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보다 몸이 힘든 게 더 낫다"
경쟁력 갖추려면 여성이라는 틀 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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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라고 못 한다'는 것과 '여성만 해야 한다'는 것 모두 편견이다. 일과 양육을 병행하기 힘든 시대라 편견은 더 심한 듯하다. 많은 사람이 여성의 직업으로 '선생님'이나 '공무원'을 추천하고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직업, 힘과 체력을 요구하는 직업에 여성이 종사하는 것은 이상하게 보는 경우가 많다. 이에 여성경제신문은 '왜 안 돼?'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남초', '여초'라는 경향을 무시하고 그저 이 직업이 좋아서 선택한 사람들. 그들의 생활은 일반적인 다른 직업인들과 크게 다른 걸까? [편집자 주] |

"힘들어도 그냥 하는 거죠."
많은 사람이 일을 힘들어하면서도 관성처럼 수행한다. 사람마다 맞는 일은 모두 다르다. 상대적으로 여성들은 사무직을 주로 하고 몸이 힘든 일들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정신이 힘든 일'보다 '몸이 힘든 일'이 더 낫다는 여성도 있다. 호주에서부터 9년 동안 타일공 일을 해온 이서희 씨(38)가 대표적이다. 그는 여성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몸이 힘들고 말고에 성별의 차이는 없으며 그냥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현재 타일공이자 타일 강사로 활발하게 일하고 있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26살까지 합기도, 검도, 마샬아츠 등의 운동을 해왔다. 하지만 잦은 부상 등의 이유로 오랜 기간 이어 온 운동을 그만두게 됐다. 그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중 호주에 가 타일공 일을 접하게 됐다. 타일 일로도 돈 벌 수 있단 사실을 깨달은 이씨는 그대로 타일 업계에 도전했다.
지난 27일 새벽 6시, 본지는 광주에 있는 이 씨의 작업장을 찾아가 여성 불모지 업계에서 9년 동안 겪은 일들에 관해 인터뷰했다.
— 몇 년째 이 일을 하고 있나.
"햇수로만 따지면 9년이 됐다. 다만 본격적으로 작업했던 건 초반 4년 정도다. 호주에서 한국에 오고 난 후에는 코로나도 있었고 다른 일도 같이하고 있어 반반으로 일을 하는 편이다."
— 호주에 간 이유가 궁금하다.
워킹홀리데이로 갔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호주에서 타일 일을 하고 있었다. 일자리를 구할 때 인연이 돼 그쪽으로 가게 됐다. 처음에는 여성이라고 무려 3번이나 거절당하다가 4번째 회사에서 겨우 받아줘 일을 하게 됐다. 계속 버티면서 일하다 보니 재미를 느껴 여기까지 오게 됐다."
— 보통은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사무직)을 찾는데, 타일공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아버지가 직업소개소를 하셨다. 그러다 보니 대학교 재학 시절, 소개해 준 사람이 펑크를 내면 대타로 일을 하러 간 적이 많았다. 덕분에 체력도 기르고 기술 쪽 일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정신이 힘든 것보다 몸이 힘든 게 더 낫다고 여겼다. 타일공 일을 하기 전에 이것저것 다양한 일을 했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게 콜센터 일이었다. 사람들한테 욕을 듣는 일이 많았다. 한 1년 정도 일했는데,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몸이 힘든 일은 운동을 해서 체력이나 근력을 키워 버티면 되지만, 정신적인 건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묵묵히 한 '사람'으로 일해야

