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해미백일장 해미희망상 김옥희 님 수상작

할머니가 주신 놋숟가락과 옛날접시, 치자 열매 /김옥희
할머니가 주신 놋숟가락과 옛날접시, 치자 열매 /김옥희

어느 집 뜰 앞에, 소박하게 피어있는 치자꽃을 보면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시다. 센터 소장님을 따라 시내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시골 깊은 곳에서 처음 할머니를 뵈었다. 아흔셋의 할머니는 가녀린 몸매에 하얗게 센 쪽진 머리를 하시고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넓은 마당과 큰집에는 아무도 없고 혼자서 살아오시다 둘째 딸과 막내아들을 한 해에 다 보내고 병드셨다. 그래서 인연이 되어 할머니와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요양보호사가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자기 집에 오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으시고 그냥 아들이 모시지 못하는 입장에서 신청하여 가는 것이랄까.

당시 할머니는 요양보호사를 거부하셨다. 미묘한 심정으로 눈치를 보면서 보살펴드렸다. 자식 둘을 한 해에 두 달 사이로 보낸 아흔의 어머니는 삶에 의욕이 있을까? 식사도 거부하시고 말씀도 안 하시고, 매일 “자는 잠에 가야 하는데”라며 노래를 하셨다.

자식들이 위로하고 돌봐드려야 하는데 다들 멀리 있어 이래저래 할머니는 그 넓고 큰집에서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돌봄 시간을 마치고 돌아나올 때 할머니의 얼굴을 보면 차마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할머니는 늘 마루에 앉아 마당 한가운데 피어있는 치자꽃을 바라보며 중얼거리신다.

“올해도 핐네.”

“내년에는 보겠나.”

“꽃이 하얀 게 참하제. 냄새가 샹긋하니 좋제.”

주방 창 너머로 바라본, 마루에 앉아 중얼거리시는 할머니 모습은 마치 치자꽃을 닮은 듯했다. 그러던 할머니는 매일 죽는 꿈을 꾸신다면서 조금씩 기운을 차리셨다.

적막강산 같은 곳에서 혼자 조용히 사시다가 요양사가 다가와서 식사도 해드리고 말벗도 해드리니 조금씩 마음을 여시는 듯했다. 색다른 음식도 해드리고 TV 드라마를 보며 설명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할머니를 웃게 해드렸다.

서글픈 것은 간간이 오는 자식들이 들고 온 음식들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마루에 걸터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바쁜 양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지켜보는 내가 할머니 보기에 민망하였다.

요양사한테 맡겨 놓으면 자기들이 해야 하는 일마저, “부탁합니다” 한 마디에 당연히 다 되는 줄 알고 있는 듯했다. 정해진 3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그래도 할머니는 조심히 잘 가라고 자식들에게 가녀린 손을 흔들어댄다.

자식들 모두 20대에 떠나 지금은 타향이 고향이 되고 고향은 그저 한 번쯤 그리워하고 가보는 곳이 되어 버린 듯하다. 아들의 차가 마당을 가로질러 나가는 끝까지 손을 흔들며 바라보는 할머니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자식들도 내가 바라보는 할머니의 아련한 아픔을 생각하며 가고 있을까? 할머니의 외로움, 말 못하는 할머니의 아픔, 그렇게 먼저 간 자식들···. 그리움에 애가 끓는 할머니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살그머니 치매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이셨다. 마치고 돌아서는 나만 보면 애 찾아오라고 꼭 찾아오라고 손에 차비까지 쥐여주신다.

어쩔 수 없이 “예예”하고 달래놓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할머니는 늘상 없는 애 타령을 하셨다. 그러다가 아침에 뵈면 그냥 또 멍하니 “왔나”하시고 마루에 앉아 치자꽃 노래를 하신다. 내가 치자꽃을 하나 따서 할머니 쪽진 머리에 꽂아드리니 너무나 고왔다.

손을 내저으며 부끄러워했지만 할머니와 잘 어울렸다. 그렇게 치자꽃 같은 할머니는 내가 돌봐드린 지 2년 만에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혼자 홀연히 가셨다. 아침에 문을 여니 조용히 주무시듯이 누워계셨다.

자식 6명이 왔다 갔다 했지만 아무도 임종을 보질 못했다. 너무나 안타깝고, 슬펐다. "자는 잠에 가야지~" 노래 불렀듯 그렇게 자는 잠에 가셨다. 할머니의 마당에는 치자꽃이 떨어지고 열매가 뾰족뾰족 올라오고 있었다.

치자꽃 같던 할머니를 떠나보낸 세월이 7년이나 지났지만 가끔 동네에 피어있는 치자꽃을 보면 할머니가 생각나고 가슴이 아려 왔다.

어느새 요양보호사를 한 지 10년이 넘어간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소일 삼아 시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육십 후반을 달리는 나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

부모 봉양이 절대시되던 시절은 세월 속에 점점 사라지고 부모는 이제 스스로 자립심을 길러 외로워도 슬퍼도 꿋꿋이 살아가는 캔디처럼 살아가야 된다. 아니 늙어가야 하겠지. 늘 생각한다. 슬프지 않는 노후를 맞이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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