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미 부채 한도 증액 갈등에 신용 강등
韓 GDP 대비 부채 49.7% 여야 추경 갈등
“국회 계류 중인 재정 준칙 법제화 시급해”

향후 수년에 걸쳐 증가할 미 부채 부담은 물론이고 부채한도와 둘러싼 거듭된 정치적 대치 이후 막판 타결은 미 재정 관리에 대한 확신을 약화한다면서 미국이 이른바 ‘통치 침식’(erosion of governance)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 국가신용도 언제든 깎일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준다. 사진은 텅 빈 배경 앞의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향후 수년에 걸쳐 증가할 미 부채 부담은 물론이고 부채한도와 둘러싼 거듭된 정치적 대치 이후 막판 타결은 미 재정 관리에 대한 확신을 약화한다면서 미국이 이른바 ‘통치 침식’(erosion of governance)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 국가신용도 언제든 깎일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준다. 사진은 텅 빈 배경 앞의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더 늦기 전에 정부의 잘못된 정책 기조를 전면 전환해야 한다. 그 첫 출발이 추경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야당이 35조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제안하면서 정부 여당과 큰 마찰음을 내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정책당국과 국민의힘은 재정건전성 확보를 이유로 야당의 수십조 추경 제안에 맞서고 있다. 이미 1068조 국가부채를 어깨에 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신용등급이 강등된 미국의 정치권 행태와 유사하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부채한도 증액을 두고 갈등해 왔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이런 이유로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췄다고 밝혔다. 향후 수년에 걸쳐 증가할 미 부채 부담은 물론이고 부채한도와 둘러싼 거듭된 정치적 대치 이후 막판 타결은 미 재정 관리에 대한 확신을 약화한다면서 미국이 이른바 ‘통치 침식’(erosion of governance)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 국가신용도 언제든 깎일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준다.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가 지난달 27일 공개한 ‘2022년 회계연도 결산 총괄분석’을 보면 작년 말 기준 국가채무(잠정치)는 1067조7000억원으로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었다. 전년 대비 97조원이 증가했다.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가 지난달 27일 공개한 ‘2022년 회계연도 결산 총괄분석’을 보면 작년 말 기준 국가채무(잠정치)는 1067조7000억원으로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었다. /국회예산정책처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가 지난달 27일 공개한 ‘2022년 회계연도 결산 총괄분석’을 보면 작년 말 기준 국가채무(잠정치)는 1067조7000억원으로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었다. /국회예산정책처

국가채무는 실질적으로 중앙 및 지방 정부가 갚아야 하는 나라 빚이다.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해 국가채무비율은 49.4%로 전년 대비 2.7%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재정건전성 후퇴를 방증한다.

이는 적자국채 발행이 한몫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가 국·공채 등 이자 부담을 증가시켰다는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적자국채는 수입보다 지출이 많을 때 발행하는 일반회계 적자 보전용 국채다. 즉 빈 곳간을 메우기 위해 빚을 낸 셈이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적자국채는 문재인 정부 동안 꾸준히 증가했고 이 기간 발행한 적자국채만 316조원에 달했다. 문재인 정부(2017년 5월) 출범 이후인 2018년 적자국채 발행 규모는 15조원이었다. 이후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2020년에는 102조8000억원으로 2년 만에 약 10배 급증했다. 2021년에는 88조2000억원, 2022년에는 86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적자국채는 문재인 정부 동안 꾸준히 증가했고 이 기간 발행한 적자국채만 316조원에 달했다. 사진은 경남 양산 하북면 평산마을에 개장한 평산책방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인사 나누는 문재인 전 대통령 /연합뉴스
적자국채는 문재인 정부 동안 꾸준히 증가했고 이 기간 발행한 적자국채만 316조원에 달했다. 사진은 경남 양산 하북면 평산마을에 개장한 평산책방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인사 나누는 문재인 전 대통령 /연합뉴스

올해 1000조를 넘어선 국가채무는 2017년 당시에도 660조원으로 GDP 대비 36%에 달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빚을 더 냈다. GDP 대비 국가채무는 2018년 35.9%→2019년 37.6%→2020년 43.6%→2021년 46.9%→2022년 49.6%으로 나라빚이 GDP의 절반에 수렴한다. 차기 정부가 오는 2026년까지 부담할 이자는 예정처 추산에 따르면 115조7000억원이다.

