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세상을 바꿀 여성 정치인
권인숙 민주당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
“성범죄 업무, 법무부 이관 시 공백 발생”
"박근혜 정부 출범 보고 정계 입문 결심"

1980년대 후반, 20대 권인숙 의원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권 의원은 1986년 서울대 의류학과 4학년 시절 가짜 이름으로 제조회사에 위장 취업해 노동운동을 하다가 체포돼 성고문을 당했다. 조영래 변호사 등 166명에 이르는 변호사들이 대리인단을 구성하면서 대표적인 시국사건으로 주목받았다.
권 의원은 언론을 통해서도 한동안 ‘권모양’, ‘권양’ 등으로 익명 처리됐다. 그러나 권 의원은 1987년 여름 가석방으로 출소한 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나타내면서 스스로 얼굴과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권 의원은 가석방 후 노동운동에 몸담았으며,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여성학 석사·박사과정을 마쳤다.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학교 여성학 교수로 재직하던 권 의원은 2003년 귀국해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 교수를 지냈다.
성폭력 전문 연구소 울림의 초대 소장과 서울시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을 지낸 낸 권 의원은 지난 2017년 3월 8일 여성의 날에 문재인 캠프에 합류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1대 국회에 비례대표 의원으로 입성한 후에도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앞장서서 목소리를 낸 권 의원을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권 의원과의 일문일답이다.
—세계 여성의 날에 유엔 여성지위위원회(CSW)에 참석해 연설했다. 소감 한마디 우선 부탁한다.
“CSW에 참석 후 (여성 정치 참여 비율을 나타낸) 지도를 받아서 살펴보니, 의회가 있는 세계 186개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여성 장관 비율이 111등이고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21등이었다. 지위와 관련된 여러 가지 기준이 있다. 그런데 세계 10위권인 한국의 경제적 위상과 비교해보았을 때 우리나라 여성 지위가 너무 낮았다. 우리나라의 세계적 지위와 여성 지위의 큰 갭에 대해서 깊은 책임감을 느꼈다.”
(한국 대표단은 지난 7~8일 67차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중 의원회의에 참석했다. 대표단은 회의에서 여성과학기술인 양성 법제,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 개정 등을 소개했다. 정춘숙 민주당 의원은 첫 세션에서 여성과학기술인 양성, 지원을 위한 우리 법제와 정책을 소개했으며 권 의원은 온라인 그루밍을 처벌하기 위한 우리 법 개정 사례를 소개했다고 국회는 밝혔다.)
—CSW에서 공유된 각국의 정책 사례 중 국내 도입이 필요하다고 느낀 사례를 소개한다면.
“정책 사례보다도 세계적인 흐름으로 볼 때 AI나 인터넷 분야에서 뒤처지고 있는 여성들이 많고 향후 이 부분이 가져올 지위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을 강하게 공유하는 자리였다. 정책을 논하자면 여성들이 교육을 통해서 현재의 4차 혁명과 AI 기술에 대한 지식이 깊어져야 한다는 이야기에 각 나라 대표가 공감했다. ”
—여성학자로 인정받고, 현재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정치권·시민들 사이에서 젠더 논쟁이 격화되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 만큼 공격받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젠더 관련 논의가 편하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어떤 주장을 하면 악플이 많이 달리는 영역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미래를 준비해 나가고 변화를 만들어 나갈 때 성평등 문제는 중요한 포인트다. 특히 저출산 문제에서 (성평등은) 굉장히 중요하다. 공격받고 있는가 아닌가는 핵심인 것 같지는 않다.
계속 정치권에서 성평등이 어떤 식으로 가야 하는가, 논쟁의 어떤 의미들을 잘 대응하는가, (정치권에서)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그것이 잘못된 방향임을 드러내는 식의 노력이 지금 절박하게 필요하다.”

—여권에서는 여가부 폐지를 주장한다. 만약 여가부가 폐지된다면 여가위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여가부와 여가위는 상관관계가 바로 있다. 여가부가 폐지되면 여가위의 역할이 없어질 것이다.”
—여가부가 폐지되면 성범죄 관련 업무는 법무부로 이관된다. 이관 시 성범죄 피해자에게 공백이 생길까.
“당연히 생긴다. 성범죄는 특수성이 굉장히 강한 부분이다. 피해자 보호 역시 오랫동안 축적되어 있는 민간의 단체들과 결합하며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러 범죄와 성범죄가 같이 얽혔을 때 피해자 보호를 발전시켜 나가는 부분에서도 공백이 생길 수 있다. 이제까지 (성범죄 피해자와의) 대화 창구 등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돼 왔던 부분들이 완전히 맥이 바뀌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성범죄 대처 법안으로 비동의 간음죄 논의가 나오는데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내심의 의사를 사람들이 밝힐 수 있느냐가 사실은 핵심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한 여러 나라들에서 인지 가능한 의사, 그러니까 내심이라는 개념으로는 사실 법안을 적용하기가 어렵기에 인지 가능한 의사라는 것으로 제한하는 등 굉장히 잘 만들어 나가고 있다.
경험을 쌓으면서 그 부분에 대해서 잘 설득하고 이해를 하면서 이 법안에 도입, 정교함과 선행의 경험을 잘 살펴낸다면 악용되는 부분은 계속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저의 1호 법안이 온라인 그루밍 방지법이었다. 온라인에서 청소년들에게 성적인, 성 착취적 목적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를 범죄로 만든 법이었고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위장 수사를 허용해서 현실적으로 가해자 검거가 가능하게 만들었던 법안이다 .
한데 이 법안은 검경 수사권 조정이 조정되는, 경찰의 권한이 높아지기 때문에 통과될 수 없었다. 그러나 법안 통과에 정말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법안 하나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안 드러나지만 청소년을 상대로 이뤄지는 온라인상 성 착취 현실 속에서 엄청난 변화를 일으켜 낼 수 있다.
의지를 가지고 거의 미친 듯이 매달리지 않으면 법안 통과가 안 되는 것이 또 국회의 현실이다. 그래서 저는 소명감, 가치를 깊게 무장하는 것이 국회에 들어오는 필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인터뷰를 살펴보면, 정계 진출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국회 입성을 다짐한 계기가 있다면.
“정계에 진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출범이 정계 진출 다짐에 매 큰 영향을 끼쳤다. 세월호 사건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나 자신에게 충실하고 나를 보호하는 삶이 별로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굉장히 충격이 컸던 때였다. 이제 나이도 먹었고, 사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자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당시에도 (교수라는 직업을 통해) 사회를 위해서 일을 하고 있었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사회를 위한 일을 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다.”
—부천 성고문 사건은 37년 동안 미디어에서 환기되고 있다. 평생 이름 석 자 앞에 특정 수식어가 붙는데 혹시 부담으로 다가오지는 않는가.
“그런 것은 전혀 없다. 실은 옛날에 잠깐 싫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상관없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 정치를 하지 않겠나.”
—권인숙 의원이 정계에 필요한 이유는.
“사회적 약자를 더 다양한 방면에서 대변하려는 의지가 있다. 그리고 여성 이슈, 여성 의제가 이 사회에 잘 자리 잡혀서 성평등이나 저출생 문제들이 풀려나가는데 저의 오랫동안의 경험들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저에게 공적인 책임감밖에 없는 것 같다. 물론 국회의원으로 살아가면서 신나게 돌출적으로 살 수는 없지만 공적인 소명감, 책임감이 큰 사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이 국회에는 꼭 필요하다. 제가 보기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