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준의 마이 골프 레시피 49회]
골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선입관
20만원 넘는 그린피, 평균 1시간 이동
대중화 위해선 부족한 공급 해결해야

‘테트리스’라는 비디오 게임(낙하하는 다양한 형태의 직각 면 블록을 바닥부터 채워 나가는 퍼즐게임)이 처음 나왔을 때, 이것에 중독된 사람들이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에서 테트리스 블록이 떨어지는 환영을 본다는 농담 섞인 진담을 하곤 했다.
골프에 중독된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주차장 바닥에 쓰여 있는 숫자가 페어웨이 스프링클러 헤드 위에 적혀 있는 거리표시로 보였다는 사람도 있었고, 택시 안에서 창밖 휴지통까지 30미터 정도 남았으니 피칭 웨지로 칩 샷을 하는 상상을 했다는 열혈 골퍼의 이야기도 들어봤다.
뉴욕 맨해튼에서 건축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 멋진 슈트 차림의 남성이 택시를 기다리며 우산으로 스윙연습을 하는 걸 봤을 때는 사진기가 없었던 게 안타까웠을 정도로 그 멋진 모습에 감탄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 낮, 서울 도심에서 아주 새로운 광경을 접했다.

골프 스윙으로 본 낭패
버스 정류장 옆을 지나는데 클래식한 정장을 입고 있는 초로(初老)의 여성분이 눈에 익은 몸짓을 하고 있었다. 설마 하며 고개를 돌려 다시 보니 골프 스윙에 필요한 체중 이동 연습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건 누가 뭐라해도 벤 호건이 강조했던 골반이 리드하는 체중이동 훈련이었다. 자그마한 체구의 그녀가 입고 있던 트위드 자켓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진지한 모습.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고개를 돌리더니 길 쪽을 향해 양손을 흔들어 댔다.
아, 다행히도 정류장을 떠나려던 버스가 순간 멈춰 섰고, 잠시 후 버스는 그녀를 태우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열혈 여성골퍼는 골프 연습 삼매경 때문에 당할 뻔한 낭패를 모면했지만 이와 반대로 지독한 고초를 겪은 사람이 있었다.
2021년 5월, 경남 통영시 홍도 북방 해상에서 실제로 벌어진 골프에 얽힌 사건이다. ‘바다 한가운데서 타구 사고가 난 것도 아닐 텐데’라고 의아해할 독자들을 위해 신문기사(조선일보 2021.06.01)에 실렸던 그때의 상황을 정리해 보겠다.
‘레저보트를 타고 온 다이버가 작살로 불법 어업을 하고 있다’는 어민의 신고를 받은 통영해경이 500t급 경비함을 출동시켰다. 고속정으로 레저보트에 오른 해경대원들은 불법으로 채취한 해산물과 포획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작살류 등을 발견하고 관련자들을 조사했다. 그런데 이 때 난데없이 조사를 받던 관련자 중 하나가 “해경님 나이스 샷’이라 외쳤다.
그는 멀리 함정 갑판에서 해경 중 하나가 골프 스윙을 하는 모습을 목격했고 휴대폰으로 그 장면을 촬영하여 언론사에 제보했다. ‘함정에서 바다를 향해 골프를 치는 걸 보면서 단속 당하는 사람들은 우롱당하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한 피단속인 임모 씨.
이에 해경은 감찰 조사를 벌였고, 골프채가 아닌 걸레 자루로 스윙 연습을 한 해당 경찰 간부를 대기 발령 조치했고 ‘복무 규율 위반 등으로 필요 시 징계 조치를 내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해당 경찰은, ‘주변에 아무도 없고, 검문과 검색이 오래 걸리다 보니 최근 취미로 배운 골프 연습을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만일 그가 실제로 골프채를 사용했고 바다를 향해 공을 쳤다면 명백한 복무규정 위반이고 논란의 여지없이 징계를 받아 마땅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줄넘기를 하거나 걸레 자루로 검술 연습을 했어도 징계사유에 해당했을까?
현장을 직접 목격한 당사자가 아니라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겠으나, 골프스윙을 했기에 그에 대한 비난이 더 가중됐던 건 아닌지 지금까지도 불편한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다. 결국 대한민국에서 골프는 잊을 만하면 나타나 비판의 대상이 되는 천덕꾸러기인 것인가?
2022년 골프를 바라보는 시각
금년 4월 한국갤럽이 발표한 ‘골프에 대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골프를 사치스러운 운동이라 생각하는 비율은 전체의 36%로 1992년 동일한 질문에 같은 견해를 보였던 72%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성인 1004명 대상). 골프를 칠 줄 안다는 답변도 30년 사이에 2%에서 34%로 급증했다.
응답자 중 남성 42%, 여성 26%가 골프를 칠 줄 안다고 답했고, 이들 중 14%가 최근 1년간 필드에 나갔다고 답했다. 특히 지난 2년여간 COVID19 팬데믹의 부정적 영향을 받은 타 스포츠에 비해 전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호황을 누린 골프는 지난 해 국내 총 4673만 명의 골프장 내장객을 기록해, 2016년 3672만 명 대비 20%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지표와 함께 500개 이상의 골프장, 500만 명 이상의 골프인구가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골프를 대중스포츠라 부르는 걸 주저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골프가 아니라면, 누구나 거리낌 없이 대중스포츠라 부를 수 있는 운동은 무엇일까? 실제로 참여하는 스포츠의 경우는 배드민턴과 탁구 등일 것이고, 경기를 관람하는 스포츠는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이 있을 것이다. 결국 참여 스포츠나 관람 스포츠나 대중스포츠로 사랑받기 위해서는 남녀노소 모두가 큰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고 쉽게 즐길 수 있는 접근성을 갖춰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의 골프, 특히 스크린 골프를 제외한 필드에서 플레이하는 골프는 대중스포츠로서 널리 사랑받기에 부족한 근본적인 두 가지 원인을 갖고 있다. 그것은 경제적, 지리적 접근성의 문제이다.
주말 18홀 그린피가 20만원을 훌쩍 넘고 자동차로 평균 1시간 이상을 이동해야 갈 수 있는 대다수의 골프장을 서민들이 대중 스포츠로 즐기기에는 너무도 높은 벽이 존재한다. 골프 선진국인 미국의 경우 전체 골프장의 17%가량이 지역 주민들을 위해 지자체가 운영하는 골프장이다. (2017년 기준 지자체 골프장 2497개, 전체 골프장 1만 4794개, 출처 NGF) 그리고 이들의 평균 그린피는 36달러(카트비 포함), 우리 돈으로 4만5000원에 불과하다.
안타까운 결론을 내리자면, 대한민국에서 골프 대중화는 아직도 요원한 미래의 희망이다. 수요보다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시장에선 공급자가 주도하는 고가 가격정책에도 소비자는 순응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같은 골프선진국이 오랜 기간 이룩한 대중 골프 문화는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노력과 투자 없이는 불가능하다.
다음 주 칼럼에서는 골프 대중화를 위해 정부와 업계에서 보여주고 있는 다양한 노력들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오상준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대표
한국인 최초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에서 골프코스 설계 부문 석사 및 컬럼비아대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조성공사 등에 참여했다.
2015 프레지던츠컵과 더CJ컵 국제대회 운영을 담당했으며, 미국 GOLF매거진 세계100대코스 선정위원, 싱가폴 아시아골프산업연맹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골프에세이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을 출간했고, 유튜브 '마이 골프 레시피'와 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골프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