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준의 마이골프레시피 92회]
스윙으로 보는 각양각색 골퍼의 성격
돌부처 박인비 떠올리게 한 릴리아 부

2023 AIG 위민스오픈 /출처=golfweek.usatoday.com
2023 AIG 위민스오픈 /출처=golfweek.usatoday.com

처음으로 골프채를 잡아본 게 1997년이니, 골프가 내 인생에 개입한 후 벌써 26년이 흘렀다. 그동안 내 골프스윙에는 두번의 큰 변화가 있었다. 처음은 영국유학을 마치고 귀국하기 직전 티칭프로 자격증을 받는 과정에서, 두번째는 2년 전 PGA 클래스A 교습가와의 만남이 촉매가 되어 시작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동반자들, 남녀노소, 세계각국의 다양한 사람들과 라운드를 하면서 관찰하고 느끼고 확인한 진실이 있다. ‘스윙은 그 사람의 성격을 닮아 있다.’

릴리아 부의 스윙. /출처=golfnews
릴리아 부의 스윙. /출처=golfnews

2023 AIG 위민스 오픈 우승자, 릴리아 부

미국 선수 릴리아 부(Lilia Vu)가 올해 4월 여자 5대 메이저 대회인 쉐브론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을 때, LPGA 무대에 새로운 루키가 탄생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상의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러던 그녀가 지난 주 영국에서 열린 AIG 위민스 오픈에서 시즌 두번째 메이저 우승을 했고 그 결과 세계 랭킹 1위가 되었다. 2019년 프로 데뷔 후 2020년 1330위였던 그녀가 3년만에 퀀텀 점프를 하여 세계 정상에 오른 것이다.

대회를 치르는 내내 그녀의 표정과 몸짓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위기의 순간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경기를 펼치는 모습이었다. 이미 메이저 를 한차례 우승해본 경험에서 나온 마인드 컨트롤이라 하기에는 데뷔 4년차 25세 골퍼의 모습은 너무 앳되었다.

마지막 날 같은 조에서 우승 경쟁을 한 영국의 찰리 헐(Charlie Hull)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찰리 헐은 스윙만 봐도 대단히 급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을 알 수 있다. 샷을 마친 후 누구보다 더 앞서 다음 샷을 하러 걸음을 재촉하는 모습과 샷을 하기 전 고개를 반복해서 돌리는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 초초하게 만든다.

TV 중계에 나온 그녀의 프리 샷 루틴(Pre-shot routine: 공을 치기 전 반복하는 습관적인 동작)을 보며 대체 몇 번이나 고개를 돌리는가 세어 보았다. 총 11번. 저러다가 목 디스크가 오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릴리아 부는 이런 동반자 옆에서도 흔들림 없이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 나갔다. 승자의 멘탈은 강했고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퍼트를 성공시킨 후 경쟁자인 찰리 헐을 포옹하는 표정에는 짜증 섞인 표정은 커녕 미소가 가득했다.

릴리아 부의 여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떠오른 사람이 한 명 있다. 버디를 한 후에도 파를 했을 때와 같은 표정으로 환호하는 갤러리들에게 손만 살짝 들어 보이는 박인비 선수를 보는 것 같았다. 가끔은 좋아할 만도 하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일 만도 한데 박인비 선수의 표정과 몸짓은 시종일관 돌부처와 같다. 한 때 미국의 해설위원이 ‘여러분들은 지금 슬로우 모션을 보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녀의 스윙 템포는 느긋하다. 이런 느긋함에서 나오는 집중력이 메이저 7승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인비의 승리를 일군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AIG 위민스 오픈 준우승자 찰리 헐. /게티이미지
AIG 위민스 오픈 준우승자 찰리 헐. /게티이미지

인내심을 시험한 월튼 히스 올드 코스

박인비처럼 흔들림 없이 느긋하게 플레이한 릴리아 부도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는 자신에게 화가 나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고 한다. 이건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다만 승자와 패자의 차이점은 그렇게 끓어오르는 화를 어떻게 다스리는가에 있다.

미스 샷을 했을 때도 화가 나지 않는다면 문제다. 완벽한 샷을 하려는 목적이나 기대치가 없거나, 으레 그러려니 하는 체념으로 가득한 골퍼가 아니고서야 미스 샷을 하고 나서 아무렇지도 않을 순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미스 샷을 한 후에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리커버리 샷(Recovery shot: 실수를 저지른 후 만회하기 위한 샷)’이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처럼, 인생에서도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회복력’의 유무가 중요하다.

