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준의 청춘을 위하여] (1)
경제적 안정에 매달린 직장생활 전반
행복 찾아 떠나는 후배 보며 만감 교차
가슴 뛰게 할 일 찾아 떠날 꿈을 꾸다

10년간 직장에서 함께 고락을 나눈 동료 후배가 떠났다. 묵은지처럼 미운 정 고운 정 전우애의 감정을 공유한 후배였다.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는 듯 무심한 척 출근길을 나섰다. 그가 없는 사무실로 향하는 길, 흐린 하늘마저 먹먹함과 허전함의 배경이 될 뿐이다.
좌회전 신호대기를 기다리며 순간 상념에 잠긴다. 빡세게 고속도로를 질주하듯 지나 온 나의 33년 직장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휘리릭~ 기억의 필름들이 신호대기의 시간만큼 스쳐 지나간다.
아무 일 없는 듯, 회사 앞 까페에 도착한 나는 일하는 하루의 강을 건너기 위하여 테이크 아웃 모닝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기다린다. 먼저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손님 중에 직장 동료인 듯 이삼십 대 대여섯 명의 열띤 토론 소리가 들린다. 주제는 현재의 직장을 왜 떠나야 하는지, 언제 떠나는 게 좋을지였다. 각자 고민을 토로하고 공감을 나누다가 "커피 나왔어요"라는 바리스터 직원의 알림 소리에 각자의 커피를 들고 까페 문을 나선다.
그들의 뒷모습들을 바라본다. 그 그룹 속에는 이삼십 대 시절 같은 고민을 하던 나의 모습도 보이는 듯하다. 커피를 마시며 나 역시 그들과 다름없이, 뜬 눈으로 밤을 꼬박 새우며 새로운 배로 갈아 탈 모험을 위하여 번민과 성찰의 시간을 치열하게 보낸 청춘이었음을 또렷이 기억한다. 노래 가사처럼 지독히 아픈 만큼 성숙해 가는 시간이었음을.
나에게 직장을 떠나는 일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대양 한가운데 항해 중인 배에서 내려 다른 항로의 미지의 배를 갈아타거나 숲 속의 나무를 베어 뗏목을 만들어 노를 젓는 것과 같았다. 내가 타고 있던 크고 멋진 배를 떠난 이유는 그 배가 지향하는 곳에 다다를 때 진실로 내가 행복한 지점이 아니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내 삶에 서너 번 배를 갈아탈 기회가 왔을 때마다, 세상을 바꾸기엔 턱없이 작은 배 한 척이 설렘과 두려움으로 미지의 먼바다로 출항하는 꿈을 꾸곤 했다.
때로는 안식을 주는 바다, 때로는 죽음보다 무서운 파도를 겪어 내야 하는 불확실한 항해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생 숙제가 아닐까? 불혹을 넘어 인생 후반전으로 갈수록 그 배가 향하는 북극성이 무엇이며, 목적지가 어디인가를, 경제적 가치와 더불어 나만의 가슴과 영혼의 소리를 듣고 무엇을 할지 계획해야 하지 않을까?
남이 보기엔 화려하고 절대로 풍랑에 휩쓸리지 않을 만큼의 큰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도 스스로 탄 배가 행복한지 성찰의 나침반을 꼭 쥐고 탐험해야 하지 않을까? 진정으로 행복하지 않다면 진정한 용기로 습관의 배에서 내려 새로운 배를 건조하거나 다른 배로 갈아탈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결단이 바로 인생 이모작의 배가 아닐까?
새롭게 갈아탄 배에서 행복하려면, 그 배의 특징이 내게 어떤 가치를 주는지 에너지가 소진될 만큼 치열하게 탐색하며 궁극의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일을 시작한 후배 동료에게 '사회적 가치와 보람 있는 삶을 찾아 떠났으니 잘해 보라'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새로운 길이 예상외로 힘겹거나 행복하지 않을 때 다시 돌아오라고 했다.
나에겐 직장생활 전반의 항로는 오로지 경제적 안정과 가족의 안전이었다. 그 배에서는 내가 탄 배의 조직문화와 목적이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아 마음 내키지 않아도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그 배에서 내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살아왔다.

새로운 항로를 찾아 떠나간 후배에게 용기를 얻은 것처럼, 남의 시선보다 나의 가슴이 설레는 일, 동반성장의 새로운 배로 갈아탈 꿈을 실행할 것임을 고백한다. 자본주의적 경쟁과 기후변화의 폭풍우를 견디며 이해관계자에게 성장의 가치와 비전을 제공해야 하는 고독한 CEO의 배를 타고 있지만,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된다는 큰 믿음 하나로 저 먼 하늘의 북극성을 가리키며 소리 지르고 침묵하며, 때로는 나보다 유능하고 지혜로운 동료의 아픈 지적에 기꺼이 사색하며 경청하는 북극성호의 선장으로 남은 시간들을 보내려 한다.
"돈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의 배에서 내리고 "함께 행복한 배가 너희의 항해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계시를 이해하는 동료, 파김치로 매일 하루를 마감하여도 타인을 배려하는 조직문화, 이웃과 환경을 우선하는 사명이 있는 배로 갈아탈 꿈 꾸기를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여전히 젊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