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기업들에 출연금 돌려주라"
문 정부, 朴 뇌물죄 판결 전 국고 환수 논란
尹 정부도 부담···감사원 감사 필요성 대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촉발한 '재단법인 미르' 사무실 간판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촉발한 '재단법인 미르' 사무실 간판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단초가 된 미르-K 재단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기업이었다. 국정농단의 주역인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씨가 사유화(私有化)해 문제가 된 두 재단에 기금을 냈던 기업들이 출연금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법원의 판결이 잇따라 나왔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이 K스포츠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기업에게 50억원 상당의 기금을 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문재인 정부가 국고로 환수한 미르재단 출연금 462억원의 회수 가능성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법원은 "외부인이 재단을 지배해 대기업들에 돈을 요구한 중대한 위법을 저지른 만큼 기업들이 이를 미리 알았으면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30억), 제일기획(10억), 에스원(10억) 등이 50억원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박 전 대통령 탄핵 후 K스포츠 재단은 청산 절차를 밟기 시작했지만, 출연금은 돌려주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결국 재단과 40개 출연기업 사이 소송전으로 이어졌고 5억원을 낸 CJ제일제당과 7억원을 낸 KT는 각각 1심과 대법원에서 승소한 바 있다.

지난 2015년 1월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을 부른 박 전 대통령은 문화·체육 활성화를 위한 방안들에 관해 연구해 보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문화·스포츠계를 지원하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도 모르는 사이 최순실 씨가 인사 및 운영에 개입한 것이 뒤늦게 드러나며 국정농단으로 비화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사건 결정문(2016헌나1)의 45쪽(기업의 자유와 재산권의 침해 편)을 보면 "대기업들은 청와대의 압력에 따라 설립 취지나 운영 방안 등을 알지 못한 채 서둘러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에 출연하였으며, 출연 후에도 재단 운영에 전혀 관여하지 못했다"고 적혀 있다.

당시 헌재는 "대기업들은 청와대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청와대의 출연 요구는 사실상 구속력 있는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기업들이 최순실 등 외부인의 존재를 알았더라면 출연금을 내지 않았을 것"이란 논리가 이번 K스포츠 재단 관련 판결에서 더해진 것이다.

국정농단 수사에 휘말려 졸지에 '경영권 승계 수혜자이자 뇌물공여자'가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다수의 기업인이 사실은 '공권력의 피해자'인 점이 드러났지만  K스포츠재단 출연금과는 달리 이미 국고로 환수된 미르재단의 462억원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

지난 2016년 10월 25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의혹'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6년 10월 25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의혹'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문체부 간 462억 尹도 행방 몰라
감사원 차원의 조사 필요성 제기

지난 2017년 3월 설립 허가 취소 결정이 내려질 무렵 각 재단의 통장 잔액을 보면 미르재단 486억원, K스포츠재단 288억원 등 총 774억원이었다. 하지만 미르재단 출연금에 대해선 다수의 기업이 대통령 탄핵에 부담을 느끼면서 소송에 나서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4월 재단 기금 가운데 462억원을 국고로 귀속시켰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형사 재판 1심 판결이 선고되기 직전 환수 조치가 이뤄지면서 논란이 됐다. "형사 재판 결과가 뇌물죄로 확정되면 국고로 몰수하고, 강요죄나 직권남용으로 결론 날 경우에는 피해자인 기업들의 부당이득반환 청구가 가능하다"는 당초 주장을 정부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중앙일보 회고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뇌물죄를 확정 짓기 위한 하나의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굳어졌다"며 "그래서 나는 향후 재판에 불참하기로 했고 변호인단에 모두 사임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이 이뤄지고 뇌물죄 선고 효력 역시 상실됐으나 윤석열 정부도 지난 정부 탓하며 462억원을 돌려주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여권 한 핵심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5년간 문화체육관광부로 환수된 돈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관련 기업들이 소송에 나설지 관전한 뒤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돈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더군다나 재단의 출연금이 범죄수익이란 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강제로 국고 환수한 점에 대해선 감사원 차원의 감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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