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시장 경색‧부동산 거래 절벽
5%대 고물가 금리인상 기조 지속
美 물가 피크아웃 기대 환율 안정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 속도를 쫓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경기 침체 후폭풍에 속도 조절을 시작했다. 금통위는 지난 10월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이후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미국 물가가 정점을 지났다는 기대도 한몫했다.
24일 금통위는 현 기준금리(3%)에서 0.25%포인트 인상, 기준금리를 3.25%로 상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채권시장 혼란에 따른 자금경색과 더불어 부동산 거래 절벽 등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금리는 한국 채권에 투자한 외국인을 등 돌리게 했다. 기준금리 인상이 시장금리 상승을 견인하며 채권가격 하락→투자자 수익 감소→자금 청산 가속화→채권 수요 감소를 불러왔다. 기업이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이 빠르게 메말라간 것. 레고랜드 사태와 흥국생명 콜옵션 미행사 결정이 대표적이다. 이에 단기금융시장 불안도 커졌다.
고금리 상황은 기업뿐 아니라 가계에도 타격을 줬다. 1년여 만에 금리가 1.75% 상승하며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가 연 7%대까지 올라섰기 때문이다. 연 10% 전망도 나오면서 부동산 거래절벽이 심각해졌고 전국 주택 가격이 폭락했다. 지난달 전국 아파트값은 전달보다 1.2% 떨어졌고 이는 2003년 12월 시세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큰 낙폭이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금통위 내부에서도 금융 안정에 주목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공개석상에서 "그동안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빨랐기 때문에 경제의 다양한 부문에서 느끼는 경제적 압박의 강도(stress)가 증가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금융안정 유지, 특히 비은행 부문에서의 금융안정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물가 7.7% 예상치 하회
“韓 물가 안정 위해 정책대응”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7.7%를 기록, 전망치(7.9%)를 하회한 것도 이번 금리인상 속도를 늦추는 데 영향을 미쳤다. 미국 내부에서도 물가 상승세가 정점을 통과했다는 의견이 지지받았다.
실제 지난 23일 공개한 11월 FOMC 의사록에서 연준 고위 관계자 대부분이 금리인상 폭을 좁히는 것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위원들은 12월 FOMC에서는 0.5%포인트 금리인상이면 충분하다고 의견을 냈다.
15일(현지 시각) 미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FF) 금리 선물 시장은 12월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을 85.4%로 전망했다. 0.7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은 14.6%로 내다보고 있다.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 폭은 1%포인트에서 0.75%포인트로 좁혀졌다. 그러나 한국 기준금리 인상은 11월 금통위가 마지막이기 때문에 연준이 내달 있을 FOMC에서 0.5%포인트 올린다면 격차는 1.25%포인트 나게 된다.
미국의 물가 피크아웃(Peak out)이 현실화되면서 강달러 기조도 꺾였다. 3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이후인 지난 9월 27일 114.11까지 치솟았던 달러인덱스(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 보여주는 지표)는 110선 아래로 내려왔다. 11월 22일 기준 107.22를 기록했다.
외환시장 안정세도 베이비스텝의 근거가 됐다. 강달러 기조가 꺾이면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 11일 1310원대까지 내려왔다. 환율은 10월 25일 기록한 고점(1444.2원) 대비 130원이 넘게 하락했다.

그러나 한국의 10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여전히 높은 5.7%다. 높은 물가에 한은은 올해 4월, 5월, 7월, 8월, 10월에 이어 11월까지 사상 처음 여섯 차례 연속 금리를 올리게 됐다.
이날 한은은 내년 한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1.7%로 낮췄다. 지난 8월 발표한 기존 전망치보다 0.4%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개발연구원(KDI) 등도 내년 한국 성장률을 1.8%로 예상했다.
내년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는 3.7%에서 3.6%로 하향 조정했다.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도 기존 5.2%에서 5.1%로 수정했다.
금통위는 “높은 수준의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고 있어 물가안정을 위한 정책 대응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인상 폭은 경기 둔화 정도가 8월 전망치에 비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외환 부문의 리스크가 완화되고 단기금융시장이 위축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0.25%포인트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