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무시 계약 불이행, 저작권 없이 촬영
작품 훔치는 관행 남을까···영화계 촉각

"영화사의 불공정 계약 및 계약 불이행 폭로 직전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습니다. 이걸 폭로하면 보이콧으로 제 작품은 아무도 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 자식을 칼로 찔러 죽이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또 주변의 응원과 지지와 별개로 저는 같이 일하기 까다로운 사람이 됐습니다. 이번 폭로는 저의 모든 걸 걸고서 진행한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어른동화' 저작권자 윤모 씨
영화업계에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저작권을 가진 사람의 동의도 없이 영화 촬영이 진행됐다. 법조차도 영화계 종사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14일 여성경제신문은 '영화사 S'의 몰상식한 행위로 영화 감독 권리마저 잃었다고 주장한 윤모 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사를 만나기 이전에 이미 저작권 등록을 완료한 상태였지만 법과 계약을 무시하고 감행된 촬영에 윤씨는 모든 권리를 빼앗겼다.
영화 제목은 '어른동화'다. 지난달 5월 배우 '박지현' '최시원' '성동일'의 캐스팅이 확정됐으며 저작자조차 모르는 사이에 진행된 촬영은 오는 7월에 끝난다. 여성경제신문은 '영화사 S'가 어떤 잘못을 했으며 이 사건이 영화업계에 어떤 파란을 몰고 올 것인지 윤씨와의 일문일답을 통해 풀어냈다.
ㅡ영화 '어른동화'의 촬영은 계속되고 있다.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제작이 가능한가요.
저는 2013년 '어른동화'를 저작권으로 등록했고 2018년엔 서울영상위원회로부터 시나리오 지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원받을 당시 시나리오는 이미 완성된 상태였습니다. 지원 사업에서 당선된 과정에서 '영화사 S'를 만나게 됐죠. 그렇게 체결한 각본 및 감독 계약에서 저의 역할로 캐스팅·스텝 고용·촬영·일정 조율 등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중 1차 편집권은 저에게 있었죠. 하지만 '영화사 S'는 그건 감독 계약이 아니라 감독의 우선권을 주는 계약이라면서 자신들이 잘못된 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ㅡ'영화사 S'가 저지른 잘못은 뭔가요.
계약서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실 계약 조항 자체도 불공정했습니다. 최종 결정권은 '영화사 S'가 가지고 있는 계약이었죠. 다만 영화 '어른동화'의 저작권자는 저이기에 법정 공방으로 간다면 제가 유리하다는 감정을 받았습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등 정부 관계자나 변호사와 같은 많은 사람에게 법적 자문을 구했습니다. 영화계 분쟁중재기구인 영화인신문고는 '어른동화'의 계약을 해지하라는 결정까지 내렸죠. 하지만 '영화사 S'는 중재 결정을 거부했습니다.
법적으로도 업계 관례로도 말도 안 되는 사건입니다. 전문가 반응이 저작권자를 무시하고서 영화 촬영에 들어간 사례가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혹시 각서나 녹취를 당한 거 아니냐는 질문까지 받았습니다. 재수 없게 드문 사건에 제가 걸린 거죠.
입봉(감독 등단)하겠다는 욕심과 조바심으로 불공정한 계약인 걸 알고도 체결했다는 저의 잘못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영화사 S'는 그런 계약 조항조차 이행하지 않았어요. 제가 영화의 각본과 감독을 맡는다는 계약 조건은 명확했지만 그걸 빼버렸죠. 감독을 맡는 조건이 아니었다면 불공정한 계약을 자발적으로 하진 않았을 겁니다.
ㅡ법적인 승산이 있다면 '영화사 S'를 고소할 생각이 있나요.
사실 영화 '어른동화' 말고도 저의 다른 작품의 저작권도 '영화사 S'에 도용당한 상황입니다. 계약 분쟁이 일어나는 틈에 '영화사 S'에서 먼저 저작권 등록을 진행해 버린 겁니다. 그래서 해당 사건으로 민사로 분쟁조정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어른동화'는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에요. 현재 촬영은 7월에 끝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선 촬영이 종료된 상황에서는 그때 '영화사 S'의 갑질이 알려지더라도 편집은 안 보이는 곳에서 가능해 영화 상영까지 무리가 없다고 판단되고 있습니다. '영화사 S'도 그걸 알기에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에게 보도를 늦춰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대응하거나 공권력 있는 기관의 결정을 기다리는 덴 시간이 걸려서 사건 해결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계약보다 적어진 배당금
제보 시 고소하겠다 협박
ㅡ사건을 접한 동료들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영화업계 사람들은 생업이기 때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저작권이라는 법적 보호 장치가 있는 상황에서 작품을 빼앗아 갈 수 있다는 점에 굉장히 놀라면서 사건에 대해 촉각을 세우고 있죠. 제가 이기고 지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채 영화 '어른동화'가 완성되고 이게 선례로 남게 된다면 앞으로는 작가와 먼저 계약을 진행하고 작품을 훔칠 수 있는 관행이 생길 수 있어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ㅡ'영화사 S'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지난 9일 '영화사 S'에서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더 이상 공동제작사나 언론에 제보한다면 업무방해와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형사 고소 및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협박이었죠. 사과를 하고 일을 바로 잡기 위한 내용일 줄 알았던 저의 일말의 기대마저 무너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