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만에 손익분기점 근접한 '바비'
'페미니즘' 반감에 한국선 흥행 저조

미국에선 개봉 첫 주부터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7: 데드 레코닝 Part One> 성적을 뛰어넘은 <바비>가 한국에서는 고전하고 있다. <바비>가 개봉부터 '페미니즘 영화'로 낙인찍히면서 흥행에 차질을 빚었다.
31일 영화 수익 집계 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영화 <바비>가 개봉일 13일 만에 세계적으로 약 3억5000만 달러(한화로 4474억원)의 수익을 냈다. 3억6250만 달러의 손익분기점 추정치도 가뿐히 넘길 전망이다.
개봉 8일째인 지난 28일(현지시간) <바비>는 북미에서만 총 2억87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또한 <바비>는 한날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기대작 <오펜하이머>보다 두 배에 가까운 1억6200만 달러(한화로 2070억원)의 오프닝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검열이 엄격한 중국에서조차 1360만 달러(한화로 173억원)의 수익을 거두면서 <바비>는 세계적으로 대흥행하고 있다.
다만 한국에선 유난히 저조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바비>는 30일 기준 박스오피스 5위에 머물렀다. 개봉 둘째 주간의 <바비> 관객 수는 지난 6월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엘리멘탈>의 관객 수(13만명) 10% 수준인 2만7000명에 그쳤다.

개봉에 앞서 주연배우와 감독이 영화 홍보를 위해 내한까지 한 걸 고려하면 <바비>의 한국 성적은 낙제에 가깝다. 흥행 실패의 가장 큰 이유로 '페미니즘'이 꼽힌다. <바비>가 개봉부터 '페미니즘 영화'로 낙인찍히면서 성적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페미니즘 메시지가 (영화 흥행 부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북미에서는 사회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에 '바비'에 나오는 풍자를 유머로 받아들인다"며 "반면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한국에서는 영화라는 오락물에 관련 메시지가 나오는 데 거부감이 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영화 평론가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이동진 평론가도 '페미니즘' 논란에 휩싸였다. 그가 <바비>에 대해 "컨셉트가 영화보다 크다"며 5점 만점에 2.5점으로 평가한 것을 일부 네티즌이 '페미니즘'과 연관하여 해석했다. 이에 이동진 평론가는 "전혀 맥이 닿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국에서의 <바비> 평점은 성별에 따라 갈리고 있다. 네이버 관람객 평점을 살펴보면 여성의 평점은 10점 만점에 9.30점이나 남성은 6.04점에 그쳤다. 관람객 중 남성의 비율은 23%로 31일 기준 박스오피스 1위의 <밀수>를 관람한 남성이 전체의 45%인 것과 차이가 난다.
또한 관람평은 "페미니즘 사상 교육 영화인 줄 알았다. 2023년에 아직도 이런 영화가 나온다는 게 신기하다. 누가 여성들을 억압하고 사회 진출을 막느냐"와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놓고 또는 은근한 불평등을 겪고 있는 현실을 정확히 짚어주는 영화"란 반응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양상이다. 완성도보다는 정치적 성향이 흥행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일찌감치 페미니즘 영화로 인식된 <바비>에 대해 재고(再顧) 필요성이 제기됐다. 여성 중심의 영화라고 하기에는 남자 주인공 켄(라이언 고슬링)의 비중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주연을 맡은 마고 로비도 <바비>에 대해 "(페미니즘의) DNA를 기반으로 하지만 결국에는 인류애를 다룬 멋진 휴머니스트 영화"라고 밝혔다.
한편 한국 극장가에선 '페미니즘'이 관람 요소로 크게 작용해 왔다. 네이버에 따르면 한국 가부장제를 비판적 시각에서 담아낸 2019년 개봉작 <82년생 김지영>의 남성 관람객은 27%에 불과했다. 여성 형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걸캅스>도 남성 관람객 비율은 24%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