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세상을 바꿀 여성 정치인
유정주 민주당 문체위 위원·여가위 간사
"운명처럼 얽힌 부천서 애니메이션 제작"
"비상식, 어려움 풀어나가는 것, 나의 숙제"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월 31일 부천시 지역 사무실에서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장세곤 기자
1990년대 토종 애니메이션 전성기가 있었다. '머털도사'는 당시 지상파 시청률 50%를 넘긴 히트작이었다. 머털도사 제작자 유성웅 감독의 딸이자 애니메이션 기획제작사 '꽃다지'의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21대 국회에 입성했다. 문화체육위원회 소속이자 여성가족위원회 야당 간사인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애니메이션 업계 대변자답게 그는 창작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입법 활동에 매진해왔다. 한국애니메이션산업협회 회장으로 시민사회의 추천을 받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유 의원을 지난달 31일 부천에 있는 지역 사무실에서 만났다. 총선을 1년 앞둔 시점이지만 부천시 출마를 공식화한 그의 지역 사무실에는 주민들이 몰려오며 다양한 목소리를 전했다. 다음은 유 의원과의 일문일답이다.
—총선이 1년 남았다. 부천에서 재선 준비에 나선 이유가 있는가.
“2007년 부천에 있는 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 아카데미에서 겸임 교수를 하면서 부천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에 강사를 하다가 겸임 교수가 되었다. 거기 계신 분들이 ‘애니메이션과 영상 제작 전공도 했고 그 전에 독립 영화도 찍어보고 단편 애니메이션도 찍었는데 그 경험을 살려서 사업을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고마운 제안을 해주셨다.
사실 그때는 사업이 처음이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부천에서 작은 공간을 지원해주셨다. 사업자에게 공간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데 부천이 만화, 문화의 도시이자 애니메이션·영화 페스티벌과 만화진흥원이 있지 않나. 그러한 토대 안에서 지원받을 수 있었다. 여러 가지가 운명처럼 얽혀서 부천에서 용기를 갖고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해서 부천은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정치를 더 한다면 당연히 부천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애니메이션은 주로 서브컬쳐(하위문화)로 인식되는데 애니메이션 업계에 뛰어들게 된 배경은.
“우선 대한민국 안에서 애니메이션이 서브컬쳐라고 불리는 것을 이해한다. 애니메이션이 가진 무한한 경쟁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면에서 발전 가능성에 대한 의문점을 가진 산업 중에 하나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특히 어릴 때 굉장히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이 나중에 우리 것이 아니라 일본 작품이었다는 것을 알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일본이나 미국, 유럽의 경우 애니메이션이 절대 서브컬쳐가 아니다. 영화와는 다르게 애니메이션은 영상으로 제작된 이후 2차 부가 사업이 굉장히 큰 산업이다. 예를 들어 아주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뽀로로 같은 경우에 얼마나 많은 상품으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두 아실 것이다. 어린이용품에 캐릭터가 들어가고 완구나 문구 등을 통해 얻는 매출과 수익은 대단하다.
수출 규모도 굉장히 높기에 여전히 애니메이션은 미래가 있는 산업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SF나 CG의 기본, 바탕도 사실은 애니메이션에서 시작된 것이다. 서브라기보다는 사실 많은 영상 산업의 기본이 되는 것이 애니메이션이고 애니메이션 자체로도 무궁무진한 산업적 가치가 있다는 측면을 많은 분이 아셨으면 좋겠다. 저 역시 그러한 희망적인 부분을 보고 애니메이션에 도전하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애니메이션 1세대이시다. 88 올림픽 이후에 한국 애니메이션이 아주 잠시 부흥기를 누리던 때가 있었다. 떠돌이 까치, 머털도사, 영심이 등 한국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 시대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머털도사와 떠돌이 까치를 제작하셨다. 애니메이션이 굉장히 가깝게 느껴졌던, 가족 사이였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힘들게 일하시고 굉장히 바쁘셨던 기억도 있다 보니 애니메이션과는 뗄 수 없는 애증 관계가 됐다. 힘든 직업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계속 이어서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은 것은 아니다. 제가 시작하기 훨씬 전에 아버지는 그 직업군을 떠나셨다.”
—애니메이션 업계에 뛰어들 당시 아버지의 반대는 없었나.