— 타일공 일을 선택한 걸 후회한 적은 없나?
"항상 후회한다. 저번 주도 했고 오늘도 했고 다음 주도 할 것 같다."
— 후회하면서도 계속 이 일을 하게 만드는 직업의 매력이 궁금하다.
"내 위로 아무도 없고 프리랜서처럼 일할 수 있으며, 다른 사업과 달리 밑천이 들지 않는 점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잘 벌지 못하는 것은 단점이다."
— 일을 하면서 어떨 때 자부심을 느끼는가.
"다른 분이 저를 '잘한다'고 소개하며 일을 줄 때 자부심을 느낀다. 남초 직업에서 여성으로 뭔가를 했다고 크게 기뻐하는 성향은 아니다. 직업인이자 전문가로 제 몫을 다했다고 느끼면 그걸로 충분하다."
— 현장에 화장실이 없는 경우가 많던데 여성으로서 불편하지는 않은지.
"현장에 화장실이 없는 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다. '조금 준비를 해줬으면 좋겠다' 이 정도다. 한국은 아파트 공사를 많이 하는데 호주는 주택 공사를 많이 한다. 주택 공사의 장점은 정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원에서 볼일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모두가 그렇게 하는 걸 보고 놀랐다."
— 다른 어려움은 없나?
"먼지와 시멘트 가루를 마시는 게 가장 힘들다. 처음에 타일 일을 했을 때 먼지 때문에 마스크와 안경을 꼈었다. 그랬더니 약간 악덕 업주였던 분이 "돌가루도 안 먹으면서 무슨 타일을 하냐"는 식으로 얘기했었다. 타일공도 어엿한 직업인인데 현장에서 일한다고 얕보는 것 같아 기분이 안 좋았다."

— 수입은 어떻게 되는지.
"시즌을 많이 탄다. 많이 벌면 700만~800만원도 벌지만 없을 때는 0원인 적도 있다. 평균치를 따지면 회사원보다 많지만 불안정하다. 그래서 일이 없을 때는 강연 등 다른 일을 한다."
몸을 쓰는 기술직의 경우 많은 힘이 필요해 상대적으로 남성들이 많이 모여들고 따라서 작업 환경도 남성 위주로 맞춰져 있다. 이에 많은 사람이 기술직에 종사하는 여성에게 환경에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는지,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묻곤 한다. 이씨는 이러한 질문에 담담하게 "그저 묵묵히 한 사람의 타일공으로 일하면 된다"고 말했다.
— 남성이 주로 종사하는 직업인데 외롭다고 느끼진 않았나.
"외로운 건 잘 모르겠고 그냥 남자들이랑 똑같이 하면 된다. 누군가 무언가를 나르고 있으면 나도 같이 가서 나른다. 동등한 동료라고 생각하며 먼저 나서서 일을 해야 한다. '이 일은 남자가 하는 일이니까 나는 잘 못 할 것 같다'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경쟁력을 가지려면 한 ‘사람’으로 더 많이 일하고 더 잘하는 수밖에 없다."
— 반대로 타일공 일에 여자로서 이점이 있다면 어떤 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고객들이 주로 좋아하신다. 주로 저한테 적극적으로 질문을 많이 하신다. 사실 말을 거는 게 작업하는 입장에서 좋은 일은 아니다. 솔직히 힘들고 귀찮기도 하다. 다만 그래도 질문하는 마음은 이해가 간다. 그래서 친절해지려고 노력한다."
— 타일 일을 하면서 여자로서 포기한 것이 있다면.
"머릿결은 포기했고, 그 이외에는 딱히 없다. 이런 직업을 가졌다고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옷은 깨끗하게 입고 다닌다. 나 자신도 고물을 팔거나 폐지를 주어도 깨끗하게 하고 다니는 사람은 깨끗하게 대해줄 것 같다."
— '이 정도는 감수하고 일해야지' 하는 게 있나.
"차별적인 부분은 조금 있다. 무거운 걸 들려고 하면 '내가 해주겠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행동은 나를 무시하는 것이다. 내가 '이것도 못 들면 이 일을 왜 선택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초반에는 그런 차별이 조금 있었다. 이를 극복하려면 계속 일을 하면서 능력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이씨는 한국에 오기 전 4년 동안 호주에서 타일공 일을 했다. 같은 직업이라도 국가가 다르면 많은 부분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 호주에서의 타일공에 대한 인식과 한국의 인식은 무엇이 다른지 궁금하다.
"호주는 타일을 포함해 공사 쪽 종사자는 다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종사자들의 프라이드가 강하다. 하지만 한국은 재작년에 광주에서 일했을 때 가르침을 받는 식으로 일했기 때문에 보수 없이 6개월 동안 근무하는 등 호주와는 환경이 다르다."
—'타일공 일이 돈을 많이 번다'라는 말에 혹해서 연락하는 분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이분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
"마음 단단히 먹고 오셔야 한다. 제 유튜브에서도 '하지 말라. 저거 다 자기 몸 갈아서 하는 거다' 이런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맞다. 이 일을 하고 싶다면 단순한 돈 욕심뿐만 아니라 일 욕심도 있어야 한다. 수학이나 산수 능력도 좋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