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40여 년 삼국지·한비자·병법·도가 섭렵
실제 전쟁터 참전 장군 위한 책『장원』
『상사의 자격』재탄생 조직 관계 초점
“병법은 승리 아닌 ‘나’를 지키는 기술”

관계는 전쟁이다. 내 마음과 네 마음이 다르니 갈등이 생긴다. 가정에서부터 학교, 사회, 국가로 범위를 넓힐 때마다 그 갈등은 더 복잡해진다. 상대 힘에 짓눌려 옴짝달싹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물며 급여를 받고 일하는 직장생활은 말해 뭐할까.

이곳에는 선의의 경쟁은 물론 거기서 움트는 질투와 음모가 난무한다. 도전이 있고 승리가 있으며 패배가 있다. 양선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가 직장을 전쟁터에 비유하는 이유다.

양 교수는 중앙일보에서 30년 넘게 기자 생활을 했다. 이때 얻은 통찰과 고전 속 명사와의 대화는 양 교수가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新병법서’를 완성하게 했다. 삼국지 유비의 책사, 제갈량의 병법서『장원』을 현대어로 풀어 재해석한『상사의 자격』이다.

양선희 서울대 교수(사진)가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新병법서’를 완성했다. 삼국지 유비의 책사, 제갈량의 병법서 '장원'을 현대어로 풀어 재해석한 '상사의 자격'이다. /최주연 기자
양선희 서울대 교수(사진)가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新병법서’를 완성했다. 삼국지 유비의 책사, 제갈량의 병법서 '장원'을 현대어로 풀어 재해석한 '상사의 자격'이다. /최주연 기자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 피와 살이 있고 눈물이 있는 인간이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 굉장히 매정하고 살벌해지죠. 근데 그게 현대 조직 사회와 똑같아요. 그게 조직의 논리에요.”

비가 쏟아지던 어느 수요일. 양 교수의 서울대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19살에 처음 삼국지를 접한 후 한비자와 도가, 법가, 손자병법을 비롯한 중국 고대 10대 병법서를 섭렵, 이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왔다. 본격적으로 중국 고전을 읽기 시작한 것은 신문사 입사 후부터다.

“당시 서무 보는 여성을 포함해 편집국의 여자가 8명이었어요. 여자 화장실도 없었던 시대예요. 일을 하면서 자꾸 뒤통수를 맞았어요. 나는 알 수 없는 인간관계와 드라마들이 펼쳐지는 거예요. 나는 여중, 여고, 여대, 여자 대학원을 다니면서 26년간 여자들이랑 살았는데 남자들 세상에 뚝 떨어진 거죠. 그때 한비자를 읽기 시작했어요. 머리에 천둥 번개를 맞은 느낌이었어요.”

양 교수는 남자들의 세계, 조직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그때 남녀의 사고와 행동 양식이 다른 것도 느꼈다고 한다.

“법가나 병가나 노자나 결국 남자들끼리 싸우던 내용이잖아요. 공부하면서 내 방식으로 승리하는 법을 창작해 낼 수 있었어요. 내 방식대로 어떻게 대응할지 알게 돼요. 사람이 읽히기 시작했어요. 언젠가는 배신을 할 놈이라는 게 보이면 경계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크게 손해를 안 보게 돼요.”

양 교수는 고전 읽기를 통해 다가올 화를 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제아무리 똑똑한 제갈량이나 사마의라도 똑같이 좇는 것을 권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 사람들처럼 될 수 없어요. 사람은 각각이 독특한 고유한 존재잖아요. 다양한 인간상을 마치 데이터베이스처럼 쌓아가는 거, 딱 거기까지 하면 돼요. 타인에게 너무 몰입할 필욘 없어요.”

‘상사의 자격’은 적재적소의 기술
병법서에서 한 글자 남기라면 ‘存’

상사의 자격에는 조직 내에서 필요한 처세술이 총 46가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사진은 ‘19장 조직을 망하게 하는 종벌레들’ /최주연 기자
상사의 자격에는 조직 내에서 필요한 처세술이 총 46가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사진은 ‘19장 조직을 망하게 하는 종벌레들’ /최주연 기자

양 교수의 컴퓨터 하드에는 이전부터 쓴 원고가 수두룩하다. 전자책으로 출간 계획을 앞둔 원고들이 많았다. 최신작인 『상사의 자격』은 텀블벅 펀딩을 진행 중이다. 역시나 전자책으로 독자들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https://www.tumblbug.com/shy)

“상사의 자격은 특히 여자 후배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상사의 자격에는 조직 내에서 필요한 처세술이 총 46가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고전을 재해석했다곤 하지만 쉽고 술술 읽힌다. 무엇보다 갈등의 핵심을 찌른다. ‘19장 조직을 망하게 하는 종벌레들’이 대표적이다.

이 책에 따르면『장원』은 다른 병서들과 달리 전쟁의 기술이라기보다는 ‘조직 내 인간관계의 기술’, ‘중간관리자 혹은 실무인재의 리더십’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어떤 사람이 좋은 장수인지, 좋은 장수가 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떤 습관이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전투를 망치는지, 어떤 개성을 가진 사람에게 어떤 직책을 맡겨야 하는지 등이 상술돼 있다.

양 교수가 보기에 이는 곧 현대 조직사회에서 필요한 ‘병법’이었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팀장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중간관리자, 실무인재들을 위한 측면이 강했다는 것이다.

“나는 회사를 위해 공을 세웠는데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막 속을 끓이잖아요? 근데 월급 받고 일한 것뿐이에요. 잊어버려야 해요. 매정한 논리들을 이해해야 해요.”

