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22% 독일의 장기 요양 구조 보니
가족 돌봄 비중 늘려···시설=소규모화
전문가 "거주 형태의 다양성 보장해야"

독일 베를린에 있는 키르슈베르크 노인 거주 공원은 집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고령자를 위한 요양 시설이다. 볼프강(익명) 씨는 두 살 차이 아내와 함께 이곳에 입소했다. 둘을 위한 공간이 있고 매일 마당에서 레크리에이션 등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지내고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또 다른 고령인 안나 씨는 얼마 전 치매 초기 판정을 받은 어머니를 집에서 모시고 있다. 안나 씨 어머니는 장기요양 3등급 판정을 받았다. 이를 통해 안나 씨는 매달 545유로(78만4200원)를 받고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최대 10일간의 돌봄 휴가도 받을 수 있다.
전문 간호 인력의 도움을 받고 싶다면 1298유로(약 186만7700원) 상당의 케어 서비스를 신청하면 된다. 초기 치매라 다행이지만 치매 환자를 대하는 법을 모르는 안나 씨를 위해 지자체에서는 매주 교육도 해준다. 안나 씨는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아직 초기 치매라 굳이 시설에 입소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며 "충분한 돌봄에 필요한 경제적 지원도 나오고, 병세가 잠시 심각해지면 간호 서비스도 추가로 이용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6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전체 인구의 약 22%가 고령자인 독일은 요양 서비스에 대해 일명 '투-트랙' 전략을 구성했다. 쉽게 말해 집에서 돌보기 어려운 고령 환자는 시설 서비스를 이용하게 하고 초기 치매 환자처럼 가족이 충분히 돌볼 수 있는 환자는 집에 머물도록 했다. 10년 내에 모든 요양 시설을 폐쇄하고 '모두 지역사회에서 케어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국내 탈시설 기조와는 다른 분위기다.
다만 현지 분위기와 문화적 특성은 한국과 많이 다르다. 장기 요양 등급에 따라 약 70~80%는 국가에서 나머지를 본인이 부담해 요양 시설을 이용하는 점이 국내 정책이다. 독일은 시설을 이용할 경우 요양비는 장기 요양보험에서 빠져나가지만, 숙박비와 식사비는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입소 노인은 숙박비와 식비의 경우 연금에서 지불한다. 오랜 시간 연금을 적립해 상당한 수의 연금을 받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비용 부담 능력이 없지만 시설 이용이 불가피한 노인에게는 지자체에서 대신 비용을 지급해 준다.
독일은 요양 시설의 경우 '필요한 경우'에만 입소하는 추세다. 실제로 장기요양 수급자 중 지난해 기준 약 490만명(82%)이 재가 서비스를 이용한다. 지난달 7일 한국을 방문한 독일 요양원 관계자 칸 씨는 이기일 복지부 차관을 만난 자리에서 "독일의 경우 노인은 늘어나는데 간병 인력이 부족해 베를린의 많은 요양원이 문을 닫고 있다. 따라서 가족 돌봄을 장기 요양의 미래로 생각해 가족 돌봄에 투자를 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다만 "가족이 환자를 제대로 돌보고 있는지에 대한 관리 및 감독이 강하고, 가족에게도 일정 시간 환자를 돌보기 위한 필요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시설의 경우도 무조건 폐쇄하는 것이 아닌, 소규모화하면서 꼭 시설 입소가 필요한 환자만 선별해 이용하도록 한다. 따라서 입소자 수를 줄이고 입소자는 양질의 서비스를 받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대부분이 4인 1실, 2인 1실인 국내 요양원과는 달리 독일은 입소자 수를 줄여 1인 1실, 혹은 부부 생활 공간 등으로 구성했다. 요양 보호사의 경우에도 15~20%를 외국인 인력으로 구성해 충원했다. 또한 독일은 가족이 환자를 돌보는 인원이 전체 장기 요양 수급자 중 280만 명가량이고, 요양 보호사와 간호사 등이 약 120만명으로 구성됐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돌봄이 가능한 경우는 집에서 돌보게끔 하고, 그렇지 않으면 시설로 입소시키는 일명 투트랙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따라서 국내도 시설의 '무조건적인 폐쇄'보다는 시설 이용이 불가피한 장기 요양 수급자를 위한 하나의 '선택지'로 생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석왕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회장은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무조건적인 시설 폐쇄는 시설을 이용해야만 하는 수급자에겐 청천벽력"이라며 "시설 다양화 전략으로 가야 한다. 실제로 노인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경우 시설을 이용하고 싶어도 국가의 시설 소규모 정책으로 인해 입소조차 못 하는 최중증 장애인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관련기사
- 경기도 조례안서 불붙은 탈시설 논쟁, '당사자 의견' 배제 논란
- 경기도, 전국 최초 최중증 장애인 돌봄 실태조사
- 챗GPT, 장애인 탈시설 '적극 지지'···다만 당사자 의견 최우선
- 원희룡, 복지시설 단체 만나 "주거복지 지원 위해 노력하겠다"
- [인터뷰] 정석왕 한장협회장 "탈시설 논란, 정치권 갈라치기 탓"
- [기자수첩] 석션을 모르는 복지부 장애인 담당 직원
- 장애인 의료비 지원, 복지부 있는데 굳이 경기도에서?···이용률 60%대
- [단독] 시설 입소 대기 장애인 전국 1223명···'동반자살' 사각지대 놓였다
- 한·일 사회 복지 상징 '공생원' 설립 95주년··· 尹 "약자 복지 실현"
- 서울시 '장애인 거주 시설 다양화 정책' 확대···내년 '탈시설 예산' 전액 삭감
- 정석왕 한장협 회장 "시민 볼모 삼는 전장연, 국민께 사과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