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구리값 현물 1t당 8525달러
전기차‧신재생에너지 수요 증가 영향
광산업자도 분주 10년 후 수요 36%↑
“중국 위드 코로나 수요 증가 기대”

글로벌 경기 침체 전망에도 구리 가격이 상승세다. 사진은 구리 전선 /픽사베이
글로벌 경기 침체 전망에도 구리 가격이 상승세다. 사진은 구리 전선 /픽사베이

글로벌 경기 침체 전망에도 구리 가격이 상승세다. 건축 자재, 반도체, 정보통신, 로봇, 자동차 제조까지 안 들어가는 곳이 없던 구리는 오랫동안 경기 선행지표로 활용됐다. 구리값 상승은 향후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했고 이 때문에 구리는 ‘닥터 코퍼(Dr.Copper‧구리 박사)’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런 구리가 최근 박사 타이틀이 떼어질 운명이다. 미국 장단기 금리 역전 등 경제 지표들은 글로벌 침체를 가리키는데, 이전 같았으면 폭락해야 할 구리 가격이 오르고 있기 때문(경기 회복 예측 의미)이다. 대신 구리는 떠오르는 슈퍼 금속으로 거듭날 채비를 하고 있다. 전기차를 비롯해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추세 덕분이다.

8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금속거래소에서 구리(현물) 가격은 1t당 약 8525달러에 거래됐다. 지난 7월 7100달러대에 간신히 걸쳐 있던 구리값은 5개월 만에 19% 이상 뛰었다. 구리 가격은 경기에 선행하기보다, 중국과 미국의 통화정책 등 국제 이슈와 맞물려 움직였다.

구리 가격은 경기에 선행하기보다, 중국과 미국의 통화정책 등 국제 이슈와 맞물려 움직였다. 구리값은 올해 3월 초 1만702달러까지 올라갔다가 7월 14일 7160달러까지 하락했다. /한국광해광업공단,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구리 가격은 경기에 선행하기보다, 중국과 미국의 통화정책 등 국제 이슈와 맞물려 움직였다. 구리값은 올해 3월 초 1만702달러까지 올라갔다가 7월 14일 7160달러까지 하락했다. /한국광해광업공단,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여성경제신문이 최근 5년간 구리(현물) 가격 추이를 분석한 결과, 2020년 초 1t당 5000달러도 되지 않았던 구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2021년 10월 18일 1만3000달러 근처까지 도달했다.

태양광, 전기차 등을 생산하기 위한 중국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2021년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260만대로 전년 대비 160% 급증했다. 또 미국이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구리는 과잉유동성 시기를 거쳤다. 이른바 투기 세력이 붙으며 구리값이 천정부지로 상승했다.

그러나 미국이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연방준비제도(Fed)가 고강도 긴축을 시작했던 올해 3월 기점으로 대부분의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를 맞았다. 당시에는 금값마저 완만한 하락세를 보였다. 구리값도 올해 최고점인 1만702달러(3월 4일 종가)를 찍고 하락세를 탔다. 구리값은 지난 7월 14일 종가 기준으로 7160달러까지 내리꽂혔다. 최고가 기준으로 올해 들어 33% 하락한 셈이다.

바닥을 찍었다고는 하지만 근래 최저치 7160달러는 구리 가격이 상승세를 타던 2020년 겨울 수준이다. 추세에 따라 가격이 떨어지긴 했지만 많은 부침을 겪지는 않았다.

구리값은 이달 들어 상승 압력을 세게 받고 있다. 중국이 ‘위드 코로나’ 정책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중국은 매년 새로 채굴된 구리의 약 40~50%를 매입한다. 이 때문에 중국 경기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면 구리값이 뛴다.

실제 중국이 코로나 확산세로 ‘제로 코로나’ 정책을 다시 펼쳤던 지난달 구리값은 하락세를 맞이하며 7000달러대로 빠졌다. 11월 14일부터 11월 21일까지 공휴일을 제외한 6일 동안 구리값은 연이어 하락했다. 21일 종가는 7840.50달러였다.

