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한 팩트 탐구]
“세수 메우는 게 아니라 공자기금 빚 상환”
환율 급등 아닌 급락 시기 필요한 실탄 활용
강달러 지속·시장 개입 달러 매각→원화 풍부
연 1.1조 이자 아껴···환율 급락 시 자금 확보

기대했던 것보다 올해 세금이 덜 걷히면서 59조 규모의 역대급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기업 영업이 쪼그라들면서 법인·소득세가 급감했고 부동산 거래절벽으로 양도세도 덜 걷혔다. 결손액 중 36조원을 중앙정부가 메워야 한다.

추가경정예산(추경)은 절대 없다는 정부의 재정 건전성 회복 의지는 그대로다. 대신에 기획재정부(기재부)는 ‘어떤 액션’을 취했는데 이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이 기재부가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을 끌어 세수 펑크를 메운다고 보도했다. 외환 방파제를 허무는 행위라고 학계도 우려했다.

여성경제신문은 [깐깐한 팩트 탐구] 코너를 통해 외평기금의 구조와 기능, 세수 결손 보존의 의미, 외환시장 파급 효과 등에 대해 점검했다.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지난달 1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세수 재추계 결과 및 재정 대응 방향 발표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머리카락을 넘기고 있다. /연합뉴스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지난달 1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세수 재추계 결과 및 재정 대응 방향 발표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머리카락을 넘기고 있다. /연합뉴스

“외환 시장 안정을 위한 기금을 세수 부족하다고 지금 사용해선 안 된다.”

보수적 성향의 경제학 석학으로 알려진 A 교수는 금융당국의 세수 결손 대처가 제2의 외환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계에선 더불어민주당 주장대로 이전처럼 추경으로 세수 펑크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대로 언론은 “환율 불안한데 외환 방파제 없다”고 보도했다.

당국의 이 같은 조치는 외환위기를 불러올까. 본지 확인 결과 이는 현재 상황과 다소 동떨어진 비판이었다. 해당 기금은 환율 급락 시(현재 환율 급등 상황)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일뿐더러 겉으로만 봐선 기재부가 세수 펑크를 막을 의도로 조치한 것도 아니었다.

“기재부는 세수를 메울 것이라고 표현한 적이 없다. 외평기금은 10년물 국채로 조달되는데 적정 수준 원화를 보유하고 있고 여유 재원이 생겼다고 봤기 때문에 수지 개선을 위해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에 조기 상환하기로 한 것이다. 빚은 들고 있으면 손해 아닌가. 이후 상환 금액 사용에 대해서는 채무자 입장에서 관여할 수 없다.”

5일 기획재정부 외화자금과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상환이 가능했던 이유로 강달러를 들었다. 환율이 급등하면서 금융당국이 시장에 개입해 환율 수준을 조정했는데, 그때마다 달러를 매각했다. 달러 값이 비싼 만큼 쌓이는 원화 규모는 컸다. 실제 지난해 10월 원/달러 환율은 1440원대를 넘나들었다. 이로 인해 작년부터 30조원가량이 외평기금에 추가로 쌓였다.

외평기금은 원활한 외환 수급을 위해 존재하는 외환 방파제는 분명하다. 자산과 부채를 합해 총 260조~270조원에 달하는데 원화 국채만 250조원을 넘는다. 당국은 환율이 과도하게 하락하거나 오를 때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해당 기금을 활용한다. 다만 상환이 예정된 40조 규모의 원화는 현재 고환율 상황에서 쓰일 수 있는 재원이 아니다. 환율이 지나치게 떨어져 달러를 매입해야 할 때 필요한 원화라는 점을 염두 해야 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금리 장기화 입장이 공고해지는 상황에서 당분간 금융당국의 개입이 필요한 만큼 원/달러 환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또다시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고환율에 대한 대처가 필요하다. 오히려 달러 매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외환보유고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금리 장기화 입장이 공고해지는 상황에서 당분간 금융당국의 개입이 필요한 만큼 원/달러 환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사진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 /EPA=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금리 장기화 입장이 공고해지는 상황에서 당분간 금융당국의 개입이 필요한 만큼 원/달러 환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사진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 /EPA=연합뉴스

이 관계자는 “환율이 떨어질 때 조치할 자금은 이미 충분히 확보돼 있고 이를 넘어선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상환하기로 했다. 당장 필요한 부분은 확보하고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 오면 그때 국채를 발행해 조달할 계획이다. 이게 수지 개선을 위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올해와 내년 빌린 돈 40조원을 공자기금 등에 조기 상환한다. 최근 10년간 국고채 10년물 발행 추이를 보면 금리가 2.7% 정도라고 할 때 상환 시 이자 금액 1조1000억원을 매해 아끼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기재부가 세수 결손을 메우려고 한 게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공자기금에 조기 상환된 자금은 일반 회계에 투입돼 세수 부족을 채우게 될 것으로 보인다. 즉 외평기금→공자기금→일반회계 프로세스로 이어진다.

여유자금으로 지출 충당 불가피
적자국채 발행 대외 신인도 타격

이번 논란은 결국 최대 세수 결손에서 기인한다. 결손 기준으로 최대 오차율인 14.8%를 기록했다. 정부는 반도체 시장 냉각 등 경기 하방 압력에 따른 법인세와 자산 세수 감소가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법인세와 양도소득세 감소분만 37조6000억원이며 전체 세수 감소는 59조1000억원에 달했다. 이를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이번 논란은 결국 최대 세수 결손에서 기인한다. 사진은 오만원권 지폐 /연합뉴스
이번 논란은 결국 최대 세수 결손에서 기인한다. 사진은 오만원권 지폐 /연합뉴스

옥동석 전 인천대 무역학부 교수는 본지에 “2000년대 이후 세수 오차가 많아졌는데 세금을 많이 내는 계층이 특정 일부에 몰려있기 때문이다”라면서 “소득세의 경우 상위 1%가 전체 40%를 부담한다. 법인세도 마찬가지인데 이 때문에 변동이 크고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이 특히 심하다”라고 설명했다.

옥 교수는 “세수 오차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발생 여부보단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생각해야 할 텐데 지출 안 하거나 여유자금 쓰는 방법밖엔 없다”라면서 “또 추경을 하려면 적자국채 발행을 해야 할 텐데 지금도 적자가 상당한 상황에서 국가 채무는 늘고 결국 대외 신인도는 떨어질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지난달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국가채무(중앙정부)는 1097조8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14조5000억원 증가했다(7월 말 기준). 올해 본예산에서 예상치로 잡았던 연말 국가채무(1100조3000억원)까지 2조5000억원밖에 남지 않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17년 36%에서 지난해 49.4%로 뛰었다. 정부는 올해 50.4%, 내년 51%, 그리고 2027년 53%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 7월 2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민생경제의 고통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이런 상태를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직무 유기라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면서 35조 추경 편성을 요구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연초부터 야당에서 계속 추경하자는데 그 짓은 못한다. 재정을 건전하게 해야 한다"며 추경 반대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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