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日 ‘잃어버린 30년’ 美 견제서 기인
바통 이어받은 중국 고도 경제성장
러·우 전쟁 기점 양국 경기 판 갈려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은 최근 물가가 3.3%나 상승하며 미국 물가 오름세에 버금가고 있다. 닛케이 225 주가지수는 3만3000 포인트에 이르렀다. 반면 중국 경제는 디플레이션의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모양새다. /AP=연합뉴스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은 최근 물가가 3.3%나 상승하며 미국 물가 오름세에 버금가고 있다. 닛케이 225 주가지수는 3만3000 포인트에 이르렀다. 반면 중국 경제는 디플레이션의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모양새다. /AP=연합뉴스

미국에서 방영된 중일전쟁 다큐멘터리를 보면 미국의 일본에 대한 강한 적개심과 중국에 대한 커다란 우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이 당시의 중국은 공산당이 대륙을 차지하기 전이다. 2차대전 당시 제로 전투기와 거대한 전투함으로 무장한 일본군은 미국에 공포 그 자체였다.

그 공포가 미국에 ‘맨해튼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으로 이어졌다. ‘국화와 칼’로 상징되는 일본은 미국의 노회한 정치인들에게는 여전히 경계해 마지않아야 할 나라로 인식돼 있다.

그런 인식은 일본이 고도성장기를 거쳐 1980년대 반도체, 자동차를 비롯한 첨단산업에서 미국의 경쟁력을 위협하자 또다시 현실화했다. 1985년 레이건 행정부는 G-5 재무장관을 소집해 회담을 갖고 플라자합의를 이끌어냈다. 엔화 강세를 끌어내 세계를 삼키려는 일본 기업의 기세를 꺾어 놓으려는 시도였다.

실제로 그 여파는 컸다. 1985년 달러당 256엔에 이르렀던 엔화 환율은 10년 후인 1995년에는 달러당 82엔대까지 하락했다. 엔화 가치가 200% 넘는 강세를 보였다. 1만 달러짜리 자동차 1대를 팔면 1985년에는 256만 엔의 매출을 올렸지만 1995년에는 82만 엔의 매출에 그쳤다.

한 나라의 통화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강세를 보이면 국제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제품의 수입 가격도 하락해 물가의 하방 압력이 심해진다. 일본 경제는 그 압박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다. 경제는 거의 성장하지 않았고 물가는 하락했다. 임금은 수십 년째 제자리를 맴돌았다.

그렇게 욱일승천하던 기세가 완전히 꺾인 세계 2대 경제 대국 일본의 지위를 차지한 것은 중국이었다. 외교적으로 미국의 편에 서서 소련을 견제해 동구권의 공산권 해체에 기여한 중국은 미국의 애정을 듬뿍 받으면서 WTO 가입에 성공했다. 미국이 친중을 강화하고 대중국 직접 투자에 열을 올리면서 전 세계 자본이 중국으로 빨려 들어갔다.

값싸고 성실한 노동력에 더해 글로벌 자본이 밀려들자 중국경제의 성장은 떼놓은 당상과 마찬가지였다. 자본 투자에 더해 미국은 중국 학생들을 받아들여 공짜로 교육하고 생활비까지 지급했다. 주요 명문대학의 박사과정은 중국 학생들로 넘쳐났고 이들은 학계를 집어삼킬 듯 성장을 거듭했다.

그 사이 부동산 버블이 터진 일본은 침체의 긴 터널을 지나야 했다. 중국의 부상은 일본에는 더 큰 경기 하강의 심화를 뜻했다. 일본 자본도 국내 투자보다는 생산성이 높은 중국으로 몰려갔다. 중국이 G-2 자리에 오르는 동안 일본은 잃어버린 수십 년을 감내하면서 성장을 잊은 식물 경제가 되어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추세가 바뀔 것이라 본 이는 많지 않았다. 시간이 문제일 뿐 중국경제가 미국을 추월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동아시아의 오랜 두 숙적 사이의 경쟁 구도에 극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쉼 없이 달릴 것이라 예상됐던 중국 경제 성장률은 급격히 꺾이고 있다. 물가는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 일본의 디플레이션 경제를 보는 듯한 데자뷔가 중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반면 일본의 지난 2분기 경제성장률은 1.5%를 달성했다. 연이율로는 6%에 이르는 깜짝 성장이다.

