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해미백일장 해미희망상 김근혜 님 수상작

"이년들아 누가 시켜서 나를 여기다 가둔 게냐? 너희는 애미 애비도 없냐? 최OO이 시켰냐? 너희들은 다 한통속이냐? 천벌을 받을 년들아. 고만 죽어야지 죽는 약 가져와라."
아침 식사 케어가 끝나갈 무렵 며칠 전 새로 입소하신 정 어르신의 노여움이 폭발한다. 본인의 억울함과 노여움으로 한껏 고조된 그녀의 괴성과 욕지거리들이 가을의 시작과 함께 나뒹군다. 나가시겠다고 발버둥을 치시는 통에 어르신에게 팔이 잡혔다. 내 팔뚝엔 선명한 어르신의 손톱자국이 아로새겨졌다.
그러고도 한참을 정 어르신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어르고 달래고 정서 지원을 해드려도 일단 흥분하신 상태에서는 별 소용이 없다. 통곡하시는 어르신의 안쓰러운 등만 토닥여드릴 뿐. 정 어르신뿐만 아니라 요양원에 입소 후 한동안 누구나 겪는 일종의 연례행사와도 같은 어르신들만의 질풍노도 시기가 지나야 비로소 이곳에 적응하신다.
"어르신~ 어르신이 다치시면 자식들이 속상해해요. 그래서 저희가 잘 보살펴 드리려고 하는 거고요. 어르신 넘어지시고 고관절 수술하셔서 여기 오셨잖아요. 음식 드리고 씻겨 드리고 기저귀 케어까지 깨끗하게 해드리는데 어르신 저희한테 그렇게 못된 욕 하시면 안 돼요. 제 팔뚝 좀 보셔요. 어르신이 꼬집어서 너무 아파요. 저도 우리 엄마한테 귀한 딸이에요. 어르신이 함부로 욕하고 꼬집어 뜯고 해서는 안 되는 귀한 사람이에요. 어르신 여기 선생님들 모두 다 부모 섬기는 마음으로 일하고 계세요. 그러니 저희랑 여기서 잘 지내 보아요."
물끄러미 내 이야기를 들으며 내 팔의 선명한 당신의 손톱자국을 보시더니 그 팔을 어루만지면서 "그래. 당신도 귀한 딸이지 미안해"하고 말씀하신다. 순간 가슴 한편이 아련해지며 울컥 눈물이 맺힌다.
강 어르신은 오늘도 바쁘다. 하루 종일 복도를 배회하느라 얼굴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스리슬쩍 남의 방에 들어가 다른 어르신의 간식을 몸 안에 숨겨 나오신다. 라운딩하던 선생님에게 딱 걸렸다. 몸속에 숨겨 논 간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역정을 부린다. 그럴 땐 저 자그마한 체구에서 괴력의 힘이 나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강 어르신이 이겼다. 누가 그 힘을 감당하겠는가.
잘못 빼앗으려다가는 어르신의 노기에 날아오는 주먹을 자칫 피하지 못하면 그대로 얼굴을 강타당할 수도 있기에 강 어르신의 정확한 훅은 전직 복서가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매운 주먹이다. 살며시 그녀의 뒤를 밟아 본다.
당신 방으로 들어가서는 이불 속 배게 속에 냉동실에서 가져온 간식들을 숨겨 놓는다. 그리곤 시치미 뚝 떼시고 콧노래 부르시며 나온다. 참 아이러니하게 그 모습이 너무 귀엽다. 아이들 어릴 적 간식 달라고 투정 부리던 그 모습과 오버랩이 된다.
강 어르신은 중증의 치매를 앓고 있다. 조금 전 당신이 숨겨 논 간식을 기억하지 못하고 찾아내지 못한다. 어르신이 안 계신 틈을 타 숨겨 논 간식을 다시 회수해서 있던 자리에 갖다 놓는 숨바꼭질을 우린 매일 하고 있다. 강 어르신은 금방 역정을 내셨다가도 채 오 분이 지나지 않아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신다.
강 어르신의 기억 속엔 무엇이 남아있을까? 그녀의 희뿌연 안개 속에서도 잊히지 않는 게 하나 있다. 예전 노래들을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부른다. 당신의 남편도 자식도 다 잊어버린 지금 당신은 콧노래 부르시며 즐거워하신다. 그녀의 젊은 시절은 콧노래를 부르게 하는 행복함으로 충만한 삶이지 않았을까? 문득 강 어르신은 지금 행복하실까? 궁금해진다.
그런 어르신을 보고 있자니 한 여인으로 엄마로 아내로 또한 며느리로 고단했던 삶의 마지막 여정이 안타까움으로 남아 마음이 아프다.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을 테니 오늘 하루가 내겐 더 소중하고 행복하며 보람되게 보내고 싶은 이유가 되었다.
친한 친구의 엄마가 얼마 전 요양원에 가셨다고 친구는 울면서 전화를 했다. 자식으로서 부모를 돌보지 못하고 요양원으로 모셔야만 했던 죄책감이 그녀를 괴롭혔다. 엄마도 적응하시는 동안 많이 힘들어하시고 원망과 한숨의 눈물을 흘리셨기에 몇 번이고 다시 모시고 올까를 고민했다는 그녀에게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좋은 요양보호사님들이 많이 계셔 부모처럼 돌보아드리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녀에게 작은 위로의 말을 건네었다.
이제 연로해지시는 부모님들의 모습을 보면 비단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철이 든 딸이다. 요양원에서 일하며 어르신들의 마지막 모습을 마주하고 보니 오늘 하루를 작은 것에도 소중함과 감사함을 잊지 말고 행복하게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깊어졌다.
어르신들이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내실 수 있도록 나는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부지런히 뛰어다닌다. 저 멀리서 강 어르신이 가슴팍에 뭔가를 숨기고 걸어 온다. 눈이 마주쳤는데도 살짝 내 눈을 피하시는 어르신 모습이 귀엽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시침 뚝 떼는 어린아이의 천진한 모습으로 그 숨바꼭질이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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