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다운 방식’ 관계 회복 모색
과거사 해결과 정상회담 추진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5차례 만났다. 양 정상이 교착상태였던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확인하면서 ‘톱다운’(하향식) 방식의 개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윤석열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도어스테핑(약식회견)을 통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 대해 "한일 현안을 풀어가고 양국 미래의 공동 이익을 위해 양국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그런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하게 됐다"며 "어제 스페인 국왕 만찬에서 잠깐 대화를 나눴고, 오늘 상당 시간 아시아·태평양 4개국(AP4) 회의를 했다"고 밝혔다.
나토 정상회의에서 두 정상이 처음 마주한 것은 28일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가 주최한 환영 갈라 만찬에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가 먼저 윤 대통령에 다가와 "대통령 취임과 지방선거 승리를 축하한다"며 인사를 건넸고 이후 3~4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기시다 총리는 "한·일 관계가 더 건강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양 정상은 이외에도 AP4(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정상회담, 한·미·일 정상회담, 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 기념 촬영까지 다섯 차례 대면했다.
한일 정상의 단독 만남이나 약식회담(풀어사이드)은 무산됐다. 양국은 위안부 합의 문제와 강제징용 보상 문제, 반도체 등 수출 통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정상화 등 민감한 현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정치적 합의까지 이끌어내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를 양국 관계 발전을 함께 모색할 ‘파트너’로 평가하며 신뢰감을 드러내면서 한일관계 개선의 물꼬가 트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지난 4년간 열리지 않았던 한일 정상회담의 연내 개최 가능성도 거론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제가 봤을 때는 ‘보텀업’(상향식)이 아니라 ‘톱다운’ 분위기”라며 “한·일 정상끼리는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겨진 과제는 참모와 각 부처가 얼마나 마음을 열고 진솔한 대화를 발전시킬 것인가”라고 덧붙였다.
한일 관계는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악화일로를 걸었다. 한 때 문재인 전 대통령은 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으나 실질적인 성과는 없었다. 이에 아직도 한국보다는 일본이 더 불신을 해소하지 못한 기류를 보인 상태다.
기시다 총리는 한미일 정상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 일본의 일관된 입장을 토대로 윤 대통령을 비롯해 한국 측과 긴밀히 의사소통하겠다”고 말했다.
‘일본의 일관된 입장’이란, 강제동원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으니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고 한국 측이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한 기시다 총리는 외무상으로서 주도했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문재인 정부에서 사실상 파기된 이력을 익히 아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김태형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현 정부가 선거 캠프에서부터 한일관계를 우호적으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던 측면을 이어갈 것"이라며 "전 정부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서도 강조하겠지만, 아직은 과거사 등 미묘한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급속히 추진하진 않을 것 같고 여러 국민 감정도 고려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