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받는 이재명 만나는 것 자체가 불필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서영교 의원의 대정부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서영교 의원의 대정부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수차례 요청한 영수회담을 거절한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18일 영국과 미국 등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뒤 여야 당 대표, 원내대표와 함께하는 다자회담을 제안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형식과 관계 없이 회담을 통해 얻는 정치적 이득이 없어 다자회담도 무산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8일 대표 취임 직후부터 보름 간 영수회담을 다섯 차례 요구했다. 지난 8일 검찰이 이 대표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한 날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지금 정치는 위기에 빠진 국민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대통령께 다시 요청드린다”며 영수회담을 요청했다.

영수회담은 정치권에선 관행적으로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일대일 만남을 의미한다. 과거 여당의 총재가 대통령인 시절에는 실질적인 여야 협상 자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한 2002년 이후 대권과 당권의 분리, 즉 당정분리가 일반화되며 영수회담이라는 용어는 차츰 사라졌다.

여권에선 민주당이 ‘김건희 특검법’을 추진하고 윤 대통령의 탄핵을 암시하는 발언을 내놓는 상황 속 거듭되는 영수회담 요청에 대한 불쾌감도 감지된다. 김기현 의원은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말로는 ‘첫째도 민생, 둘째도 민생, 마지막도 민생’이라 포장하여 앞에서는 고상한 척 민생과 협치를 말하면서 뒤로는 권모와 술수, 기만과 선동을 일삼는 발상은 너무나 구태스럽고 한심할 따름”이라면서 이 대표를 향해 “그래놓고서 영수회담은 하자고 애걸복걸하는 이중성에 기가 찰 뿐”이라고 적었다.

전문가는 이 대표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민생이지만 본인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영수회담을 요구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영수회담을 통해 본인의 정치적 영향력, 즉 ‘급’이 올라가는 효과가 있어서 이 대표를 포함한 역대 모든 야당 대표들은 영수회담을 원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이 대표와의 영수회담은 사실상 거부하고, 국민의힘과 정의당을 포함한 '다자회담' 추진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15일 국회에서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예방한 후 기자들에게 “우리 비상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정의당도 비대위가 정리되면 대통령께서 해외 순방을 다녀오고 나서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만나는 것도 한번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라며 “대통령은 영수회담이라는 용어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측에서 사실상 이 대표에게 영수회담이 아닌 다자회담을 역제안한 셈이다.

이에 민주당 측은 다자회담의 경우, 단독 회담과 비교해 할 수 있는 대화가 비교적 제한적이며 자칫 ‘식사 회동’으로 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창립 1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그냥 밥 먹고 사진 찍자는 얘기지 않나”라며 “세심하게 협치나 주요 의제사안에 대해 흉금을 터놓고 얘기하고, 그중에서 협력할 것은 협력하기 위한 자리라면 그런 형식을 취하지 않을 것”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대표가 지난 8일 “민생과 경제 회복을 위해 언제든 초당적 협력을 하겠다”라며 “절차도 형식도 관계없다. 여당이 함께하는 것도 좋다”라고 밝혔고 지방을 다니며 민심을 듣는 행보를 보이는 만큼 다자회담을 거절할 명분이 없는 상황이다. 이 대표로서는 다자회담을 수용할 경우 자신이 부각되기는 어렵지만 이를 거부할 경우에는 ‘민생을 위한 협치는 말뿐’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한편 신 교수는 영수회담과 다자회담 모두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이득이 없다고 진단했다. 신 교수는 “현재 수사를 받고 있는 이 대표를 만나서 불필요한 그림이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여러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라며 “보수층에서도 이 대표와 만남 자체에 비난이 높을 것이며 사법 리스크가 있는 이 대표를 만나 어떤 말을 들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회동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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