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조원대 기술 수출로 증권계 '잭팟'
임성기 회장 작고 후 불거진 남매 갈등 심화
5000억원 대 상속세 해결책 갈등의 씨앗
3월 28일 주총서 남매 갈등 1차전 마무리

'초대형 계약으로 잭팟!'. '한국 제약사를 새로 썼다!'. 9년 전 2015년 11월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에 한미약품이 약 5조원대 기술을 수출했다는 소식이 나오자 증권가가 들썩였다. 계약 금액만 39억 유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4조 8000억원. 국내 제약 사상 최대 규모 수출이다.
'잭팟'을 터뜨린 한미약품은 계약금만으로 4년치 연구개발 비용을 모두 충당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2012년부터 2015년 3분기까지 한미약품의 모든 R&D 투자금을 더한 금액(4971억원)보다 기술 수출 '한 방'으로 받은 계약금이 더 많았다.
2014년 약 6만원대였던 한미약품 주가는 1년 만에 70만원대로 치솟았다. 2015년 주식시장은 한미약품이 주인공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약 8년이 지난 지금 회사의 주가는 절반가량 떨어졌고, 한미약품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가족전쟁', '가처분신청', '주주총회', '상속권' 등 어수선한 단어가 가득한 상황이다.
'라이징스타'였던 한미약품에 이상기후가 생긴 건 2020년 창업주 임성기 회장이 별세하면서부터다. 임 회장은 개량신약 기술로 세계 시장을 뚫었다. 당시 한국은 신약 볼모지였다.
임 회장이 별세하자 부인인 송영숙 회장을 중심으로 회사 지배구조를 재정비 했다. 세 자녀 모두 한미약품 사장에 오르면서 한미약품의 2세 경영 시대 도래를 알렸다. 상속으로 인해 최대주주가 송영숙 회장으로 바뀌었지만 삼 남매의 지분율 순위는 당시 전과 동일했다.

'잭팟' 우량기업 한미 뒤 흔든 상속 분쟁
'잘 나갔던' 한미약품엔 잡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고 임 회장의 뜻을 이어 받아 꿈을 키우던 삼남매는 갈라섰다.
고 임 회장의 지분 상속 결과 송영숙 회장 11.65%, 장남 임종윤 사장 8.92%, 장녀 임주현 사장 8.82%, 차남 임종훈 사장이 8.41%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이후 임종윤 사장이 자사주 매입으로 8.94%까지 지분을 늘렸다.
임종윤 사장은 미국 보스턴칼리지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버클리음대에서 재즈작곡분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00년 한미약품 전략팀 과장으로 입사해 2004년 북경한미약품 기획실장으로 승진했다. 그해 북경한미약품 부총경리(부사장)를 맡았고, 2006년 총경리(사장)에 올랐다.
임주현 사장은 1974년생으로 미국 스미스칼리지 음악과를 졸업한 후 2007년 한미약품 인재개발팀(HRD) 팀장으로 입사했다. 임종윤 사장이 신약후보물질 발굴에 초점이 맞추었다면 임주현 사장은 한미약품이 개발하는 신약에 대한 글로벌 전략을 수립했다.
막내 임종훈 사장은 한미헬스케어 대표이사와 CVC(대기업이 출자한 벤처캐피털) 한미벤쳐스의 상근대표도 맡고 있다. 앞서 고 임 회장과 한미IT는 2016년 7월 각각 50억원씩 출자해 바이오 분야에 투자하는 한미벤쳐스를 설립했다. 지난 2018년 SK(주)와 손잡고 의료 데이터업체 ‘에비드넷’에 100억원을 투자했다. 임 사장은 한미약품그룹의 오픈이노베이션을 위한 바이오 벤처 투자의 주축을 맡았던 셈.
평화로웠던 세 남매의 경영 일지는 고 임 회장이 작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지부진해지기 시작했다. 고 임 회장 사망 후 5400억원이 넘는 상속세에 대한 리스크 극복과 함께 신약 연구개발(R&D) 기업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했던 상황이 갈등의 불씨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 임 회장의 부인 송 회장과 임주현 사장 모녀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화학, 태양광 등 이종 사업을 하지만 대기업으로서 든든한 자본력을 보유한 OCI그룹과 제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

임종윤·종훈 사장은 제약부문 비전문가로 구성된 한미사이언스 이사진이 구체적 계획 없이 OCI그룹과 통합을 추진했다며 경영복귀 의사와 함께 지분 경쟁을 선언했다. 이달 28일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 복귀해 OCI그룹과 통합 계획을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OCI통합 과정에서 배제된 형제가 반발하면서 양측의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송 회장 측은 오히려 임종윤 사장의 불성실한 경영스타일을 지적했다. 임 사장이 한미사이언스 대표로 지낸 10년간 거의 회사로 출근하지 않았고 한미약품사이언스와 한미약품 이사회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양측 모두 창업자인 고 임 회장이 강조해 온 글로벌 신약 개발 유지를 이을 적임자로 자신들을 앞세웠다.
3월 28일 정기주주총회서 결판
이들의 경영권 분쟁은 28일 정기주주총회에서 판가름 날 예정이다. 발행주식 총수의 3% 이상을 보유한 주주가 제안한 안건은 주총에 자동으로 상정된다. 이에 따라 두 형제의 이사회 선임 안건은 주총에서 표결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임종윤·종훈 사장 측의 우호지분은 28.4%으로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포함한 모녀 측 우호지분 31.9%보다는 적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다만 OCI그룹은 대기업 집단에 속하고, 대기업 집단의 공익법인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OCI와 통합을 결정한 가현문화재단(4.9%)과 임성기재단(3%)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고 임성기 명예회장의 고교 후배로 알려진 신동국 한양정밀화학 회장 지분 12.15%를 우호지분으로 확보하기 위한 양측의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외에도 업계는 양측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한미사이언스 지분의 21.00%를 차지하는 소액주주들을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물밑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한미약품은 창업자가 작고하자마자 유족 간 갈등이 시작됐고 상속세 해법을 제대로 못 찾은 데다 회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이견도 극복하지 못했다. 주총이 끝난다 해도 전망이 밝을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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