일본 물가도 3.3%나 상승하며 미국의 물가 오름세에 버금가는 수준이 됐다. 한때 1만 선 아래로 추락했던 닛케이 225 주가지수도 어느새 3만3000 포인트에 이르렀다. 엔∙달러 환율도 상승세를 지속하며 달러당 150엔선을 위협하고 있다.

요컨대 일본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의 긴 터널을 벗어나고 있는 반면, 중국 경제는 디플레이션의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두 나라 경제의 큰 그림을 완전히 바꿔버린 것일까? 변화의 추동력으로는 우선 지정학적 요소를 빼놓을 수 없다.

작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일본은 적극적으로 러시아를 비난하고 지속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지했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았다. 뒤로 러시아산 원유와 원자재를 사들이고 각종 물품을 수출하면서 잇속을 채웠다. 은근히 푸틴을 지지하면서 러시아의 뒷배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중국은 세계화가 탈세계화로 전이되는 시점에서 단기적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간 중국의 변심을 긴가민가했던 미국과 유럽 서방 진영에는 이제는 중국과 갈라설 수밖에 없다는 확실한 '헤어질 결심'을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이런 지정학적 환경의 급변은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적 충격으로 전이될 수밖에 없다. 서방의 중국에 대한 직접투자는 급감하고 기존에 투자했던 자본도 회수하고 있다. 메이드인차이나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면서 중국의 수출도 감소한다. 그 틈을 베트남과 인도 그리고 기타 아시아 국가들이 메우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이 가속화한다.

브릭스 확대 명·청 시대 재현, 中 소외
“일본 부상·중국 몰락 큰 회오리 될 것”

중국은 브릭스(BRICS)를 확대해 여기에 맞서 보려고 하지만 개성이 강한 지역 맹주로 구성된 브릭스가 중국을 중심으로 단합해 단일대오를 형성하리라 보긴 어렵다. 사진은 시진핑 중국 주석과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담 중인 모습. /EPA=연합뉴스
중국은 브릭스(BRICS)를 확대해 여기에 맞서 보려고 하지만 개성이 강한 지역 맹주로 구성된 브릭스가 중국을 중심으로 단합해 단일대오를 형성하리라 보긴 어렵다. 사진은 시진핑 중국 주석과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담 중인 모습. /EPA=연합뉴스

중국은 브릭스(BRICS)를 확대해 여기에 맞서 보려고 하지만 개성이 강한 지역 맹주로 구성된 브릭스가 중국을 중심으로 단합해 단일대오를 형성하리라 보긴 어렵다. 결국 중국만 소외된 채 해금 정책으로 국제교역망에서 벗어나 세계사의 흐름에서 멀어졌던 명·청 시대의 역사를 재현할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두 나라 경제펀더멘털의 변화도 가볍게 볼 수 없다. 일본은 미국의 대중 견제책인 인도-태평양 구상을 주도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해외자본의 투자 유치에 성공해 제2의 도약기를 준비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경제보다 이념을 앞세우는 정치 과잉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어 경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경제는 사람의 몸과 같은 유기체적 성격이 강해 조금만 균형을 잃어도 크게 비틀거리는 경향이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조기에 바로잡을 타이밍을 놓치면 경제는 끊임없이 추락하게 된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좋은 예다.

그런데 현재 중국 경제가 처한 문제는 과거 일본이 마주했던 문제보다 훨씬 심각하다. 정책의 유연성도 부족하다. 과감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정치 제제의 뒷받침도 전무하다. 동아시아 경제에 큰 회오리를 몰고 올 일본의 부상과 중국의 몰락을 가볍게 보아선 안 되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주 가드너웹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퍼먼대학교에서 재무 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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