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갑질 있었다는 동료 제보 확인돼
권리만 있고 의무 없는 교실붕괴 희생자
교권 침해 폭언·폭행·명예훼손 유형 多
그럼에도 학부모 갑질 쉬쉬하는 정치권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정문을 장식한 추모 꽃다발과 화한. 벽면은 A씨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으로 가득채워져 있다. /이상헌 기자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정문을 장식한 추모 꽃다발과 화한. 벽면은 A씨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으로 가득채워져 있다. /이상헌 기자

"오늘날 교실 현장에선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만 있고 '의무'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교실붕괴가 심각히 나타나는 이유다.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데 쉬쉬하고 방치하다보니 결국 현직 교사가 죽는 상황까지 이른 것이다." 

20대 여교사가 학부모 갑질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상황에 대해 지난 수년간 교권 회복운동을 펼쳐온 한 교사는 이같이 설명했다. 본지가 21일 찾아간 서울시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담장엔 전국의 동료 교사들이 보낸 추모 조화 2000여개가 들어찼다. 벽면을 빼곡히 장식한 화환 사이 벽면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메시지가 가득찼다.

A씨(23)는 임용 2년 차인 신규 교사였다. 정확한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으나 그가 담임을 맡은 교실에서 학폭 논란이 발생하고 이후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리다 교사로서의 극심한 자괴감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상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가 난무하기 앞서 서울교사노동조합이 동료 교사로부터 확인한 제보에 따르면 "A여교사가 담당한 학급에서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이마를 연필로 긁는 사건이 발생했고 피해 학부모가 교무실에 와 고인에게 ‘교사 자격이 없다’ ‘애들 케어를 어떻게 하는 거냐’고 항의했다"는 것이다.

동료 교사는 "A 여교사가 '학부모가 휴대전화 번호를 입수해 수십 통 전화해 소름 끼친다. 학부모들 민원으로 힘들다'고 했다"고도 전했다. 특히 이런 가운데 서이초 교장이 "해당 학급에서 학교폭력 신고 사안이 없었다"면서 발뺌하는 해명을 내놓으면서 학부모 갑질이 원인이었다는 정황이 굳어지고 있다.

A씨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으로 가득찬 서이초등학교 담장. /이상헌 기자
A씨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으로 가득찬 서이초등학교 담장. /이상헌 기자

서이초 학교 담장은 학부모 갑질과 교권 침해에 분노하는 동료 교사들의 메시지로 가득 채워졌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악성민원 가해 학부모 보고 있나" "교권 바라지도 않는다, 인권이라도 지켜달라" 등 학부모 갑질을 폭로하는 내용의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방학을 맞아 검은색 옷을 입고 개인적으로 현장을 방문하는 이들 역시 대부분 현직 교사였다.

대한민국 교권이 무너진 징후를 보인 것은 하루이틀 된 일이 아니다. 지난 2015년 경기도 이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남학생들이 기간제 교사에게 욕설을 하면서 빗자루로 수차례 때린 이른바 '빗자루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부산의 한 중학교에서 남학생이 여교사의 수업 도중 교실에서 자위행위를 하다가 적발되는가 하면, 교사가 훈계를 하거나 체벌하려고 하면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꺼내 촬영하면서 위협하기도 했다. 또 올해 서울의 다른 초교에서도 6학년 남학생이 여교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이초 담장은 교권침해와 생활지도의 어려움, 과도한 행정업무, 불합리한 경쟁 등으로 교직생활에 회의를 느끼면서 단 한마디 못하고 참아온 교사들의 침묵의 시위 현장이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교권 침해가 사실이라면 우리 교육계에 중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서울시 서초구 서이초등락교 후문까지 A씨를 추모하는 화환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상헌 기자.
서울시 서초구 서이초등락교 후문까지 A씨를 추모하는 화환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상헌 기자.

학교 안팎에선 "교사를 지켜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해답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날 조문 현장을 방문한 조희연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은 "일부 학부모의 민원 제기 과정에서의 갑질적인 행태들이 좀 있어서 그 부분이 지금 제기되고 있다"며 사실관계 확인조차 못한 모습을 보였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도 이날 학생인권조례 재검토 등 제도 개편을 예고했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은 교권 침해 우려가 있는 학부모의 학교 출입을 제한하는 교권보호조례를 입법 예고한 바 있다. 언뜻 교사들을 보호하는 그럴싸한 정책으로 보이지만 민원인이 적법한 절차를 위반하면 출입을 제한하고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것은 별다른 법이 없어도 지금도 가능한 일이다.

교사들이 말하는 교권 침해는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어 교사에 대한 갑질을 특권으로 생각하는 교실 붕괴를 뜻한다. 또 그 유형은 폭언·폭행·명예훼손 등이 대부분이지만 김기현·장예찬 등 국민의힘 지도부는 학부모 갑질 논란이 민주당발 가짜뉴스라는 프레임 공세에 몰두하고 있다.

이날 현장에서 여성경제신문과 만난 한 교사는 "회복 불가능한 상황까지 왔지만, 지금까지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없었던 교사들의 분노가 전국적으로 한꺼번에 분출되는 상황을 정치권이 정쟁으로 활용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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