걸음을 무엇으로 떼보면 좋을지 많은 분이 궁금해하세요.
한익종: '언제부터 준비해야 하지' 고민이 든 순간, 연령 상관없이 바로 그때부터 시작하셔야 합니다. 저는 현재 제주에서의 삶이 인생 3막 2장인데요. 각본은 없습니다. '각본 없는 인생을 어떻게 미리 준비하나' 싶죠. 우선 본인이 즐기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 즐길 수 있는 것. 골프도 혼자가 아닌 4명씩 치잖아요. (웃음)

권혁주: '지금부터 바로 준비하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 작가님 따님분도 오셨는데요. 따님을 포함한 아직 인생 2막에 있는 인생 후배들한테 한 말씀 해주신다면.
한익종: 제 딸을 포함한 대부분의 젊은 분들이 저한테 하는 말이 있어요. 저처럼 내려놓지 못하겠다고, 욕심을 버리는 삶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답했어요. 여러분은 그 나이, 위치에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있는 겁니다. 인생 2막을 치열하게 사는 사람보고 '욕심을 버리고 경쟁하지 말아라'라고 한다면 인류는 멸망하겠죠. 현재의 치열한 삶은 직장인이 반드시 거쳐야 할 프로세스니까요. 아무도 못 피합니다.
단, 그 삶 속에서 미래 자신의 3막을 위해 '무엇을 가져가야겠다'라는 생각을 꾸준히 하는 인생이면 됩니다. 젊은이들이 현재 저와 같은 삶을 산다면 그건 젊은이가 아니죠. (웃음) 각자 위치에 맞는 인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