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입장 발표 기자회견
참사 이후 심경 첫 공개···대통령 공식 사과 요구
"위패·영정 없는 분향소가 2차 가해"···정부 맹비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최수빈 기자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최수빈 기자

“1997년 6월 29일 태어나 2022년 10월 29일 26세에 꽃다운 나이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우리 딸 이상은의 아빠입니다. 엄마, 아빠 부르며 살려달라 애원했을 참사 현장을 찾아가 쓴 편지입니다. 네가 태어나 아빠 가슴에 안겼을 때 따뜻했던 너를 자주 안아주지 못한 것이 얼마나 후회됐는지. 엄마, 아빠가 너를 보내줘야 네가 맘 편히 좋은 곳에 갈 수 있다고 하니··· 딸아 잘 가거라.”(희생자 이상은 씨 아버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4일 만에 유가족들이 참사 이후의 심경을 공개 석상에서 처음으로 밝혔다. 22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유족들은 희생자의 이름이 적힌 명패를 앞에 두고 애끓는 심정을 토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희생자 유족 약 30명이 참석했고, 이 가운데 6명이 발언자로 나섰다. 유족들은 희생자의 영정사진을 가슴팍에 품거나 휴대폰 화면에 사진을 띄운 채 흐느꼈다. 한 유족은 “저희를 대신 데려가고 우리 자식들 제발 좀 살려서 돌려보내 주세요”라며 절규하다 쓰러질 뻔했지만, 유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잠시 회견장 밖으로 나가 호흡을 고르고 돌아왔다.

유족들은 참사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며 희생자가 살아있을 적 어떤 가족이었는지 읊었다. 이번 참사로 희생된 배우 이지한 씨 어머니는 “엄마 생일 축하해, 사랑해”라는 이씨의 마지막 육성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이씨의 어머니는 “2001년 육아 일기장에 너는 별명을 효자로 지어야겠구나(라고 적었다), 그 아이는 그렇게 착했다”라며 “해가 뜨는 것이 두렵고 제 입으로 물이 들어가는 것조차 싫었다”라며 아픔을 전했다.

희생자 송은지 씨의 아버지가 김의곤 시인의 시 ‘미안하다 용서하지 마라’를 낭독하자 회견장엔 흐느끼는 소리만 울렸다. 송씨의 아버지가 “그 좁은 골목길에 꽃조차 놓지 마라. 포개지도 마라. 겹겹이 눌러오는 공포 속에서 뒤로, 뒤로, 뒤로 꺼져가는 의식으로 붙들고 있었을 너의 마지막 절규에 꽃잎 한 장도 무거울 것 같아 차마 꽃조차도 미안하구나”를 읊을 때, 한 유족은 떨고 있는 다른 유족의 손을 꼭 붙잡으며 위로를 건넸다.

유가족들이 준비한 발언을 마치자 ‘10·29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지원TF’(이하 TF) 팀장인 윤복남 변호사는 유족을 대신해 6가지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참사 책임이 정부·지자체·경찰에게 있다는 정부 입장 발표 및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 △성역 없는 책임규명 △피해자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 및 책임규명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 인도적 조치 등 적극적인 지원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조치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공식 입장 표명과 구체적 대책 마련 등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동취재=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동취재=연합뉴스

TF 공동간사를 맡은 오미애 변호사는 “지난 두 차례 간담회에서 확인한 건 정부가 최소한의 기본적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족들은) 정부로부터 참사와 관련된 아무런 설명도 들을 수 없었다”라며 “가족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것이 유가족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유족들은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 유족에 대한 무관심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희생자 이남훈 씨의 어머니는 참사 직후 받은 아들의 사망진단서를 공개하며 “사망 일시는 추정, 사망 장소는 이태원 거리 노상. 제대로 된 장소, (사망 경위) 정보도 알지 못하고 어떻게 내 자식을 떠나보낼 수 있겠나. 심폐소생술은 받았는지, 병원 이송 도중 사망한 건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라며 “유가족의 아픔을 진정성 있게 생각한다면 제대로 조사하고, 대통령은 공식 사과하라”고 말했다.

희생자 이민아 씨 아버지는 최근 한 인터넷 매체가 희생자들의 이름을 일방적으로 공개해 논란이 된 사건을 언급하면서 “결국 (이 논란도) 유족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 자체를 처음부터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장례비와 위로금은 그렇게 빨리 지급하면서 정작 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유족들이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은 왜 참사 후 20여 일이 넘도록 안 해주는 건가. 정부는 유족의 요구를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하고, 우리 얘기에 답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딸의 영정사진을 껴안고 있던 한 어머니는 기자회견 말미 “명단 공개가 2차 가해라는 기사를 읽었다. 그 전에 저희 동의 없이 위패 없이 영정 없이 차려진 분향소가 저한테 2차 가해였다”라며 “장례 치르고 분향소에 윤 대통령, 그 앞에 교복 입은 학생이 무릎 꿇고 통곡하는 걸 봤다. 그게 분향소가 맞나”라고 울먹였다.

한편 대통령실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의한 일괄 국가배상을 검토 중이라는 일부 보도와 관련, 대변인실 공지를 통해 “현재 이태원 참사 특별법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검토하거나 결정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어 “먼저 이태원 참사 원인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에 따라 책임자와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그래야만 유가족들이 정당한 법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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