그러던 중 중국이 코로나 방어벽을 거두기 시작한 11월 말부터 지금까지 구리는 상승세를 거듭하고 있다. 11월 30일 종가는 전일대비 190.75오른 8226.75달러(2.37%포인트 상승)에 마쳤다.

이와 관련해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구리는 중국 쪽 이슈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코로나 불확실성이 있던 가운데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고 중국 당국이 부동산 정책 지원을 알리면서 구리 수요 상승 기대감이 반영됐다”면서 “구리뿐 아니라 비철금속 재고가 떨어지면서 공급 부족도 구리값을 상승시키는데 일정부분 영향을 미치고는 있지만 지금은 중국 수요 상승 원인이 더 크다”라고 설명했다.

구리 수요 증가 전망에 따라 광산업체들은 물밑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은 칠레 구리 동굴 /로이터=연합뉴스
구리 수요 증가 전망에 따라 광산업체들은 물밑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은 칠레 구리 동굴 /로이터=연합뉴스

2025년 구리 수요 170만t 추정
미래형 자동차에 필수 부품 요소

앞으로 구리 수요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몸값이 더 올라간다는 이야기다. 경기를 예측하는 ‘닥터 코퍼’에서 경기를 이끄는 ‘세인트 코퍼(St.Copper‧구리 성인)로의 신분 상승이 임박해 있다.

국제구리협회(ICA)가 Martec Group에 의뢰한 자료에 따르면, 자동차 와이어 하네스(wire harness)에 사용되는 구리 수요가 2025년에 연간 17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현재보다 14% 증가한 수치다. 또 전기차와 관련한 전체 구리 수요는 2032년까지 36%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와이어 하네스는 전자제품의 각 부위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신호 및 전류를 연결하는 필수 부품이다. 사람의 몸으로 치면 신경계나 혈관 같은 역할을 하는데 전기 전도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배선 재료로 구리를 사용한다.

전문가들은 미래형 자동차가 발달할수록 구리의 쓰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으로 봤다. 일반 내연기관 차량에 사용되는 구리 중량은 23kg이다. 전기차에는 모터, 배터리, 와이어 하네스, 케이블 등으로 3~4배 더 많은 구리가 사용된다.

ICA는 하이브리드 차량과 자율주행 시스템의 대중화로 구리 수요가 증가, 10년 동안 34만 4000t의 추가적인 구리 수요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ICA
ICA는 하이브리드 차량과 자율주행 시스템의 대중화로 구리 수요가 증가, 10년 동안 34만 4000t의 추가적인 구리 수요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ICA

이에 따라 ICA는 하이브리드 차량과 자율주행 시스템의 대중화로 구리 수요가 증가, 10년 동안 34만 4000t의 추가적인 구리 수요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원유 및 천연가스 가격의 증가와 환경 문제 우려는 풍력, 태양열 등 재생에너지 개발에 관심을 두게 하고 있다. 에릭 놀랜드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전환은 구리 및 기타 금속(리튬, 코발트 등)에 대한 강력한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며 “탄소배출 없이 구리 배선을 잔뜩 사용하는, 에너지로 가득한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구리 수요 증가 전망에 따라 광산업체들은 물밑 작업을 하고 있다. 세계 최대 광산업체인 BHP는 호주의 구리업체인 ‘OZ미네랄’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광산업체들의 움직임 역시 향후 구리 수요 증가를 반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구리 가격이 지금도 비싸지만 아직은 최고점에 이르지는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21일 ‘Dr. Copper Is High and May Yet Go Higher’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21일 ‘Dr. Copper Is High and May Yet Go Higher’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WP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21일 ‘Dr. Copper Is High and May Yet Go Higher’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WP

김 연구원은 “향후 세계 경제의 성장세가 가속화되면 구리 가치는 더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글로벌 경기 회복 시점이 언제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상승 시점을 거론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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