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준의 청춘을 위하여 ] (13)
올레길 3코스 14.6km를 걸으며
인생2막 설계도·나침반을 조망하다
다음10년 인생그림 어떻게 그릴지···

내 역사의 현재와 실존의 빈 배는 가을 올레길을 걸어가며 새롭게 채워지기 시작함을 깨닫습니다. 2022년의 가을 올레길 위에서 제 인생의 나침반을 재정비합니다. /픽사베이
내 역사의 현재와 실존의 빈 배는 가을 올레길을 걸어가며 새롭게 채워지기 시작함을 깨닫습니다. 2022년의 가을 올레길 위에서 제 인생의 나침반을 재정비합니다. /픽사베이

제주 시흥리 올레 1코스에서 시작한 청년과의 동행은 1코스의 종점이자 2코스의 시작점인 성산읍 광치기 해변을 거쳐 2코스의 종점 온평포구에서 석별의 생맥주 한 잔으로 따스한 포옹과 작별 인사를 고했지요. 

노랑 낙엽을 밝으며, 스물셋 청년이 수십 년 일기장에 꽂아 둔 단풍잎을 발견하고 해후한 것처럼, 또다시 먼 미래에, 여전히 살아 있다면, 그와 나는 틀림없이 재회할 겁니다.

 

청년과의 동행은 올레 2코스의 시작점 성산읍 광치기 해변을 거쳐 2코스의 종점 온평포구에서 석별의 생맥주 한 잔으로 작별식을 대신했지요. /사진=최익준
청년과의 동행은 올레 2코스의 시작점 성산읍 광치기 해변을 거쳐 2코스의 종점 온평포구에서 석별의 생맥주 한 잔으로 작별식을 대신했지요. /사진=최익준

여기까지 동행해 준 스물셋 청년인 나에게 "수고하고 애썼네" 포옹하고 격려했다면, 석별을 나눈 2022년 가을의 오늘 새로운 올레길을 나 홀로 걸으며 10년이 지난 미래의 나로부터 어떤 평가와 피드백을 받을지 상상하며 '놀멍 쉬멍 걸으멍' ('놀며 쉬며 걸으며'의 제주 방언) 바람과 포말이 쉼 없이 속삭이는 해안길을 시나브로 걸어 갑니다. 한 발 한 발 그리고 뚜벅 뚜벅.

헤어진 청년에게 20세기 바다는 억누를 길 없는 청년의 슬픔과 분노를 말없이 들어주었고, 치유할 수 없었던 유년의 상처들을 하얀 소금의 몰약으로 치료해 주었지요. 청년의 성취를 그 누구도 축복해 주지 못할 때 바다는 찬란한 태양빛을 파도에 부어 축배를 쏟아부어 주었고 그 힘으로 청년과의 이별은 표선 가는 길목 신산리의 붉고 따스한 추억으로 남겨 주었지요.  

 

바다는 청년의 슬픔과 분노를 말 없이 들어 주었고,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하얀 소금으로 씻어 주고 청년의 성취에 찬란한 태양빛 축배를 쏟아부어 주었지요. /사진=최익준
바다는 청년의 슬픔과 분노를 말 없이 들어 주었고,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하얀 소금으로 씻어 주고 청년의 성취에 찬란한 태양빛 축배를 쏟아부어 주었지요. /사진=최익준

인생 2막 다시 찾아온 바다는 방금 헤어진 청년의 바다와 다른 성숙한 바다임을 발견합니다. 수평선 끝 바다와 하늘이 닿은 곳을 바라보며, 수평선 너머 보이지 않는 '내 청춘의 끝은 어디일까?' 질문하던 불안한 바다는 이젠 없으니까요.

바다 너머 또 다른 수평선의 바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우리는 이미 압니다. 저 바닷속 한 발짝 더 노를 저어 가면 태평양을 지나 인도양과 지중해가 나타날 것도 우리는 압니다. 같은 맥락으로 21세기 새 가치를 발견하여 다음 세대에게 제공한다면 어김없이 미래의 시간은 저 석양처럼 찬란한 오늘이 되어 다시 기쁜 포옹을 하겠지요.