양 교수는 처세란 나를 아는 일이라고 했다. /최주연 기자
양 교수는 처세란 나를 아는 일이라고 했다. /최주연 기자

양 교수는 처세란 나를 아는 일이라고 했다. 자리를 쟁취하는 기술이 아닌 각자가 있어야 할 위치를 알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아는 기술. 동시에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과 인물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능란하게 대응하는 기술이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보호하고 운이 닿으면 성공하는 기술이다.

“정확하게 언제 떠나야 할지를 아는 것도 기술이에요. 나는 2021년 크리스마스에 내게 퇴사를 선물했어요. 내 인생을 더는 소모하고 싶지 않았어요. 마침 서울대학교 교원으로 임용도 됐고요.”

양 교수는 병법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훼손되지 않도록 나를 나대로 지키는 방법이다.

“병법은 사실 승리하는 기술이 아니에요. 나를 지키는 기술이에요. 병법에서 다 털어내고 딱 한 글자만 남기라면 존(存)이에요.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거예요. 맑음을 유지한 채 살 수 있는 어느 순간에 내가 가진 이권과 기득권을 다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해요. 퇴사하지 않았다면 훼손됐을 거예요.”

상사의 자격은 텀블벅 펀딩을 진행 중이다. /텀블벅 펀딩 페이지
상사의 자격은 텀블벅 펀딩을 진행 중이다. /텀블벅 펀딩 페이지

시너지가 잘 맞는 상사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양 교수의『군주의 남자들』에서 유비와 제갈량의 관계가 그러했다. 양 교수는 유비를 “꽤 괜찮은 리더”로 평가했다. 제갈량의 기량을 모두 펼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천하의 빌런(악당)인데 그 사람이랑 잘 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니까 자기 결하고 잘 맞아야 돼요. 쟤 때문에 정말 죽겠다 싶거나 정말 안 되겠다 싶은 사람은 빨리 도망쳐야 해요.”

제갈량의 리더십론을 정리하자면 ‘적재적소의 기술’이다. 유비를 주군으로 선택한 것도 이런 전략이 스며들어 있다. 그런 가운데 공정함을 실천한 드문 인물로 꼽힌다.

제갈량의 리더십론을 정리하자면 ‘적재적소의 기술’이다. 처세는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 지키기다. 사진은 상사의 자격 사본 /최주연 기자
제갈량의 리더십론을 정리하자면 ‘적재적소의 기술’이다. 처세는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 지키기다. 사진은 상사의 자격 사본 /최주연 기자

비록 원수라도 반드시 상을 주고, 법을 어기고 태만한 자에게는 비록 가까운 사람이라도 반드시 벌을 주었다. (중략) 여러 사무에 정통하고 사물의 근원을 이해했으며 명분을 따르고 실질을 구하며, 거짓으로 가득한 사람과는 함께 하지 않았다. 『삼국지 촉서』, 민음사

『여류 삼국지』로 시작한 고전 전파
노인 낭독 위한 단테 신곡 재해석

양 교수는 40여 년을 중국 고전과 함께했다.『여류 삼국지』출간을 시작으로 창작소설 『적우 : 한비자와 진시황』, 인문 교양서『군주의 남자들』, 제왕학 입문서『21세기 군주론 : 국민주권 시대의 제왕학』, 그리고『상사의 자격』까지. 인생의 반 이상을 중국 고전을 읽고 쓰는 데 썼다.

『5월의 파리를 사랑해』, 『카페 만우절』, 『이대 나온 여자』까지 고전과 관계없는 소설도 썼다. 물론 출판하지 않은 미공개 소설도 있다.

그런 그가 요즘 골몰하는 것은 초고령 사회에서 유행하는 독서법이다. 양 교수가 보기에 노인들에게 딱 맞는 독서법은 낭독이었다. 양 교수는 60대부터 70대까지 지인들과 함께 낭독 극단을 만들어 직접 낭독을 실천하고 있다. 요즘 읽는 대본은 단테의 신곡이다. 물론 양 교수가 직접 현대어로 고친 대본이다.

“고전이 읽기 싫은 게 어려워서 못 읽는 경우가 많아요. 낭독 단원들도 단테가 이렇게 쉬운 내용이었냐고 되물어요. 앞으로도 고전을 쉽게 만드는 작업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양 교수(가운데)는 60대부터 70대까지 지인들과 함께 낭독 극단을 만들어 직접 낭독을 실천하고 있다. 요즘 읽는 대본은 단테의 신곡이다. 양 교수가 직접 현대어로 고친 대본이다. /양선희 교수
양 교수(가운데)는 60대부터 70대까지 지인들과 함께 낭독 극단을 만들어 직접 낭독을 실천하고 있다. 요즘 읽는 대본은 단테의 신곡이다. 양 교수가 직접 현대어로 고친 대본이다. /양선희 교수

양 교수와 긴 시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초등학생 시절 썼던 소설부터 고3 때 처음 접했다는 삼국지, 그리고 마음을 위로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게 한 수많은 고전. 거기에서 공통적인 궤적을 발견했다. ‘나’를 제대로 직시하고 그런 ‘나’를 지키는 것. 첫 작품이 여류(余流) 삼국지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리라. 초고령화 사회에선 “노인은 스스로 노인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양 교수는 이제 낭독을 위한 대본을 쉽게 쓰는데 골몰하고 있다. 또다시 고전을 많은 사람이 만만하게 접근하게 하는 작업이다. 고령화 사회에 대한 관심, 그리고 잘 늙기 위한 전략이다. 그가 단테의 신곡에서는 또 어떤 현대적 의미를 발견할지 벌써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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