잉글랜드 출신으로 홈코트의 이점을 갖고 시작한 찰리 헐은 대회 전 인터뷰에서 친구들과 함께 대회가 개최된 월튼 히스 올드 코스를 플레이해봤고 느낌이 아주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좋은 느낌은 딱 준우승을 하는데 머물렀다. 우승컵을 릴리아 부에게 넘겨준 후, 그녀는 ‘당장 연습장으로 달려가 손에 피가 나도록 연습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불 같은 성격의 소유자가 할 법한 리액션이었다.

찰리 헐은 그녀의 타고난 성격, 스윙의 리듬과 템포를 바꾸긴 힘들 것이다. 그녀만의 독특한 스윙이 그녀가 골프를 대하는 방식이자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그녀가 반복하는 프리샷 루틴은 문제가 많아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를 최근 그녀가 대대적인 스윙 교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본인의 스윙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 나타난 심리적 현상의 결과라고 한다. 간결한 프리샷 루틴이 좋은 스윙을 낳는다는 건 수없이 증명되었다. 그녀의 프리샷 루틴도 변화될 수 있을까?

TV화면에 비친 골프장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월튼 히스만의 특이한 벙커를 알아챘을 것이다. 벙커 턱을 마치 영국 해안가에 만들어진 링크스 코스처럼 잔디 뗏장을 쌓아 올려 높게 만들었고 벙커 턱 위에 자줏빛 꽃이 만개한 헤더(Heather)라 불리는 관목이 가득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스타일의 벙커는 벙커 샷에 약한 골퍼들을 두 번 죽이는 소위 ‘더블 해저드 double hazard’이다. 벙커를 잘 넘겨 쳤더라도 벙커 턱에 높게 자라 있는 헤더 관목에 공이 걸리게 되면 큰 낭패이기 때문이다. 영국 골프장들의 특성은 현지에 자생하는 식물들도 코스의 난이도를 높이는 요소로 적극 활용하는 것에 있다.

링크스 코스에서는 무릎 높이까지 오는 페스큐 잔디가 덮여 있는 러프가 벙커 턱 앞을 차지하고 있고, 런던 근교 내륙의 히스랜드(Heathland)코스에는 페스큐 대신 헤더가 그 역할을 한다.그래서 특히 영국의 골프장에서 플레이 할 때는 프로나 아마추어나 높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젠더 쇼플리의 스윙. /출처=wallpapers.com
젠더 쇼플리의 스윙. /출처=wallpapers.com

나만의 스윙을 찾아가는 여정

골프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말로 골프라는 운동을 설명해 왔지만, 내 마음에 가장 와 닿는 표현이 하나 있다. ‘골프는 나만의 스윙(Authentic swing)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이다.

프로와 아마추어 모두를 포함해 골퍼들은 저마다 다른, 독특한 스윙 폼을 갖고 있다. TV 중계를 보면 스윙하는 뒷모습만 봐도 어떤 선수인지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문제는 ‘과연 내 스윙이 내 마음에 드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스윙은 사람마다 다른 체형과 성격과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다. 스윙은 괴상망측한데 결과는 훌륭한 골퍼가 있는가 하면, 스윙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데 필요한 힘을 제때 전달하는 걸 몰라서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골퍼들도 있다.

있는 힘껏 휘두르는 스윙에도 불구하고 비거리는 시원치 않고 방향도 들쭉날쭉 인 경우와 반대로 편안하고 부드러운 스윙을 했는데도 공이 공중에서 떨어질 생각 없이 멀리 날아가는 경우도 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삶을 대하는 태도와 닮아 있고, 삶을 헤쳐 나가는 내공이 있는가 없는 가의 문제와 비슷하다.

나도 한 때 타이거 우즈의 스윙을 쫓아 하려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온다. 그건 마치 타고난 몸은 경차 수준인데, 마음은 세계 최고의 수퍼 카를 흉내 내려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상적인 스윙을 갖고 싶은 욕심을 버릴 순 없지만, 요즘은 로리 맥길로이와 같은 완벽한 스윙을 따라 하려는 대신 젠더 쇼플리의 리듬감을 참고하려 한다.

너무 성급하지도 너무 느긋하지도 않은 나만의 리듬을 갖춘 스윙을 통해 정확하고 반복 가능하면서 건강한 스윙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인생을 사는 방법과 같아진다면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오상준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대표

한국인 최초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에서 골프코스 설계 부문 석사 및 컬럼비아대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조성공사 등에 참여했다.

2015 프레지던츠컵과 더CJ컵 국제대회 운영을 담당했으며, 미국 GOLF매거진 세계100대코스 선정위원, 싱가폴 아시아골프산업연맹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골프에세이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을 출간했고, 유튜브 '마이 골프 레시피'와 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골프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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