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 학계선 '현실주의' 아버지지만
中패권 전략을 유교적 이상주의로 해석
이념보다 세력 균형 중요시 다극주의자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데탕트론'을 다시 꺼내 들어 주목된다. 러시아·중국을 사실상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설정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전략에 대한 도전적인 메시지다.
18일 외교가에 따르면 1923년생인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오는 5월 27일 100세 생일을 앞두고 있다. 키신저는 이를 기념한 이코노미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 간 힘의 균형이 깨지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세계 3차 대전 발발 가능성을 제기했다.
키신저는 1979년 닉슨 행정부 시기 미-소 '전략무기 제한협정'(SALT) 및 중국과의 관계 개선 등을 통해 공산 진영과의 데탕트(Détente, : 프랑스어로 긴장 완화)를 성사한 주역으로 유명하다. 오늘날로 치면 유라시아주의를 다극주의(multipolarism)로 포장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합리화한 알렉산드르 두긴과 유사하다.
50년이 지난 이번에도 키신저는 데탕트 노선을 꺼내 들었다. 그는 "미·중 양국이 기술 및 경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갈등하는 지금의 국제 정세가 세계 1차대전이 발발하기 직전과 비슷하다"면서 "중국의 속내가 세계 지배가 아닌 권위를 되찾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자국 중심의 정치 질서를 미국처럼 기를 쓰고 수출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은 키신저의 오래된 주장이다. 낚싯바늘을 던져 놓은 채로 상대가 무의식중에 중국에 동화되길 바라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것. 따라서 경제·안보 논리를 넘어 외교·문화·인문 등 전방위 측면에서 중국을 바라보고 대응해야 한다는 얘기다.
반면 네오콘은 키신저와 상극이다.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체제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들을 적(敵)으로 간주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붕괴시키는 것을 지상과제로 한다. 1980년대 전략방위구상(SDI)으로 소련을 붕괴시킨 레이건의 '악의 축' 노선을 이어가는 바이든 대통령도 같은 부류다.
키신저는 이와는 달리 이념과 가치관이 다른 국가들과도 세력 균형을 통해서 공존하는 것을 최상의 목표로 삼는 현실주의(realism)를 주창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례를 남기지 않겠다"고 강조했듯 우크라이나의 영토주권 회복이 목적인 이번 전쟁의 원인을 "미국이 제공했다”는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석좌 교수도 그의 계보를 잇는다.
키신저는 트럼프 정부 시절인 2014년 세계질서(World Order)란 저서에서도 이런 대응 전략을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유교를 이상으로 내건 중국의 목적은 권위를 되찾고 싶을 뿐 세계 지배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인(仁)을 핵심 가치로 서로 다른 주변국과 공존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질서를 추구해 온 유교적 이상 국가라는 논리다. 그러나 자칫 주변국의 조공 체제 부활과 다름없는 일대일로(一帶一路, Belt and Road Initiative) 전략마저 합리화한다는 비판이 따른다.
미국의 대중 전략이 이념보다 실용주의에 바탕을 둬야 한다는 키신저의 영향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도 러시아·사우디·터키·이란 등 반미 독재 정권과 데탕트 적 관계를 이어온 바 있다. 마치 이를 염두에 둔 것처럼 키신저는 이번 인터뷰에서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중국을 끼워 넣는 포석을 뒀다. 그는 "유럽, 중국, 인도가 합류할 수 있는 원칙에 기반을 둔 세계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며 "그 실용성을 본다면 끝이 좋을 수도 있고, 최소한 재앙 없이 끝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