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준의 청춘을 위하여] (7)
10년 전 계획한 산티아고 순례길 완보
매일 1만보씩 걸으며 3년째 준비만···
꿈 있는 그 산책길이 내겐 산티아고 길

우리 산티아고길 걸을까요?
당신의 여름은 어떠한가요?
짙은 초록과 저물어 쇠잔한 석양이 비대칭으로 어울려 오묘한 빛을 발하며 장마철 먹구름을 밝게 비추는 주말 초저녁입니다.
8.15 광복절은 마침내 여름 점령군을 몰아내고 선선하고 심쿵한 저녁 바람으로 가을을 되찾으려는 작전행동을 개시한 듯합니다.
햇수로 3년 전, 쓰나미(Tsunami) 처럼 떼거리로 달려든 검은 코로나19 바이러스 군단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엄숙히 시작한 하루 일만보 게릴라 산책이 시나브로 1000일이 되었답니다.
브라보, 천만보 걷기 만세!
어릴 적 전 재산인 동전 한 잎씩 매일 넣어 두던 저금통이 어느새 살찐 돼지가 되어 그것을 들고 맹렬히 동네 은행으로 달려가 푸른 잉크의 예금액이 찍힌 통장을 받아 들고 브라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환호하던 소년 시절 기운이 되살아납니다.
코로나 기간 집을 나설 때면 늘 까먹곤 하던 방역 마스크는 어느새 핸드폰, 지갑과 함께 몸이 완전히 기억하는 3대 필수품이 되었지요. 투명 유리창을 하얗게 덮은 천막처럼 두터운 방역 마스크에 가려진 호흡기로 1000일 동안 1000만보 걷기의 대장정을 완수한 셈이지요.
그렇게 코스모스(Cosmos) 속 푸르고 창백한 별 지구(Blue & Pale Earth)의 한 점 잠 들어가는 불빛 초저녁 도시의 탄천변을 따라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들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심장의 소리를 들으며 뚜벅뚜벅 헤쳐 3년을 걸어갔지요.

인생 2막 - '가자 산티아고 순례길'
실은 올해 2022년 내 생애 빛나는 60th Anniversary(60번째 생일)를 자축하기 위하여,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침공 오래전부터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즉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완보를 감행하기로 10년 전부터 모종의 계획을 준비했지요.
순례길 장거리 코스의 출발지이며 필자의 프랑스인 절친의 고향인 프랑스 서북단 해안도시 '생장 피 데포르(Saint Jean pied de port)'를 출발하여, 서쪽으로 피레네 산맥과 주변 도시들을 걸어서 쭈욱 30일간 햇빛과 비바람 속 800km를 분투하여 걷다 보면 대서양의 종점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 Stella)'에 도착하리라 설레는 기대와 함께 여행길을 꿈꿔 왔지요.
그러나, 완강한 가족의 반대와 필자의 소심함으로 인해 올해 산티아고 길에 선 순례자가 될 수 없었고, 팬데믹 종식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는 30일간의 스페인 순례는 여전히 버킷 리스트로 남아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의 신체적 준비를 위해 지난 3년 비 오는 날에도 우비를 차려입고, 신에게 다가가는 예행 연습으로 일만 보를 대부분의 매일을 걸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 계획이 불투명해질수록 걷기를 포기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지요. 지금까지 거인의 어깨를 탄 행운아로서 직업적 성공(Professional Success)의 길을 걸어왔다면, 내 인생 2막의 여정은 계급장을 떼어 버려도 여전히 멋진 삶(Meaningful Life)의 새 길을 개척하겠다는 고집 때문이기도 하지요.

지금 내가 걷는 길이 산티아고 길
1000일 동안 산책길 1000만보 걷기의 또 다른 이유라면, 코로나로 만들어진 타율적 사회적 격리의 시간을 적극적인 나의 시간으로 활용했기 때문이지요. 걷기는 온전히 몰입하는 자율신경의 환경을 제공해 주었지요. 『코스모스 (Cosmos)』의 저자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이 표현한 대로 '푸르고 창백한 지구별'의 구석구석 각자의 방에서 떨어져 치명적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력한 잠자리로 빨려 들기엔 삶의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초저녁 시작한 산책은 깊어가는 밤과 함께 아다지오(Adagio) 클래식과 FM 발라드(Ballad) 노랫말이 걸음걸이의 리듬에 맞춰 곁에서 숨 쉬는 친구가 될 수 있음도 깨달았습니다. 잠이 든 지붕과 지붕 사이를 비춘 산책길 가로등과 달빛은 곧 가고야 말거라 다짐한 산티아고의 따뜻한 태양과 서늘한 바람 속으로 한 발 또 한 발 나아가는 등대가 되었답니다.
걱정과 근심이 거꾸로 복이 된다는 사자성어 '전화위복(轉禍爲福)'처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학 반(反)의 역설처럼. 코로나 시대 사회적 격리는 우리들로 하여금 독서, 음악, 디지털 사회, 그리고 나 홀로 산책 같은 예체능의 세계로 입문하는 기회를 제공했지요. 그렇게 3년 동안 1000만보 산책길은 산티아고에 갈 만큼의 허벅지와 튼튼한 심장, 그리고 멀리 우주와 지구 반대편으로 떠날 상상력의 근육을 단련할 조련사가 되어 주었답니다.
언젠가 혹은 곧,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게 되면 스페인의 작가 미구엘 세르반테스(Miguel Servantes, 1547~1616)의 『돈키호테』가 제시한 시구절을 기도처럼 읊으며 순례의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고자 합니다. 꼬옥 ~ 반드시!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여정의 한계를 높여 주니)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으니)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며 (최악의 상황에 포기하지 않으니)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쉽게 무너지지 않으니)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인간은 별처럼 빛날 수 있으니)

돈키호테의 꿈길을 밟아가는 초저녁 여름 산책길은 저에게 이미 산티아고 길과 다르지 않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800km의 꿈길을 순례하기 위한 제 허벅지는 꿈이 있기에 전혀 피곤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각자 대한민국의 어떤 길을 걷든 어떤 일을 하든, 예수의 제자 야고보가 복음으로 걸어간 대서양 앞바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 Stealla)' 대성당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지요.
인생의 순례길에 당신은 어디를 걷고 계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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