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불공정 계약 뿌리내린 출판업계
이우영 "출판사에 캐릭터 뺏겼다" 호소
"작가 탓" 조롱한 윤서인···본지에 해명
양도 이후 권리 회복할 장치 마련 시급

저작권 침해를 착취로 받아들이며 '만화 공산당 선언'을 그려야 했던 이우영 작가. 그가 51세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 전 잘못 진행한 불공정한 저작권 계약으로 소송까지 휩쓸려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14일 '조이라이드' 원작자인 윤서인 작가가 유튜브에 이우영 작가와 '만화 공산당 선언'을 운운한 글에 대한 해명 영상을 올렸다. 앞서 윤 작가는 페이스북에 저작권 소송의 원초적인 원인 제공은 이 작가에게 있었다는 논지의 글을 올려 대중의 분노를 샀다.
이 작가는 저작권 분쟁이 시작된 2019년부터 인터넷 언론사인 '레디앙'에 '공산당 선언' 만화를 연재했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가 나온 지 300여 년이 됐지만, 현재 빈부격차는 여전하고 노조 결성률도 암담한 수준"이라며 작품 기획 의도를 밝혔다.

이에 대해 윤 작가는 "공산주의 만화를 그리시는 분답게 자신의 사유재산인 저작권도 남들에게 평등하게 다 나눠주신 거 아닐까"며 비아냥댔다. 그러면서 영화 '신과 함께' 원작 만화가(주호민 작가)를 언급하며 "돈과 자본에 일찌감치 눈을 떠서 계약도 잘하고 수익도 알뜰하게 잘 챙겨서 막대한 부를 쌓은 훌륭한 동료 작가들에게 계약 전에 허심탄회하게 문의해라"고도 했다.
다만 윤 작가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이 작가의 계약 조항이 불공정 계약이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는 "작가 입장에서는 당연히 잘못된 계약이라 생각할 것"이라며 다만 "출판사는 계약이 다 이런 거로 생각할 거"라고 전했다. 이어 "계약이 자신에게 공정한지 아닌지는 본인이 잘 판단해서 하는 게 맞다"면서 "사인할 때는 공정한 계약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에 직면하면서 이건 공정하지 않다고 느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작가 입장에서 불공정 계약은 캐릭터 사업 대행사인 형설앤의 장진혁 대표와 체결한 사업권 설정 계약이었다. 그는 대표작인 '검정고무신'의 기영이, 기철이, 땡구 등 9개 캐릭터 저작권 지분 28%를 장진혁 대표에게 양도했다. 이후 사업권 설정 계약 및 2건의 양도 각서까지 단행했다. 사업에 돈이 필요하다는 게 명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사업권 설정 계약에는 '모든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및 그에 파생된 모든 2차적 사업권을 포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양도 각서에는 '손해배상청구권 및 일체 작품 활동과 사업에 대한 모든 계약의 권리를 양도'하고 '위반 시 3배의 위약금을 낸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이 작가의 법률대리인 이영욱 변호사는 "사업권의 대상을 특정하고 계약 때마다 저작권자 동의를 얻도록 한 문화체육관광부의 만화분야 표준계약서와 달리 사업자에게만 일방적인 불공정 계약"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장진혁 대표 측은 "당시 관행에 따라 진행한 계약"이라면서 "수정 보완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원작과 엄연히 다르다"면서 계약 불이행이라며 소송을 걸었고 법 공방은 5년간 이어졌다.
대행사업자와의 5년간의 법적 분쟁
장진혁 '관행'이라며 소송까지 걸어

지난 2019년부터 이 작가와 형설앤은 법정 공방을 벌여왔다. '검정고무신'을 그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농장에 사용한 혐의로 형사재판에 넘겨지면서다. 이 작가는 지난해 1월 콘텐츠 전문 유튜버 빠퀴가 올린 '검정고무신 충격 비하인드 TOP5 (결말 8년 후 근황)'이라는 제목의 영상에 저작권 소송에 대한 상세 상황을 댓글로 남겼다.
당시 이 작가는 "현재 저는 캐릭터 대행 회사로부터 자신들 허락 없이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등장시킨 만화를 그렸다는 이유로 피소돼 4년째 소송 진행 중"이라며 "원작자가 왜 캐릭터 대행 회사 허락을 얻어서 만화를 그려야 하는지, 왜 피고인의 몸으로 재판받아야 하는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고 호소했다.
이어 이 작가는 "넷플릭스의 검정고무신 극장판은 원작자인 저에게 허락도 구하지 않고 만들었다"며 "얼마 되지 않는 원작료까지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정리하면 관행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약 불이행자가 되어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이다. 이미 깊게 뿌리내린 이 같은 출판업계의 갑을 계약은 이 작가만 체결한 게 아니다. 카카오의 캐릭터 상품인 '카카오프렌즈' 원저작자인 호조(본명 권순호)씨도 캐릭터 상품 판매에 대한 수익은 전혀 받지 못했다. 카카오의 지원으로 캐릭터를 만들면서 이후 발생하는 모든 지적재산권을 카카오에 넘기는 '저작권 양도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출판권 등 설정계약 시 저작물의 2차적 사용에 대한 권리를 출판사에 전부 위임하도록 한 조항에 대해 불공정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또한 저작물을 2차적 콘텐츠로 가공할 경우 원저작자는 출판권자 외에도 다른 상대와 협의해 계약을 체결할 자유가 있다고 명시하기도 했다.
작가가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저작권 양도 계약을 체결하는 이유는 바로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다. 특히 무명·신인 작가의 경우 그들의 창작물 가치를 예측하기 어려워 불공정한 계약 조건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에 저작권 양도 계약 이후 저작권을 회복하거나 추가적인 대가를 요구할 수 있는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독일과 프랑스는 원칙적으로 저작권 양도 계약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예외적으로 양도가 이뤄질 경우에도 보상청구권과 수익에 대한 추가분배청구권 등을 둬 저작권자들을 보호하고 있다.
한편 이우영·이우진 형제가 그린 '검정고무신'은 1992년부터 15년간 대원씨아이의 '소년챔프'에서 장기 연재한 작품으로 1960년대 후반 한국 시대상을 담아냈다. 애니메이션도 제작됐으며, 지난해엔 넷플릭스에 극장판 '검정고무신: 즐거운 나의 집'이 배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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