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뒤늦게 공론화 작업 착수
학부모·교육계, 재검토 아닌 철회해야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참가자들이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학제개편안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참가자들이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학제개편안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현행 만 6세에서 만 5세로 낮추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학부모와 교육계의 반발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예상보다 거센 반발에 정부는 속도조절을 하겠다고 한 발 물러선 상태인데 학제 개편안 정책을 철회한 것은 아니라서 찬반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만 5세 입학에 대한 국민 여론은 100명 중 98명이 반대 의견을 보이고 있는 등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지만, 정부는 일단 공론화 작업에 착수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신속한 강구를 지시하고 박순애 교육부총리가 직접 추진을 발표했던 만큼 당장 철회는 어렵고, 반대 여론은 거세 공론화를 통한 의견 수렴에 나서지만 부정적 여론이 커 애초 정부가 검토했던 방향대로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당장 4일부터 국회에서는 윤 정부의 학제 개편안에 반대하는 맞불 토론회가 잇따라 열린다.

학부모와 교원 단체에서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낮추는 것에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유보통합(유치원과 어린이집 통합)에 따른 학제 개편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노동인구 감소 예상으로 청년층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나이(입직나이)를 앞당기기 위해 산업 인력 양성에만 초점을 맞춘 학제개편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특히 현 정부 국정과제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안건을 학부모와 교사, 정책을 수행할 시·도 교육청 등과 의견 수렴 과정도 없이 갑작스럽게 교육 정책으로 추진했다는 비판까지 더해진다.

학제 개편 논의는 역대 정권마다 언급됐었다. 당시도 청년들의 입직나이와 가정에서 유야를 돌보는 기간을 1년 줄일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이 강조됐다. 하지만 현실화 되지 못했던 이유는 아동의 발달과 교육 측면에서는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는 우려에서다.

현재도 만 5세 나이에 초등학교에 조기입학 하는 것은 가능하다. 초등교육법에 따르면 아동은 만 6세가 되면 취학시켜야 하지만 학생수용능력에 여유가 있는 경우 만 5세 아동의 조기 입학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의 교육통계 자료집에 따르면 조기 입학 아동은 감소 추세에 있다. 정부가 취학기준을 3월~이듬해 2월생까지에서 1월~12월생까지로 바꿨던 2009학년도에 9797명이었지만, 그 뒤로는 꾸준히 감소해 지난해 조기입학 아동은 537명으로 전체 초등학교 입학인원인 23만 8405명의 0.125%에 불과했다.

교육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만 5세는 유아기다. 유아교육 대상 연령인 5세는 발달심리학 특성상 6세와 구분돼야 한다"며 "어린 나이에 입학한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나 적응도가 뒤떨어지는 경우가 이미 나타나 조기 입학도 줄어들고 있는데, 입학 연령이 1년 앞당겨진다면 반대로 취학을 1년 유예하는 초등학생들이 급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지현 공동대표도 "지금 수많은 커뮤니티와 기사 댓글에는 찬성하는 부모는 없고 모두 불안해하면서 조기교육 경쟁만 가속화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방과 후 돌봄 공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걱정하고 날벼락을 맞았다고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발달단계에 맞지 않게 1년 앞당겨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부모를 교육부는 어떻게 책임지려고 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추진 철회를 위한 국회 긴급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추진 철회를 위한 국회 긴급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도 정부의 만 5세 초등학교 취학 학제 개편안에 대해 "전 국민 패싱 졸속 행정"이라며 맹공을 가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과 민주당 의원 47명은 4일 정부의 학제 개편안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과 함께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정책 재검토가 아닌 정책 추진 철회를 촉구했다. 

강득구 의원이 초등학교 입학연령 만 5세 하향과 관련 학생 학부모 교직원 등 13만 1070명을 대상으로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7.9%는 정책에 동의하지 않았다. 특히 '매우 동의하지 않는다' 비율은 95.2%로 나타났다. 또 정책 추진 절차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98%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매우 동의하지 않는다'도 95.2%로 조사됐다. 

강득구 의원은 "정부는 만5세 영유아 발달 과정을 철저히 무시했다"며 "이렇게 중요한 사안에 대해 교육 주체는 물론 국민 전체를 완전히 배제시켰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국회 교육위원장인 유기홍 의원도 "학제 개편은 교육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매우 큰 만큼 충분한 검토와 의견 수렴을 거쳐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며 "대선 공약이나 국정과제에도 포함되지 않은 사안을 의견 수렴 없이 기습 발표했다"고 정부의 졸속 추진을 비판했다.

한편 국회 교육위원회는 다음주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국회로 불러 관련 문제에 대해 의견을 물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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