“저희 부모님에겐 독특하신 점이 있다. 어릴 때부터 ‘공부해라’, ‘네가 이러한 것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사업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니 반대하셨다. 슬픈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이긴 하지만 아버지 세대 때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가 마치 불량식품처럼 가까이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었다. 게임이 유해하다는 틀 안에서 오랜 세월 규제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그러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일본과 달리 애니메이션 산업을 육성하지 못했고 한국 애니메이션은 하청업자가 되어버렸다. 투자사 입장에서는 애니메이션은 만드는 시간도 길고, 부가 사업을 통해 수익을 얻어서 투자비 회수를 해야 하다 보니 아무래도 매력적이지 않다. 좋은 기획을 해도 중국에서 IP를 구매, 저작권을 가지고 가서 중국 제품으로 탄생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업계에 있으셨던 아버지는 ‘과연 사업이 될까’라는 우려를 표하셨다. 그러나 경험이 없으면 오히려 용감해진다. 크게 반대하셨던 아버지는 정작 시작하니, 첫 작품인 신 머털도사의 감독으로 들어와서 많이 도와주셨다.”
—동종업계의 선배인 아버지의 조언 중 기억에 남는 것을 소개한다면.
“우선 제작자와 감독은 원래 굉장히 많이 부딪힌다. 아버지는 감독이고 저는 제작자이니 작품을 만들 때 너무 많이 싸웠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아마 할 수 있는 불효는 다 했던 것 같다. 아버지께서 현실적인 조언을 많이 해주셨는데 스케줄 조율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생각지 못한 변수들을 많이 겪게 된다. 더빙에 맞춰서 등장인물의 입을 만들고 애니메이션을 보냈는데 성우의 속도와 맞춰지지 않는 일이 발생하면 리테이크로 다시 넘어온다. 그러면 제작비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늘어나게 될 수밖에 없고 스케줄도 지연된다.
이럴 때 얼마나 신뢰와 돈독한 사이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애니메이터들이 함께 움직이며 수정해준다. 그러나 작품이 끝나면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합집산하며 떠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요즘은 컴퓨터로 디지털화되어 있지만 그 역시 수작업이기 때문에 시간이 굉장히 많이 소요된다. 또 투자사들이 책임져주지 않다 보니 제작사가 안고 가야 하는 추가 비용 등 아주 많은 변수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기에 아버지는 ‘유 대표, 지금 계산하지 못하는 일들이 분명히 일어날 것인데 유 대표가 지금 하는 방식이면 분명 이러이러한 지점에서 사고가 날 것이니 계획을 하고 가라’는 현실적인 부분에서의 조언을 해주셨다. 사실 ‘이번 작품만 하고 애니메이션은 그만둬라’는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문화 콘텐츠 창작자로서 현장의 애로 사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꽃다지’를 운영하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노력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한국의 애니메이션은 투자 유치가 굉장히 힘든데, 중국과 합작하는 길이 열린 적이 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운영하면서 한국 애니메이션 협회 부회장을 겸임한 당시 사드 미사일 배치로 한중 합작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저 역시 한중 합작을 위해 중국을 1년 넘게 다니면서 좋은 파트너를 찾고 계약을 맺고 제작이 들어갔다. 그 작품으로 국고 지원까지 받고 투자금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사드가 터졌다. 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에서 한중 합작에 대해서 허가를 아예 내주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길이 막혀버리고 당시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가 매우 큰 피해를 보았다. 코로나19 때도 그랬지만 개인의 잘못으로 사업이 잘되지 않는 경우, 개인이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 그러나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서, 특히 국가의 외교로 인해 큰 피해를 보았다면 국가가 어느 정도는 배상해주거나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정책 혹은 제도를 연구해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국회를 찾아와서 엄청나게 싸웠다. 지금 저를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그렇듯이 저도 정치인을 찾아가서 ‘이것은 국가적인 재앙에 속한다. 국가에서 문화 콘텐츠, 특히 애니메이션을 진흥하라고 내려준 미션이 있었고 거기에 사람들이 열심히 따랐는데 이 지원의 길이 막혀버렸다’라며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해결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면서 애니메이션 업계의 몇 분들께서 ‘열심히 싸우네’라고 생각하셔서 저를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뽑아주셨다. 협회의 회장으로서 역할이 생긴 시점에 정권이 바뀌었다. 그때는 청와대에 가서 따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중 합작을 하려다가 사드로 인해 발생한 막중한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회사라면 국고 지원 사업 참여 페널티나 국고보조금 이자 페널티 등의 제재 사항을 풀었던 경험이 있다.”

—동종 업계를 위한 변화를 이끌면서 정계 진출까지 결심했던 것인가.
