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 없는 무소불위의 특권 누리는 법관들
의사는 금고형 이상 교통사고만 내도 퇴출
형사고소·고발 시달리는 의료인과 대조적

업무와 관련된 것이 아니더라도 금고형 이상의 실형을 받는 의사들의 면허를 취소하는 법이 11월 20일부터 시행되면서 의료계가 긴장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업무와 관련된 것이 아니더라도 금고형 이상의 실형을 받는 의사들의 면허를 취소하는 법이 11월 20일부터 시행되면서 의료계가 긴장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판사는 고의 또는 과실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혀도 국가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국가배상법상 중과실에 대한 입증 책임이 피고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의사는 의료 사고가 아니라도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면허가 취소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간호법에 대해선 거부권을 행사하면서도 국회를 통과한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선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결국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은 의사는 의료인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의 의사면허 취소법이 오는 11월 20일부터 시행된다.

반면 법관의 경우 성범죄를 벌이고도 경징계받고 로펌 전관으로 취업해 고액 연봉을 누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나타나 같은 면허업 종사자인 의사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우선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사례 1] 2017년 7월 한 판사가 서울 시내 지하철역 안에서 여성의 신체 일부를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하다가 붙잡힌 사건에 대해 법원은 감봉 4개월의 징계만 내렸다. 검찰도 약식 기소만 해서 이 판사는 벌금 300만원 처벌을 확정받았다.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지 않았기 때문에 파면을 면할 수 있었다. 이 판사도 다음 해인 2018년 법원을 떠난 뒤 2020년 대형 로펌에 변호사로 취업했다.

[사례 2] 지난 2016년 한 부장판사가 강남 오피스텔에서 성 매수를 하다가 걸렸고, 2017년에는 서울 지하철에서 여성 신체를 몰래 촬영하던 판사가 붙잡혔지만 가벼운 처벌만 받고 대형 로펌에 취업해 지금도 고액 연봉을 받고 있다.

중세 유럽의 길드(guild·동업자조합)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11~16세기 유럽에선 수공업자 보호를 명분으로 야간작업을 법으로 금지하기도 하고 제품 가격을 통제하기도 했으며 장인의 지위도 세습화하면서 지대추구 행위를 벌였다. 특정 집단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규제를 설정해 놓고 이익을 누리는 것을 '지대추구행위'(rent seeking)라고 한다. 일정 자격을 갖춘 이에게만 면허(免許)를 발급하는 의사, 변호사 등 정부가 공급을 제한하는 직역에서 '이권 추구'의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국내에선 면허업종인 의사마저 불평을 제기할 정도로 법원·검찰에 종사하는 직종에 지대 추구가 집중돼 있다. 여기엔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106조 1항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10월 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신임 법관들이 선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신임 법관들이 선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를 '사법 카르텔'로 규정한다. 범죄에 적발된 판사들이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대형 로펌으로 가는 배경엔 변호사 개업을 승인해 주는 대한변호사협회도 있다는 지적이다. "민간이 잘못하면 국가가 징벌이라도 할 텐데 공공은 버티면 대책이 없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박 의원에 따르면 지금까지 법관에 대한 가장 높은 수위의 징계인 정직 1년을 받은 판사는 ‘명동 사채왕’에게 1억1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판사 정도가 있다. 박 의원은 "통상적인 뇌물죄 형량은 수뢰액이 1억 이상이면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 징역의 중범죄인데도 현실은 이렇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이 알려지면서 현재의 법관징계법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판사 특권에 의사들 불만 목소리↑
성범죄를 저질러도 솜방망이 처벌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징계는 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가장 강도 높은 중징계는 '파면'이 확정되면 5년간 공무원 임용이 제한되고 퇴직금은 절반만 받게 된다. 반면 현행 판사징계법은 정직·감봉·견책이 3단계로 제한돼 있다. 검사징계도 해임·면직·정직·감봉·견책 등 5가지뿐이다. 징계법상 '파면'이 없는 판·검사는 재임 중 비위를 저질러도 지금까지 누려온 직책의 혜택을 박탈당하거나 재임용에 어려움을 겪을 일이 적다는 것이다. 

반면 심지어 대학에서도 '파면'은 처벌 수단으로 종종 활용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 6월 13일 서울대 교원징계위원회로부터 파면당했다. 조 전 장관 쪽은 아직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지 않았다며 징계 절차를 멈춰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교육공무원법상 파면 처분된 사람은 임용 및 특별 채용에 제한이 있다.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에서 이동하는 검사들 /연합뉴스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에서 이동하는 검사들 /연합뉴스

의사면허 취소법 적용 대상의 의료인에는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도 포함된다.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은 경우 형 집행 종료 후 5년, 집행유예는 기간 만료 후 2년까지 면허 재교부가 금지된다. 이러한 법 개정에 앞서 교통사고로 인한 과실까지 의사 면허 취소 범위에 들어가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대한의사협회에선 "1973년 유신체제 때 당시 의료인들을 국가공무원처럼 만들었던 그때보다 더 강화시킨 것"이라는 비난 성명까지 나왔다. 

이번 의료법엔 의료행위 중 일어난 과실은 제외한다는 문구가 포함되긴 했다. 그러나 업무상 과실치사상을 면허취소 사유에서 배제하더라도 검찰에 입건 송치돼 형벌을 받는 국내 의사 비율은 어느 나라보다 높다. 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업무상 과실치사상으로 검찰에 입건 송치된 의사는 연평균 752.4명으로 같은 기간 40만명 중 56명에 불과한 일본과 10배 이상 차이가 났다.

대한의협 의료정책연구소에 의하면 한국 의사의 기소율은 연평균 44.6%에 달한다. 일본(26.2%) 등과 비교했을 때 월등히 높은 수치다. 우봉식 소장은 "우리나라 의사 1인당 연간 기소 건수는 일본의 265배, 영국의 895배에 달한다"면서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법적 보호 장치는 없고 징벌적 규제만 가득하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