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동서고금]
소비자물가 3.5%·중동 지정학적 위기 직면
피벗 시기 지연 전망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
가계·기업 채무 부담 소비·투자↓정부 예산↓
경기 침체 주가 하락 견인···대형 은행 실적↓

최근 어느 유명 경제분석 전문가는 “미국 경제에 최대의 위험 요소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이라고 말했다. 작년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파월 의장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 통화정책 방향의 변경을 뜻하는 피벗(pivot)을 강하게 시사했다.
2022년 3월 이후 시행하던 금리 인상을 통한 통화 긴축 정책을 중지하고 향후 금리를 인하하는 완화적 통화정책을 실시하겠다는 메시지였다. 피벗의 이유를 그는 미국 경제가 견실한 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물가가 지속해서 하락하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실제 당시 미국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3.2% 오르는 데 그치고 있었다. 2022년 6월 9.1%에서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었다. 그 이후에도 파월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 말했다. 금융시장은 그의 금리 인하 시사 발언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때 5%를 넘보던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는 3.8%까지 하락했고 4100포인트 붕괴가 임박했던 S&P500 주가지수는 5250포인트까지 상승했다. 실질경제성장률이 3.4%에 달하고 엔비디아를 비롯한 인공지능(AI) 관련 주식이 월등한 실적을 연달아 내놓으면서 자본시장 랠리를 막는 장애물은 없는 듯했다.
4월 첫 주 발표된 고용시장 지표가 예상보다 강했지만 시장은 부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파월 의장이 했던 금리 인하 약속의 힘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둘째 주 발표된 소비자물가에서부터 이상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3.5% 상승했다. 작년 여름 이후 처음으로 물가 오름세가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그다음 주 발표된 소매판매지수(retail sales)는 물가에 대한 시름을 더했다. 시장 예상을 깨고 미국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0.7% 증가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란이 드론과 장거리 미사일로 멀리 떨어진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공격했다. 이스라엘의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 폭격에 대한 보복이었다. 이스라엘이 맞대응을 공언하면서 국제유가가 불안해졌다.
올해 가을 대선을 앞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직접 통화해 적극적으로 보복을 만류하면서 긴장이 극한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마스 전쟁 이후 이스라엘과 친이란 세력 간에 주고받기식 보복이 이어지면서 지정학적 위기가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비둘기파의 색채를 노골화한 파월 의장도 한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워싱턴 소재 윌슨 센터에서의 패널 토론에서 파월 의장은 금리 인하 시점이 예상보다 늦춰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현재 단기국채 금리가 5%를 상회하는 고금리 기조가 금년 하반기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고금리는 실물경제 전반에 걸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가계와 기업은 늘어난 채무 부담으로 소비와 투자를 줄인다. 정부도 발행한 국채의 금리 부담이 커져 복지 등 여타 분야에 지출해야 할 예산을 축소해야 한다.
고금리가 자본시장에 미치는 여파는 보다 직접적이다. 미래에 수취할 현금흐름을 시장금리로 할인한 현재가치로 산정되는 주식과 채권의 가격은 직격탄을 맞는다. 금리가 오르면 미래에 벌어들일 현금이 보다 큰 폭으로 할인돼야 하기 때문이다.
미래에 수취할 이자와 원금이 정해져 있는 채권 가격은 금리와 정반대로 움직인다. 금리가 상승하면 채권 가격은 예외 없이 하락한다. 주식은 다른 가능성이 존재한다. 미래에 벌어들일 현금이 금리 상승을 상쇄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 주가는 상승한다.
최근까지 AI 및 반도체 관련 주식의 높은 매출 성장 기대가 주가를 견인해 온 이유다.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기업이 AI 관련 투자를 지속해서 늘릴 수 있도록 경제가 버텨야 한다. 고금리의 부담은 경기 침체 가능성을 높여 이 전제의 충족을 어렵게 한다.

최근 발표된 미국 대형 은행의 실적은 이런 우려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JP 모건과 골드만 삭스 등 대형 은행은 채권 인수와 같은 투자은행 부문 수익이 크게 늘어나며 은행 전체 실적이 시장 전망치를 상회했다. 하지만 은행 본연의 업무를 뜯어보면 예외 없이 고금리의 부작용에 노출되어 있다.
작년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 은행이 파산하고 지역 은행이 어려움을 겪자 예금이 보다 안전한 대형 은행으로 몰려갔다. 예금에 대하여 매우 낮은 금리를 지급하는 대형 은행은 쾌재를 불렀다. 고금리로 대출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저금리 수신이 증가하면 예대금리차가 늘어나 대출의 이자 마진이 증가한다. 따라서 은행의 수익성이 개선된다.
그 덕택에 최근까지 JP 모건을 비롯한 대형 은행의 주가는 견조한 상승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고금리가 대형 은행의 수신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드러났다. 보다 높은 금리를 수취하기 위해 머니마켓펀드(MMMF) 등으로 예금이 이탈하고 있다.
예금을 통한 수신이 줄어들면 은행은 양도성예금증서(CD)나 채권을 고금리로 발행해 유동성 부족을 메워야 한다. 은행의 예대마진은 감소하고 수익성이 악화해 주가는 하락한다. 이를 모면하려면 대출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은행이 여신 금리를 올리면 돈을 빌리는 가계와 기업의 부담이 커지고 연체와 부도가 늘어난다.
여신 연체율의 상승은 은행의 수익성을 깎아 먹고 자본 적정성을 위협한다. 은행은 수익성 추구보다 위험관리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경영전략을 변경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경제에 대한 원활한 자본공급을 어렵게 한다. 시간이 갈수록 가계, 기업과 은행 모두 재무 상황이 악화하게 된다.
고금리 부담은 가랑비와 같이 처음에는 그 고통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고금리가 장기화하면 몸속에 나쁜 지방이 축적되듯이 경제의 효율성이 서서히 떨어진다. 이를 감지한 자본시장이 폭락하면 금융위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뱅킹 크라이시스가 경기 침체로 번지면서 고통이 배가된다. 현재 관건은 지정학적 안정을 확보하는 것이다. 중동 정세와 이를 다루는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을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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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