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준의 마이골프레시피 97회]
한국 골프 산업의 올바른 방향은?
골퍼 500만 시대 세계 활약에도
국민 삶의 질과 거리 먼 문화 때문

크루던베이 골프장의 어린이들
크루던베이 골프장의 어린이들

작년 6월 팬데믹의 막바지에 한국골프산업학회라는 단체가 발족식을 가졌다. 국내 다양한 골프 산업에 IT를 접목해 수출 산업으로 키우는 등 골프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다양한 골프 신사업을 발굴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며, 경영활동을 지원해 성장을 돕고, 정부에 올바른 골프 산업 정책을 제안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목표로 한 학회의 출발을 알리는 뜻깊은 자리였다.

한국골프산업학회는 한국골프캐디연맹과 함께 캐디의 전문성 확보와 복리증진을 위한 지원과 협업을 첫 프로젝트로 진행해 왔다. 그런데 이 학회에서 2주 전 필자에게 그들이 주관하는 세미나에 참가해 줄 것을 제안했다.

‘한국 골프 산업의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국회에서 세미나를 개최하는데, 필자가 이 주제에 부합하는 내용의 발표와 토론에 참가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2005년부터 18년간 국내에서 골프장을 설계하고 만드는 일, 국제대회를 유치하고 운영하는 일, 골프장 개발을 기획하는 일, 골프 관련 국제세미나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 등 다양한 일을 해온 필자는 이 외에도 골프에 관한 글쓰기를 꾸준히 해왔다.

특히 여성경제신문엔 2년 전부터 지금까지 97회에 달하는 골프 관련 칼럼을 연재해 오면서 독자들과 함께 다양한 시각에서 골프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도 가져왔다. 그래서 이참에 지금까지 근 20년간 필자가 국내 골프 문화에 대해 보고 느껴온 바를 솔직하게 정리해서 발표해도 되겠다 싶었다.

발제문의 제목을, ‘지속가능한 골프의 현재와 미래’로 잡고, 한국 골프가 더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성장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질문해 보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결론은 그리 밝지 않았다. 할 일은 너무 많은데 이에 연관된 이해 당사자들이 과연 그런 노력에 관심이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골프 산업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인가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짚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을 지면을 빌어 간략히 전달하고자 한다.

PGA오브 아메리카의 상이군인 지원 프로그램(HOPE) /홈페이지
PGA오브 아메리카의 상이군인 지원 프로그램(HOPE) /홈페이지

한국에서 골프는 왜 밉상인가?

한국은 골프 후진국이다. 프로골퍼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고 골프 시장 매출이 전체 스포츠 시장 매출의 20%를 차지하고 있고 연간 골프장 이용객이 5000만명에 달하며 골프 인구도 500만명에 육박한다 해도 한국은 골프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골퍼가 아닌 90%의 대중은 골프를 천민자본주의의 대표적인 놀이, 비리의 온상, 환경파괴의 주범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일까? 골프는 정말 부자들만 하는 스포츠이고 접대골프가 만연하는 장소이며 다른 종목에 비해 지속가능하지 않은 스포츠인가? 답을 하기에 앞서 필자가 최근 다녀온 스코틀랜드의 세계 100대 코스, 크루던 베이 골프장(Cruden Bay Golf Club)에서 있었던 일을 소개하겠다.

아침 일찍 클럽에 도착해 코스로 나가려는 데 필자 앞으로 어린 남자아이 두 명이 골프백을 끌고 걸어가고 있었다. 잠시 이들을 세워 놓고 질문을 했다. "니들 이름이 뭐니? 여기서 자주 골프를 치니?"라고 했더니, 10살 루크, 12살 제이크는 형제지간으로 거의 매일 크루던 베이에서 골프를 친다고 했다.