한국은 이미 ‘통치 침식’ 진행 중
국가채무비율 증가 속도 세계 5위
“재정 준칙 법제화 추진 시급해”

피치가 통치 침식을 이유로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것처럼 한국은 이미 재정 관리 약화에 따른 신용 등급 강등도 고려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피치는 재정적자 한도 증액 문제와 거듭된 재정절벽으로 인해 미 연방정부의 부채 부담 증가세와 미 정치권의 기능 마비가 확인됐다고 강등 이유를 밝힌 바 있다.

한국의 통치 침식은 이미 진행 중이다. 지난달 2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민생경제의 고통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이런 상태를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직무 유기라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면서 35조 추경 편성을 재차 요구하고 있다. 반면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연초부터 야당에서 계속 추경하자는데 그 짓은 못한다. 재정을 건전하게 해야 한다"며 "지금도 빚내서 사는데 더 빚을 내면 정말 안 된다. 빚내는 추경은 안 하고 있는 돈을 가지고 여유 자금을 만들어서 대응하겠다"고 추경 반대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이런 대치 속에서 재정 준칙 법제화가 대두되고 있다. 이미 마련한 재정 준칙 법안은 국회에 11개월 넘게 계류 중이다. 정부는 작년 9월 나라 살림 적자(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GDP의 3% 이내로 관리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냈다. 다만 국가부채비율이 GDP의 60%를 넘기면 적자 비율을 2% 이내로 축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반발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위원회도 통과하지 못했다.

재정 준칙 법안은 국회에 11개월 넘게 계류 중이다. /연합뉴스
재정 준칙 법안은 국회에 11개월 넘게 계류 중이다. /연합뉴스

올 초 리차드 휴스 영국 예산책임청 의장은 ‘글로벌 국채 투자기관 라운드테이블’에서 최상대 기획재정부 2차관을 만나 “한국의 재정 준칙은 단순하면서도 채무 증가 속도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구속력 있게 고안됐다”고 평가하면서 “준칙 준수를 위해서는 반드시 법제화해야 하고 재정위험의 사전 분석과 대응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국가 채무 비율 증가 속도는 세계 5위 안에 든다. 지난해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재정점검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 중 오는 2027년까지 국가채무비율이 증가하는 국가는 미국(12.8%포인트), 벨기에(11.2%포인트), 핀란드(8.4%포인트), 프랑스(6.7%포인트) 다음으로 한국(3.6%포인트)이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하진 않았지만, 재정 준칙 법제화에 대해 지속해 언급하고 있다. 무디스는 지난 5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과 등급 전망에 대해 각각 ‘Aa2’와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나랏빚을 함부로 늘릴 수 없도록 하는 재정 준칙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18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위해서는 재정준칙 법제화가 시급하다”면서 “2021년 기준 OECD 38개 국가 중 35개국이 재정준칙을 도입했으며 이 중 29개국은 이를 법제화하고 있어 한국이 글로벌 스탠다드를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경선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아태재정협력센터 센터장은 ‘국가 간 분석을 통한 재정 준칙의 재정 건전화 효과 실증분석’ 논문을 통해 “유럽은 수지준칙, 채무준칙, 지출준칙이 모두 재정수지를 개선시킨다. 이 중에서 수지준칙이 재정수지를 가장 크게 개선하고, 다음은 채무준칙과 지출준칙 순이다”라면서 “우리나라의 재정 및 경제 상황이 여타의 아시아 국가들보다는 유럽 국가들과 유사한 점을 고려하면 재정 준칙 도입은 재정건전성 확보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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