“정계에 입문할 줄 상상도 못했다. 갑자기 문화예술 분야 비례대표로 추천 연락을 받고 서류 준비까지 일주일 정도 걸렸다. 심지어 저는 그때도 하청 준 원청사로부터 받아야 하는 돈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저를 믿고 일하시는 분들이 돈을 받지 않고 일을 하면 안 되잖나. 개인 대출까지 받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원청사, 스텝들과 정신없이 통화하고 은행에 가는 등 노심초사하는 상황에서 문화예술 쪽으로 비례대표를 추천하고 싶다는 말씀을 주시는데 너무나도 귀를 안 기울이니 추천하시려던 분은 황당하셨을 것 같다. 다만 저를 추천하시는 이유는 정확히 알고 있었고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았다.”
—국내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짧지 않지만, 비인기 분야다. K-드라마처럼 수출이 확대되기 위해 필요한 정책적 뒷받침은.
“애니메이션계가 지원이 아예 없는 분야는 아니다. 국고 지원은 다른 분야에 비해서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다만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미국 혹은 일본처럼 다양한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질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
애니메이션은 웹툰이나 다른 분야에 비해 영화만큼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분야에 속한다. 그런데 지원받아도 만약 30억 정도가 평균 제작비라고 하면 가장 크게 받는 지원이 6~7억이다. 그러면 제작비만 봤을 때 23억은 다른 곳에서 투자받아야 한다. 한국에는 애니메이션 전문 투자가 없는데 생기더라도 완구 중심, 아이들 애니메이션이라든지 SF나 CG가 들어가는 실사 영화 쪽으로 애니메이션 투자비가 유입된다. 투자는 없다고 보시면 된다.
작품이 나오지 않으니 K라는 말이 붙을 만큼 성공작이 나올 기회가 없다. 기회가 박탈된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그 원인의 가장 주요 부분이다. 애니메이션은 전문 펀드가 있어야 하고 그 규모가 커지는 것을 무서워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투자는 법으로 해결될 수 없지만, 영화 전문 펀드가 있듯이 애니메이션 전문 펀드를 통해 계속해서 도전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K-콘텐츠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뿌리 뽑히지 않는 악습도 많다. 가장 허탈감을 느낀 순간을 꼽자면.
“저작권자, 창작자들 보호에 관한 문제다. 예전에 ‘영화’ 하면 극장을 떠올렸다. 극장의 투자 배급을 관할하는 곳은 롯데, CJ, 쇼박스 등 대기업이 있고 갑, 을, 병이 너무 명확하다. 그들이 저작권, 사업권을 가져가고 수익이 났을 때 가장 많은 것을 취하게 된다. 물론 투자했으니 수익, 매출에 대한 것을 회수해야 한다는 것은 맞다. 그렇다면 수익 분기점을 넘었을 때 어떻게 갈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정말 유명해서 세계가 인정하는 몇몇 감독들은 수익이 생기면 몇 퍼센트를 가져가겠다는 별도의 계약을 하겠지만 소수에 해당한다. 제가 늘 주장하는 것은 그것이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다. 신인 작가든 누구든 간에 창작자에게 작품은 자식 같은 것이다. 고(故) 이우영 작가님도 검정 고무신의 최초의 창작자였는데 자신이 배분받을 수 있는 돈이 정말 적었다. 몇몇 사람들은 ‘계약을 잘하지 그랬어’라고 얘기하는데, 저도 경험해봤지만 현장에서 소위 갑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계약을 맺을 때 힘을 가지기 힘들다. 그들이 제시하는 계약서에 사인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작품에 몰두했던 창작자들은 계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실상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지금은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서 많이 학습되었지만, 문제가 불거지면 (배급사는) 강제성이 전혀 없는 표준 계약서를 강화하겠다는 이야기만 한다. 그래서 제가 지난해 영화 창작자들을 위한 저작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굉장히 반대하기에 난항을 겪고 있다. 창작자들은 플랫폼과 직접 계약하지 않는다. 중간에 제작사가 있거나 만화의 경우 에이전시가 있다. 그런데 제작사와 에이전시도 힘이 없으니 플랫폼과 좋은 계약을 맺지 못한다. 수익이 생겨도 그 수익이 에이전시로 안 떨어지면 창작자에게 돈을 줄 수가 없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창작자들에게 수입이 돌아가는데 넷플릭스는 다른 국가에서 이미 그렇게 하고 있으니 ‘그렇게 하십시오’라고 하지만 정작 한국의 플랫폼 사들의 반발이 심하다. 법안이 통과되면 플랫폼 사들이 다 망한다. 심지어 산업이 망한다는 논리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는 이렇게 물어보겠다. ‘그 정도로 산업이 망할 것이면 그 산업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 20%를 달라는 것도 아니고, 0.5~2% 정도에 망한다면 당신들만 먹고 살겠다는 것인가’ 창작자들은 영화 분야만 봤을 때 연봉이 평균 1200만원 정도다. 그래서 고(故) 이우영 작가님 같은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본적인 틀이 무너지고 생계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창작자라면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가’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구현돼서 우리 K-컬쳐가 되고 문화 강국이 만들어진 것인데 ‘쓰다 버리고 또 좋은 창작자가 나오겠지’와 같은 안일한 생각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공생해야만 앞으로도 계속 갈 수 있고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각성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늘 답답하다.”
