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음파 진단기기 이어 두 번째
한의사 "한의학, 의학적 기준 평가 말라"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대법원이 지난해 초음파 진단기기의 한의사 진단 허용에 이어 뇌파계도 의료 행위로서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내놓자,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22일 대법원 1부는 뇌파계 사용 후 면허정지 처분을 받은 한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낸 면허 자격정지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가 일부승소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뇌파계는 대뇌 피질에서 발생하는 뇌파를 검출해 증폭·기록하는 의료기기다. 주로 뇌 관련 질환을 진단하는 데 쓰인다. 대법원 관계자는 "(한의사가) 뇌파계를 파킨슨병, 치매 진단에 사용한 행위가 '한의사로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첫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10년 A씨가 뇌파계를 이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하고 한약으로 치료한다는 광고를 한 일간지에 게재하면서 촉발됐다. 

해당 광고 내용을 확인한 관할 보건소장은 A씨가 면허 범위를 벗어난 의료행위를 했다며 업무정지 3개월과 경고 처분을 내렸다. 이후 복지부도 같은 이유로 3개월 면허 자격 정지와 경고 처분을 했다. 그러자 A씨는 해당 조치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작년 12월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진료에 사용해도 의료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한의사가 진단 보조 수단으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보건위생에 위해를 발생시킨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뇌파계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내놓자 한의사들은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됐다"며 환영했다. 다만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최근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 무면허 의료행위 사건 관련 대법원판결의 문제점’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대법원판결의 문제점과 파급효과에 대해 비판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의료제도, 정책, 불법 의료를 개혁하기 위한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뜻을 같이하는 22명의 의사가 2017년 설립한 단체다.  

연구소는 대법원의 한의사 뇌파계 사용 판결과 관련 △현대의학에서 파킨슨병과 치매는 뇌파로 진단하지 않는다 △뇌파의 측정 자체는 위험하지 않으나 뇌파의 잘못된 해석은 환자의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친다 △한의학 교과서에서도 뇌파를 이용한 진단법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며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와 관련 신경의학회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현대의학 질병 진단 과정에서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할 때 뇌파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면서 "뇌파계를 사용하는 데에 있어 특별한 임상 경력이나 전문지식이 필요 없고, 환자에 대한 위해도도 높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큰 위협이며 장차 보건의료에 심각한 위해를 줄 수 있는 명백한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꼬집었다.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서를 내고 "의료계는 한의학 교과서 등에 의과 의료기기를 이용한 진단법과 치료법이 체계적으로 정립이 되어있지 않음에도 이를 이용하는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고민해 볼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 등 한의학을 옹호하는 단체에선 한의학을 의학적인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한의협 관계자는 "이번 대법원판결은 7년 전 내려진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며 한의사가 현대 진단기기인 뇌파계를 활용해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명확히 밝혀준 판결로 그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대 진단기기는 현대의학의 전유물이 아닌 한의학의 과학화와 현대화에 필요한 도구이자 문명의 이기이며, 이를 적극 활용해 최상의 치료법을 찾고 이를 실천하는 것은 의료인으로서의 당연한 책무"라면서 "초음파와 뇌파계 등 다양한 현대 진단기기로 보다 더 효과적인 한의약 치료를 시행해 국민건강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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