세계 각국에서 골프 마니아들이 모여들 정도로 명문 코스인 이곳에서 매일 골프를 친다는 얘기에 필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라운드가 끝난 후 클럽 담당자와 얘기해 보니 골프장에서 지역 청소년들에게 문호를 개방해서 이들이 골프를 통해 규칙과 예절을 배우고 건강해질 수 있게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사교육에 내몰려 밤늦게까지 학원가를 전전하는 우리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과연 스코틀랜드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성공하지 못하고 불행할 것인가 생각해 보니 쓴웃음만 나왔다. 언제 올지도 모를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고 잠도 줄여가며 입시경쟁에서 무조건 앞서 나가라는 압박을 대여섯 살 때부터 강요받는 우리 아이들이 그저 불쌍했다.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그런 환경에서 과연 얼마나 성공하고 얼마나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답은 이미 나와 있는 질문이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필자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공부할 당시 경험한 일이다. 에든버러시 지자체는 에든버러 레저패스라는 공공 스포츠 멤버십을 운영하고 있다. 2004년 기준 250파운드(우리 돈으로 약 40만원 남짓)를 내면 시 외곽에 위치한 6개의 골프장을 1년 동안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멤버십이었다.

필자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지금도 에든버러시는 비슷한 금액으로 동일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골프를 통해 일반 시민들도 삶의 질을 높이고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지원하는 것이다.

물론 스코틀랜드에는 수백 년 역사의 유서 깊은 회원제 골프장도 많고 이런 곳에서 비회원이 내야 하는 그린피는 오륙십만원에 육박할 때도 있다. 하지만 골프를 즐기는 데 굳이 거금을 들이지 않아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지자체와 정부의 선도적인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골프가 욕을 먹을 필요가 없다.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이유도 없고 반대할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모두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국내기업 연평균 영업이익률 /출처=한국은행
국내기업 연평균 영업이익률 /출처=한국은행

대체 얼마를 벌어야 충분한 걸까?

이번 세미나에서는 위에 언급한 에피소드 외에도 미국의 PGA오브 아메리카가 운영하는 상이군인 골프지원 프로그램(H.O.P.E)과 농약과 비료 사용을 줄여 친환경 코스 관리를 도모하려는 USGA의 코스 관리 IT 프로그램 등을 소개했다.

이런 골프 선진국들의 환경적,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노력은 정부, 지자체, 각종 골프단체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일선에서 골프장을 운영하는 경영자와 운영인력들의 마인드도 중요하다.

발표 내용의 마지막에 필자는 두 개의 그래프를 청중들에게 보여줬다. 먼저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과거 10년간 국내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영업이익률 평균치 그래프를 보여줬고, 그 다음으로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서 발표한 과거 11년간의 국내 골프장 영업이익률 수치를 비교했다.

국내골프장 평균 영업이익 /자료=한국레저산업연구소
국내골프장 평균 영업이익 /자료=한국레저산업연구소

놀랍게도 일반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5% 미만인데, 대중제 골프장의 영업이익률은 40%를 넘어 50%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골프장들은 팬데믹 이후의 시장이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과연 이런 풍토에서 골프가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사회 환원에는 관심이 없고 간혹 일 년에 한번 골프장을 대중에게 열어 음악회를 하는 전통이 엄청난 사회공헌이라 칭송받는 환경에서 필자와 같은 사람들이 골프가 대중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외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주일에 하루 반나절만 지역주민과 청소년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문호를 개방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면 과연 귀 기울일 골프장이 하나라도 있을까?

대한민국이 아직 골프 후진국일 수밖에 없는 이유, 이제는 좀 분명해진 것 같다.

오상준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대표

한국인 최초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에서 골프코스 설계 부문 석사 및 컬럼비아대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조성공사 등에 참여했다.

2015 프레지던츠컵과 더CJ컵 국제대회 운영을 담당했으며, 미국 GOLF매거진 세계100대코스 선정위원, 싱가폴 아시아골프산업연맹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골프에세이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을 출간했고, 유튜브 '마이 골프 레시피'와 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골프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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