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조부모 육아휴직 도입 타당성 검토
'황혼육아 조부모' 72% '비자발적 육아 참여'
"돌봄 의무 부과하는 정책 메시지 주는 것"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 /셔터스톡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 /셔터스톡

# "요즘 애들은 다 맞벌이다 보니 손주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돌보게 됐죠. 그렇다고 돌봄 인력에 맡기기는 싫고요. 금쪽같은 아이들이니 마냥 거절할 수도 없죠. 돌봄에 대한 보상도 없어요. 그냥 돌보는 거죠. 내 자식의 자식이니까."

일명 '황혼육아' 추이가 늘어남에 따라 정부는 '조부모 육아휴직' 제도 도입을 논의 중인데, 자칫 돌봄 부담을 조부모 세대에게 전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8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조부모 중 절반 이상은 손자·손녀 돌봄에 '비자발적'으로 참여 중이다. 지난 2022년 8월 29일 이투데이피엔씨가 여론조사 기관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2022 황혼육아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경기·인천에 사는 만 55세 이상 '황혼육아 조부모' 302명 중 응답자의 72%는 손주 육아에 대해 "비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답했다. 

이들은 평균 주 3회 이상, 하루 6.8시간 1년 이상 손주를 돌봤다. 손주 돌봄 대가로 자녀에게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경우는 46%. 보상 금액은 월평균 33만원에 불과했다. 

황혼육아 추이도 상승세다. 지난해 6월 27일 통계청이 낸 '무급 가사 노동 평가액의 세대 간 배분 심층분석' 자료를 보면 2019년 기준 65세 이상 노년층 가사 노동 생산액은 80조9000억원으로 2014년 9조2040억원에서 큰 폭으로 늘었다. 

노년층의 손주 돌봄도 가사 노동 생산을 늘렸다. 1인당 가사 노동 생산액은 15세부터 점차 증가해 38세(1691만원)에 최대로 올랐다가 감소한 뒤 퇴직 후 다시 높아지는 ‘M’자형으로 나타났다. 손자녀 돌봄과 퇴직 후 가정관리(음식·청소·세탁 등)에 할애하는 시간이 늘면서 1인당 가사 노동 생산액은 66세에 1205만원으로 증가했다.

노년층이 따로 사는 손자녀를 돌보는 데 들어간 노동 가치도 3조원을 넘었다. 2019년 기준 가구 간 순유출된 노년층의 가사 노동 규모는 총 3조7000억으로 이 가운데 약 3조1000억원이 오롯이 가족 돌봄에 쓰였다. 조부모가 같이 살지 않는 손자녀를 돌보는 데 투입한 노동의 가치가 3조1000억원에 달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조부모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해 돌봄 공백을 메꾸겠다는 계획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7월 조부모 육아휴직 제도 도입 타당성을 살펴보기 위해 ‘근로자 모성보호제도 확대’에 대한 정책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당시 노동부는 입찰 공고에서 "조손가족이 상당수 존재하고 최근 맞벌이 부부 증가 등으로 조부모의 손주 돌봄이 증가하고 있어 가족 돌봄 휴직, 육아휴직 등 일·가정 양립 지원제도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부모 육아휴직은 육아휴직 제도의 유연성을 높일 순 있지만, 돌봄 부담을 가족에게 전가하는 방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신정찬 한국아동복지협회 회장은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공적 돌봄을 확충하고 조부모 대신 부모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게 정공법"이라며 "유럽 일부 국가처럼 일정 기간 고용보험에 가입한 조부모만 육아휴직 사용권을 부여할 경우 대상 폭이 좁을 수 있다. 또한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범위를 조부모로 넓히는 건 혜택의 확장이 아니라 조부모에게 돌봄의 의무를 부과하는 정책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제한적 적용에 초점을 두고 조부모 육아휴직 제도 도입 실효성을 검토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국내 한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보편적인 조부모 육아휴직 허용은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조손 가정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만 조부모 육아휴직을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수요 조사 등과 함께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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