—드라마나 영화, 뮤직비디오 등 콘텐츠에서 성적 대상화가 종종 일어난다. 규제의 사각지대는 없는가.
“제가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이지만 여성가족위원회 야당 간사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남녀의 몸이나 성향 차이부터 시작해서 서로 왜 존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교육이 되어야 하는데 잘 떠올려보면 1년에 한 번 규칙적으로 뭔가 배운다 치고 들었지만, 중요한 교과 과정으로서 교육받아본 경험이 없다. 거기서부터 많은 부분이 실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련 규제나 모니터링 작업은 하고 있다. 다만 대표적으로 유튜브 등 아주 급격하게 많은 플랫폼이 만들어졌고 그것에 대한 세심한 모니터링, 규제에 대한 법안은 아직 미흡한 상태다. 그런데 저는 모든 것이 인식에 대한 것 같다. 배우지 않으면 옳고 그름에 대해서 판단할 수 없지 않나. ‘보라고 만든 것일 텐데, 이런 영상이 있네’라고 생각하고 판단력을 상실하는 경우는 교육과 함께 가야 하는 부분이다. 갑작스러운 규제로만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발의한 법안 중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하는 법안과 그 이유는?
“의원실에 가면 2년 반 전에 냈던 법안이 있다. ‘잘될 거야’라는 문구를 쓰고 창문에 붙여놨다.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다. 영상 업계에서 저도 겪었고 지금도 변하지 않는 몇십 년 동안의 공정하지 못한 관행들이 일어날 수 없게끔 규제 조항을 만들어 놓았다. 조항을 살펴보면 사실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다. 예를 들면 ‘일을 시켰는데 돈을 안 줄 수 없다’, ‘계약서에 없는데 계속해서 수정작업을 이유 없이 시킬 수 없다’ 등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을 위해 마땅히 지켜져야 하는 몇 개의 규제를 해놨다.
2년 동안 공정거래위원회, 방통위, 저작권위원회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반대했는데 공정위와 저작권위원회와는 이야기가 잘 됐다. 그러나 방통위는 끝까지 이 법안을 반대하고 있다. 제가 많은 창작자분과 저작권법 관련해서 간담회를 여러 번 열었는데 장한준 감독님이 ‘문화 예술인이 언론에 나오는 일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큰 상을 받았을 때, 하나는 목숨을 끊었을 때’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오랫동안 지속된 비극이다. 이 비극을 막기 위해 불공정한 부분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 저의 뜻이었고 2년 반 전에 발의했음에도 통과가 안 되면서 2022년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님이 방통위의 의견과 혼합해서 발의하셨다. 방통위의 의견을 많이 담았음에도 반대가 있었다. 그래서 문체위 전체 회의 당시 ‘도대체 어떤 걸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불공정한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상황의 당사자들 즉 방송사, 여러 OTT 사업자를 빼달라는 것이다. 법안을 아예 내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늘 반복하지만 상식의 선이 어느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문화 강국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래서 제가 지금 큰 숙제로 안고 있는 것이고 부디 법사위에서도 막히지 않고 통과되기를 바란다.”
—정계에 유정주 의원이 필요한 이유는?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 장점이다. 그래서 게으름을 피울 생각은 전혀 없으며 현장과 소통을 꾸준히 하고 있다.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상식적이지 않은 부분을 끝까지 풀어나가는 것이 나의 숙제라고 생각하고 집념을 가진다. 현장이라는 것이 꼭 문화예술뿐 아니라 사회로부터 기득권이라 불리지 않은 곳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노동 현장에 대해서도 이해가 있고 꼭 노동이 아니더라도 사람의 삶 속에 있는 어려움을 들었을 때 바로 체감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몫이 있고 해내야겠다고 느낀다면 법안에 대해 2년 반이 지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끌고 나가는 것처럼 숙제를 해결해나갈 사람이 국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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