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준의 마이골프레시피]
정직을 최고로 삼으면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문화가 역사가 된 스포츠

마스터스에 참가한 아놀드 파머와 팬들 /로이터=연합뉴스
마스터스에 참가한 아놀드 파머와 팬들 /로이터=연합뉴스

한국 사람들만큼 골프에 진심인 경우도 드물다. 골프를 좋아할 뿐 아니라 잘 치기도 한다. 이는 아마추어와 프로 모두에게 해당한다. 심야에도 실외 연습장은 환히 불을 밝히고 있고 심지어 새벽에도 무인 스크린 골프 연습장을 찾는 열혈 골퍼들이 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경쟁에 익숙하고 각종 시험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얻은 집중력과 끈기가 골프에도 통하는 것인가? 좁은 땅에 많은 이들이 경쟁하며 살다 보니 답답한 도심에서 벗어나 풀밭에서 하는 공놀이의 매력이 더한 것도 사실일 것이다.

우리만큼 골프에 진심인 미국과 영국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그들은 골프가 지상 최고의 게임(The greatest game ever played on earth)이라고 한다. 골프를 이렇게 평가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골프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평생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다. 골프는 80대 할아버지가 20대 손주와 함께 플레이할 수 있는 스포츠이다. 함께하지만 서로 맞서 힘으로 대결하는 경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골프는 정직을 최고로 삼는 스포츠이다. 골프에는 타 스포츠에서 빈번한 선수들의 할리우드 액션이 없고 심판이 비디오 판독을 하는 경우도 없다. 룰을 어긴 사실은 내가 더 잘 알기 때문에 실수를 인정하고 스스로에게 벌 타를 선언하는 유일한 스포츠이다. 만일 이런 골프의 정신에 어긋나는 위선적인 행동, 거짓된 행동을 했을 때는 가차 없는 페널티가 가해지고 대중과 동료의 비난을 한 몸에 받게 된다.

미국의 한 골프 인플루언서가 슬럼(Slum)가에 위치한 문화센터에서 골프를 시작한 흑인 소녀를 인터뷰했다. ‘골프가 왜 좋은가’라는 질문에 입문한 지 3개월밖에 안 된 소녀의 답은 너무도 정확했다. "내가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는 골프에서는 나 자신이 플레이어이자 선생이자 심판이기 때문이다."

골프를 스스로 터득해 가는 과정에서 나는 플레이어이자 나 자신의 선생이 된다. 또한 골프는 자신의 플레이를 스스로 감독하고 스코어를 기록하는 유일한 스포츠다. 골프만큼 이 과정이 반복되고 강조되어 습관화되는 스포츠는 없기 때문에 골프를 지상 최고의 스포츠라 부르는 것이다.

셋째, 다양한 골프 기관들과 전설적인 선수들이 만들어 온 문화에 있다. 아니의 군대(Arnie’s Army)라는 팬클럽을 몰고 다닌 아놀드 파머(1929-2016)는 그에게 부와 명예를 준 팬들에게 그가 받은 사랑을 돌려줬다. 이는 단지 팬들의 사인 요청에 일일이 답하고 웃음 지어 준 것 이상이었다. 자신과 아내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해 소외계층 어린이들을 후원하고 각종 골프대회를 통해 자선모금 활동을 하는 등 골프를 통해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한 것이다.

마치오브다임즈 자선행사와 아놀드 파머 /orlandofamilymagazine.com
마치오브다임즈 자선행사와 아놀드 파머 /orlandofamilymagazine.com

미국 PGA오브아메리카와 PGA투어도 골프를 통해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해왔다. 1916년 설립되어 1968년 프로골프대회를 전담하는 PGA투어와 분리 운영해온 PGA오브아메리카는 ‘HOPE’ 프로그램을 통해 군인들의 재활과 복지를 돕고 있다. 재향군인과 상이용사들을 그들이 속한 지역사회에서 골프를 통해 삶의 의욕을 되찾을 수 있는 6~8주간의 무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 PGA투어도 다음과 같은 미션으로 활동해 왔고 지금까지 직간접적으로 4조원 이상의 자선기금을 모금해 왔다. 최고 선수들의 기량을 알리는 장을 통해 전 세계의 PGA투어 팬, 파트너와 커뮤니티의 관심을 얻고, 영감을 주고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By showcasing golf's greatest players, we engage, inspire, and positively impact our fans, partners and communities worldwide.)

