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해미백일장 해미희망상 이상희 님 수상작

청려장과 어르신. /이상희
청려장과 어르신. /이상희

30 대 말에 전문가가 되어 아프신 부모님을 모시고자 하는 바램으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그 공부가 직업이 되어 버린 지 벌써 13년차 입니다. 그 동안 많은 어르신과 인연을 맺었고 그 분들의 삶과 함께하며 인생을 배우기도 하고 이별이란 영원한 것에 대해 조금씩 단단해져 가고있는 나입니다.

재작년 10월 말,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출근한 나를 기다리는 어르신 방 앞의 선물보따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함께 지내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울컥했습니다. 101살의 연세에도 늘 기다려주시는 어르신께 떨리는 목소리로 "어르신 선물이 왔어요. 깜짝 놀라실 선물 공개할게요."

먼저 정부에서 드리는 대통령 내외분의 축하 메시지가 담긴 카드를 큰소리로 읽어드렸습니다. 명아주 지팡이와 수저 세트도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직접 손으로 만지게 해 드렸습니다. 해마다 노인의 날을 맞아 백세가 넘으신 어르신들께 장수를 축하하는 의미로 선물을 보내드린다고 합니다.

특히 지팡이는 명아주의 잎이 푸른색이라 청려장이라 이름 붙였고 예로부터 효자들이 부모님께 바치는 선물이라고 합니다.

"오래 산 것도 미안한데 내가 이걸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구나.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좋아하시는 어르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 또한 어깨 한번 으쓱해 보았습니다. 어르신 96세 되시던 2월에 첫 인연을 맺었고 보름이 채 되지 않아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께서 뇌사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임종을 준비해야겠다는 담당 선생님의 청천벽력 같은 말에 어머니 곁을 지키고자 어르신께 양해를 구하고 무작정 진주 대학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하루에 몇 분씩 세상을 떠나시는 병실 안의 적막과 표현 못 할 고독은 무척 암울했습니다.

체온이 식어가는 육신들을 직접 눈으로 보며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던져 보기도했습니다. 목숨은 하늘의 것 인가. 어머니는 요양병원으로 가시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십여 일 동안 걱정해 주시며 기다려준 어르신께 죄송하고 너무나 고마워 어르신 떠나는 날까지 함께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처음 인사드리러 방문했을 때 천도교 신자이신 어르신께서 105개의 염주 알을 돌리시며 가족을 위해 기도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지팡이를 짚으셨지만 실내에서 규칙적으로 운동하시며 꾸준히 노력하시는 어르신께 숙연해지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100세가 가까워지는 즈음, 점점 기력이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연하 기능이 약해져서 식사도 제대로 못 드시고 시력도 나빠져 가장 좋아하시는 취미인 화투 놀이도 못 하시니 기분도 우울해지고 누워계시려고만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어르신께서 더 나빠지지는 않을까?'

많은 고민하고 또 했습니다. 미음을 곱게 갈아 미역국, 소고기국, 계란국, 순두부국, 콩국 등에 말아 여러 가지 죽으로 만들어 떠 먹여드렸습니다. 낙상 예방을 위해 화장지와 수건 그리고 따뜻한 보리차와 두유를 넣은 보온병도 어르신 곁에 두었습니다.

숙면을 위해 따뜻한 물로 족욕을 시켜드렸습니다. 마사지를 해 드리며 힘내시라고 응원을 드렸습니다. 처음 마스크팩을 붙여 드릴 때 차갑고 눈이 안 보인다며 깜짝 놀라셨지만 "어르신 이거 붙이시면 10년은 젊어지고 예뻐지신답니다."란 말에 수분이 마를 때까지 팩을 못 떼게 하신 어르신이 귀엽고 예뻤습니다.

청력이 약해지시니 텔레비전 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 혼자 계시는 적적한 시간의 무료함을 달래 줄 놀이를 연구했습니다. 손가락 운동에 좋은 뽁뽁이 장난감과 누르면 지압이 되고 소리가 나는 고무공과 심신 안정과 두뇌 회전에 좋은 파란색 바람개비 장난감을 선물해 드렸습니다.

"희야가 선물한 거 잘 가지고 놀게."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시며 심심할 때마다 무료함을 달래는 어르신입니다. 그림도 겨우 맞추는 화투 놀이에 승부욕이 강하신 어르신인지라 당신 모르게 져 드리는 연습이 성공했습니다. 지면 약간 표정이 어둡거나 삐지는 어르신이셨습니다. 이기실 때 박수를 치며 엄지척해 드리면 어르신 또한 당신의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셨습니다.

어느 날은 어르신께서 자주 듣던 '한 많은 대동강'을 휴대폰으로 크게 틀어 어르신 귀에 가까이 대고 같이 부르며 울기도 했습니다. 흐르는 물 같은 세월. 어르신께서 말씀하시는 찰나 같은 소중한 시간이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로하신 어르신의 곁엔 든든히 지켜드릴 내가 있습니다. 센터의 ‘칭찬합시다’란 코너에 처음으로 주인공이 될 때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어르신께 정성 담긴 식사를 드리고 규칙적으로 운동시키며 건강 유지해 드리기, 친구처럼 다정한 말벗이 되자는 센터의 사훈을 머릿속에 간직합니다. 핸드폰에 간직된 몇 년 전 어르신과의 봄날 소풍 사진, 활짝 핀 꽃나무아래 환하게 웃으시던 어르신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내 인생 한순간도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

어느 드라마 속 알츠하이머 노인의 명대사가 떠오릅니다. 벚꽃 피는 설레는 소식, 녹음이 우거지는 나무는 얼마나 싱그러운지. 계절의 색깔은 어떻게 변해가는지···. 때로는 육체적 고달픔이 밀려와도 어깨 한번 툭 털고 힘차게 아침을 맞이해 봅니다. 우리 앞으로의 길에 꽃길만 걸으며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더는 아프지 마시고 오늘처럼만 웃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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