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갈수록 강경해지는 대북 대응 발언
9.19 합의 무효까지 가나···국민 우려는 가중

북한을 겨냥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수위가 갈수록 강경해지고 있다. 최근 무인기 영공 침범 등 북한의 도발이 잇따르면서 '확전 각오 태세' '응징 보복' '9.19 남북 군사합의 효력정지' 등 전시를 방불케하는 고강도 표현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경고성 메시지이지만, 동시에 무인기 도발 대응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과 국민 우려를 가중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달 26일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 당시 용산 대통령실 인근까지 침투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4일 북한 무인기 대응책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전해졌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윤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비례적 수준을 넘는 압도적 대응 능력을 대한민국 국군에 주문한 것"이라며 "확고한 안보대비 태세를 강조했다.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국군통수권자로서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북한의 도발에 맞서는 윤 대통령의 발언 수위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6일 북한의 무인기 침투 직후 군에 확전 각오 태세로 무인기를 북한으로 침투시키라고 지시했다. 또 12월 29일에는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준비를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1월 1일에는 국가위기관리센터를 찾아 북한의 도발에 대해 확실하게 응징할 것을 주문했다. 연이어 4일에는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군의 부실 대응을 질타함과 동시에 안이한 안보의식을 경계한 셈인데, 야권과 북한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의 강경 발언이 오히려 안보 불안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대통령실에서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검토 언급은 '한반도의 우발적 군사 충돌과 확전방지를 위한 유일한 안전판'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간 9.19 합의를 남북이 함께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하지만 무인기 영공 침범 등 도발 수위가 높아지면서 대응 방안도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9.19 군사 합의는 지난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정상회담을 통해 채택한 9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합의서다. 정식 명칭은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다.
군사적 우발 충돌 방지가 목적이고, MDL(휴전선)을 기준으로 비행금지구역, 포병사격 및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 훈련 금지 구역, 완충 수역 등을 설정했다. 한반도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기 위해 남북 상호 간 적대 행위를 하지 말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북한은 2019년 11월 서부전선 최전방 창린도에서 해안포 사격을 하면서 처음으로 합의를 위반했고, 2020년 1월에는 우리 군 감시초소를 향해 총격을 감행했다. 북한의 9.19 합의 위반은 지난해 10월부터 집중되기 시작했다. 서해 북방한계선 북쪽 해상 완충구역에 포사격을 하는 등 15번의 합의를 어겼다. 그러다 북한이 무인기 도발까지 나서자 군은 북한이 또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해 실제 군사합의 효력이 정지된다면 후속조치에 나선다고 대응 방침을 밝혔다. 9.19 합의 체결 4년 3개월 만에 사실상 파기 수순 목전까지 간 것이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는 남북 사이 ‘강대강 대치’로 비화될 가능성도 보이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더욱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북한은 지난 1일 공개한 당 전원회의 보고에서 남한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했다. 이처럼 강대강 대치에도 사실상 중재하는 역할이 없이 전 정권과 현 정권의 군사대응 등 정치적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까지 나오자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했다.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는 올해 천안함 피격이나 연평도 포격 같은 북한의 무력도발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4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는 인터뷰에서 "올해는 북한도 한국에 민감하게 대응할 것 같고,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 사건처럼 한국에 대한 북한의 무력 도발을 경계해야 하는 해가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남북관계 파탄을 넘어 실제적 전쟁 가능성을 대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새해 아침을 전쟁 걱정부터 해야 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압도적이고 우월한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최선일까, 현대전에서 무고한 병사와 국민들의 희생 없이 승리가 가능할까"라며 "진영을 떠나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지성을 발휘하지 못하면 올 한해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비극적인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