PGA오브아메리카 HOPE 프로그램 /pnwpga.com
PGA오브아메리카 HOPE 프로그램 /pnwpga.com

스포츠 스타는 ‘공인’인가?

공인의 사전적 의미는,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 스포츠 선수, 인플루언서, 사회운동가 같은 대중매체로 널리 알려진 인물들’ 혹은 ‘대중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 공직자와 연예인 외, 운동선수, 교육자, 종교인 중에서 인지도와 유명세가 있는 사람들을 모두 포함’이라고 나온다.

뛰어난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를 공인이자 ‘스타’라 부르는 이유는, 그들의 천재적인 능력이 팬들에게 기쁨과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타고난 능력과 뼈를 깎는 노력이 합쳐져 별처럼 빛나지만, 그런 별들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성원하는 팬들이다. 팬들이 부여하는 가치가 올라갈수록 그들은 더 많은 상금과 광고 수익, 연봉과 보너스를 받는다. 이런 관계 속에서, 대중은 스포츠 스타들이 그들을 추앙하는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고 영감을 불어넣는 모습을 보여 주길 바란다.

그래서 그들에겐 공인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기준이 적용되고, 일탈행동이나 범법행위를 했을 때는 일반인들보다도 더 큰 지탄을 받게 된다.  대중이 그들에게 간디나 슈바이처 박사와 같은 희생적인 삶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거짓과 위선과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 있다.

필 미컬슨의 뒷이야기

최근 필 미컬슨의 도박 중독과 천문학적인 손실을 자서전에서 폭로한 스포츠 도박사 빌리 월터스(Billy Walters)의 얘기로 미 골프계가 뜨겁다. 필 미컬슨이 스포츠 갬블링을 즐긴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나, 그가 쏟아 부은 판돈의 규모가 1조원이 넘고, 손실액이 1200억원에 육박한다는 주장은 처음이었다.

미컬슨의 부도덕한 행위는 그가 월터스에게 2012년 라이더 컵에서 자신이 소속된 팀에 배팅을 제안한 것에서 최악에 달했다고 폭로했다. 미컬슨이 그에게 타이거 우즈와 자신이 이끄는 미국팀이 유럽팀을 이길 것이므로 40만 달러를 자기 대신 걸어달라고 요청했을 때, 월터스는 소속 팀의 우승에 판돈을 걸었다가 영구 퇴출당한 야구선수 피트 로즈의 사례를 들며, ‘현대판 아놀드 파머로 추앙받고 있는 네가 그 모든 것을 잃고 싶은 거냐?’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컬슨은 이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답했다.

미컬슨은 그가 평생 몸담았던 PGA투어를 떠나 2022년 사우디 국부펀드가 후원하는 LIV골프로 24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받고 활동 무대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PGA투어와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고 각종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이적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었을까?

최고령 메이저 챔피언, 팬들에게 친절한 왼손잡이 ‘Lefty’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며 사랑받던 그를 후원하던 글로벌 기업들은 모두 그의 곁을 떠났다. 그는 더 이상 ‘현대판 아놀드 파머’로 불리지 않는다. 한때 타이거 우즈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백인 선수로 불렸던 그의 명성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아놀드 파머와 잭 니클라우스와 같은 전설적인 스포츠 스타들이 만들어 온 받은 만큼 되돌려 주는(Giving-back) 문화. 사랑받은 만큼 팬들에게 그 사랑을 돌려줘 온 프로 골프계의 유산, 골프를 지상 최고의 게임으로 만들어 온 역사는 지속될 것이다. 그 바통을 이어받는 선수가 더 많을수록 골프는 더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로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오상준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대표

한국인 최초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에서 골프코스 설계 부문 석사 및 컬럼비아대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조성공사 등에 참여했다.

2015 프레지던츠컵과 더CJ컵 국제대회 운영을 담당했으며, 미국 GOLF매거진 세계100대코스 선정위원, 싱가폴 아시아골프산업연맹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골프에세이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을 출간했고, 유튜브 '마이 골프 레시피'와 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골프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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