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열 전권 부여받은 회추위 구성해
김승연·신동빈 같은 적장자 아니어도
4대그룹 복귀 숙원 이룰 적임자 찾기

허창수 회장의 사퇴가 임박하면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제39대 회장 찾기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재계 순위가 높은 특정 기업 집단의 오너 경영인이자 적장자를 회장으로 선출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난세를 맞아 택현론(擇賢論)이 부상한 것이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전경련은 그동안 난항을 겪어온 회장 찾기의 돌파구를 모색하고자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을 회장후보추천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전권을 부여받은 이 회장은 전경련의 중장기 발전안을 만들 미래발전위원장도 맡았다.
전경련 회장 인선은 회장단 뜻에 전적으로 달려 있으며, 회장을 포함한 부회장단이 한 명을 추대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회원사 중 재계 순위가 높은 기업집단을 이끄는 동일인(기업 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사람)을 추대하는 것이 큰 원칙이다.
전경련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이 1961년 설립한 경제재건촉진회에서 출발해 1969년 설립된 임의 단체다. 이 회장에 이어 정주영(현대그룹)·구자경(LG그룹 구인회 창업회장의 장남) 회장이 자리를 이어받았다. 제28대 회장을 맡은 손길승 SK그룹 명예회장도 당시 그룹 내 가장 큰 어른이었다.
현재 전경련 부회장단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윤 삼양그룹 회장, 김준기 DB그룹 회장, 이장한 종근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 8인으로 구성돼 있다. 주요 그룹의 좌장만이 회장단에 참여하는 전통이 이어져온 결과다.
다만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4대그룹(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계열사와 함께 대거 탈퇴하면서 회장단 수가 크게 줄었다. 그렇더라도 상근부회장을 제외한 외부 영입은 사례가 없다.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인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일본의 경단련식 통합을 제안하고 있지만 회추위에서 오퍼가 가지 않는 한 불가능한 구조다. 손 회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손복남 여사의 남동생으로 적통이 아닌 외가쪽 인사로 각인되면서 사실상 부적합한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이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고사의 뜻을 전하고 이웅열 회장이 회추위원장으로 한 발 떼면서 부회장단 내에선 인물을 찾기 어렵게 됐다. 김윤 삼양그룹 회장이 전경련 부회장단이면서도 K-ESG 위원장을 이끌어왔지만, 재계 순위가 60위권으로 낮은 것이 문제다.
그룹사 계열분리가 지속되는 동시에 2세·3세 경영인이 출현하면서 상황도 크게 변했다. 다시 말해 장자가 아니어도 지금 상황에 적합한 인물이면 된다는 택현론, 즉 현실주의가 급부상했다. 태종 이방원이 말썽을 일으킨 맏아들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하고 훗날 세종대왕이 된 셋째 아들 충녕대군을 세운 것이 택현론의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차그룹과 LG그룹 계열사가 대거 탈퇴하는 와중에도 회원사로 남은 기업집단의 후계자가 자연스럽게 주목받게 됐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과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을 비롯해 범LG가의 후손인 구자열 LS그룹 이사회 의장이 유력 후보로 떠오른 것이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이날 "대대적이고 혁신적인 모습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언급한 것은 이는 4대그룹의 복귀를 차기 회장의 숙원 과제로 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들은 탈퇴한 자신의 일가를 다시 회원사로 참여시킬 수 있는 적임자로도 거론된다.

현대車 다시 불러올 최적임자 정몽규
구자열 입지적 글로벌 경영성과 눈길
이웅열 회장 과도기 체제 이어질 수도
정몽규 HDC그룹 회장의 부친인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정주영 회장의 넷째 동생이다. 순수 국산 승용차인 '포니' 개발을 주도해 '포니 정'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현대차와 인연이 깊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2020년 10월 취임사에서 정몽규 회장을 언급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정 회장이 이끌어온 HDC그룹은 지난 5년간 재계 순위가 가장 많이 상승(46위→28위)한 기업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밖에도 정 회장은 전경련 내에서 남북 경제협력 특별위원장을 맡아오고 있다.
범현대가인 현대해상도 현대차그룹과 함께 탈퇴하지 않은 전경련 회원사 중 하나다. 고 정주영 회장의 7남인 정몽윤 회장은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한 현대해상을 자산 5조원 이상의 준대기업집단으로 키워낸 현직의 경영인이다. 조카인 정몽규·정의선 회장보다 서열이 높다. 다만 전경련 회장이 부담해야 할 책임과 업무 강도가 어느 협단체보다 높은 점을 감안하면 현대해상이 내수 금융사라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구인회 창업회장의 직계인 구본무 회장이 지난 2018년 작고한 뒤 LG그룹은 전경련 회장단에 참여해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구태회(LS전선)·구평회(E1)·구두회(극동도시가스)로 이어지는 범LG가는 LS그룹이라는 이름으로 회원사에 남아 있다. 이 가운데 지난해 구자은 회장에세 사촌 간의 승계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구자열 회장은 전경련 산업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한 실력자로 꼽힌다.
2004년 국내 전선업계 최초 해외사업본부 신설, 2008년 북미 1위 산업용 전선업체 SPSX 인수 등을 통해 내수 중심이었던 LS그룹에 대한 체질 개선을 진행해 해외 매출 비중이 절반을 넘어선 수출기업으로 전환하는데 성공시킨 글로벌 경영인이란 점에서 전경련 입장에서 최적임자로 보인다. 다만 2021년 2월부터 시작한 한국무역협회장 임기가 1년가량 남은 점이 변수가 될 수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이름이 공개적으로 거론되는 인사들이 손사래 치며 거절해 왔던 만큼 이웅열 회장이 총대를 매고 상황을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며 "허 회장의 퇴임 전까지 물리적으로 후임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 미래발전위원장까지 맡은 것을 보면 재계 큰 형으로서 과도기의 전경련을 이끌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