석양처럼 나보다 가난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며 내 허기진 실존의 배를 채워 나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사진=최익준
석양처럼 나보다 가난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며 내 허기진 실존의 배를 채워 나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사진=최익준

과거와 오늘의 생활에 모든 것을 걸면서도 여전히 가슴 설레는 것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더욱 온전해지지 않을까요? 저 먼 바다로 나가 볼수록 새로운 섬과 여정의 항구가 나타날 것이고, 나보다 가난하고 나보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들과 교류하고 나누며 내 허기진 실존의 빈 배를 채워 나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배려와 나눔의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벗어나야 할 '내 삶의 경계선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봅니다. 새로운 세상은 새로운 단어로 만들어진 도전적인 질문으로 시작하니까요. 

청년과 석별하고 다시 걷기 시작한 오늘 새로운 출발은 앞으로 다가올 십 년 후 나의 관점에서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나를 만들어 갈 사명(MIssion)과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조망하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놀멍 쉬멍 걸으멍 오늘도 종일 올레길 3코스 14.6km를 하염없이 걷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올레길 3코스 표선 해비치 해변을 지나며 - 다음 10년을 만들어 갈 사명(Mission)과 버킷리스트(Bucket List) 를 조망합니다. 오늘도 종일 올레길 3코스를 걷고 또 걸었습니다 /사진=최익준
올레길 3코스 표선 해비치 해변을 지나며 - 다음 10년을 만들어 갈 사명(Mission)과 버킷리스트(Bucket List) 를 조망합니다. 오늘도 종일 올레길 3코스를 걷고 또 걸었습니다 /사진=최익준

미국 소설『노인과 바다』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거대한 청새치 낚시를 위하여 충분히 견고하고 단단한 창살, 밧줄 그리고 체력을 준비하여 반드시 잡고 말겠다는 포부로 항해를 준비했듯 내 남은 생애 후반전의 설계도를 꼼꼼이 준비하고 싶어 제주 올레길 완주에 도전장을 내밀었지요.  

 "그래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거야~ 나는 그래야 행복하니까"

먹고사는 일의 계산과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생활의 루틴(Routine)과 그 경계선을 넘어가서 여행과 나눔 그리고 배려의 10년을 보낼 시간의 설계를 올레길 바다를 바라 보며 절치부심 걸으며 준비합니다. 

"그래~ 지금까지 수고했지만 더 넓은 세상을 만나는 거야~ 나를 사랑하는 만큼 타인을 위로하고 나누는 시간을 만드는 거야."

내 역사의 현재와 실존의 빈 배는 가을 올레길을 걸어가며 새롭게 채워지기 시작함을 깨닫습니다. 2022년의 가을 올레길 위에서 제 인생의 나침반을 재정비합니다.

『에밀』의 저자이자 사상가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는 '모든 사람은 세상에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어머니의 몸으로부터 하나의 생명으로 탄생하고, 또 한 번은 하나의 인격을 가진 능동적 의지를 가진 사회적 인간으로 태어난다' 했지요. 

올레길 3코스 종점에 도착하여 격한 감동의 바다를 바라봅니다. 저 바다보다 더 푸르고, 제주의 석양보다 더 붉고, 한라산 감귤보다 더 진했던 여기까지의 나날들을 제주의 먹구름 하늘 투명한 파노라마에 비추어 바라봅니다. 내 청춘의 시간은 피동적으로 잉태된 하나의 생명이었고 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정신적인 나를 찾아가는 감사와 수행의 소중한 유산입니다. 

 

생애 두번째 탄생을 위하여 표선해변 모래 위를 맨발로 걸으며 저 아름다운 석양과 진노랑 감귤나무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다음 10년의 인생그림을 어떻게 그려갈지 설계도를 준비할 겁니다. /사진=최익준
생애 두번째 탄생을 위하여 표선해변 모래 위를 맨발로 걸으며 저 아름다운 석양과 진노랑 감귤나무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다음 10년의 인생그림을 어떻게 그려갈지 설계도를 준비할 겁니다. /사진=최익준

첫 번째 생물학적 탄생부터 사회적 성장의 시간을 보낸 나의 청춘과 뜨겁게 포옹하며 석별하고 내 생애 두 번째 탄생을 위하여 표선해변 모래 위를 맨발로 걸어갑니다. 저 아름다운 석양과 진노랑 감귤나무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다음 10년의 인생그림을 어떻게 그려갈지 설계도를 표선의 해변길을 걸으며 나침반과 함께 조망합니다.  

내일은 올레길 제 4코스를 걸어갈 겁니다. 놀멍 쉬멍 걸으멍···. 그러나 목적지는 정해서 찬란하게 걸어갈 겁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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