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준의 마이 골프 레시피 48회]
싱가포르 골프산업의 어제와 오늘
정부가 30년간 땅을 빌려주는 방식
사회적 책임 중요시, 관리에도 엄격

싱가포르의 상징 머라이언 / 플리커닷컴
싱가포르의 상징 머라이언 / 플리커닷컴

산스크리트어로 '사자의 도시'라는 의미의 싱가포르는 말레이 반도 끝단에 붙어 있는 작은 도시 국가이다. 북쪽은 말레이시아와 조호르 해협을 건너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남쪽으로는 말라카 해협 너머 인도네시아가 위치해 있다.

19세기 초부터 영국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던 싱가포르는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에 점령됐고 종전 후 1963년까지 다시금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말레이시아 14개 주의 하나로 편입됐던 싱가포르는1965년 8월 9일 말레이시아의 일방적인 협약파기로 타의에 의한 독립을 하게 된다.

서울시 면적의 약 1.2배 밖에 안되는 섬 위에 545만명이 살고 있는 싱가포르는 1인당 GDP가 6만4000달러에 이르는 작지만 부유한 나라이다. 짧고 굴곡진 역사에도 눈부신 발전을 이룬 싱가포르의 골프산업은 어떻게 시작됐고 현재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까?

싱가포르 골프장의 끊임없는 생존전략

리콴유(Lee Kuan Yew) 총리의 강력한 국가주도 정책으로 부강한 나라가 된 싱가포르에 가장 아쉬운 것은 국토와 자연자원이다. 그렇다 보니 공공주택이나 기간시설을 건설해야 할 땅에 골프장을 만든다는 생각 자체가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싱가포르에는 총 17개의 골프장이 있고 이 중 14개가 회원제 골프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골프장은 예외 없이 정부가 소유한 땅을 빌려서 만들었다. 그리고 30년 남짓한 임대 기간이 도래하면 기간을 연장하여 코스를 존속시킬지 말지를 결정하는 운명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수 년 전에도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와 싱가포르를 연결하는 고속철도 건설을 위해 멀쩡히 운영되던 코스 2곳의 문을 닫게 한 적이 있었다. 주롱 CC와 래플스 CC가 이런 운명을 맞게 된 주인공들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고속철도 사업계획이 무산된 후 지금까지도 문이 잠겨 있다.

싱가포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골프장인 싱가포르 아일랜드 컨트리클럽(SICC)의 운명도 이를 피해갈 순 없었다. 72홀 규모를 자랑하던 SICC는 정부와의 협약에 의해 2022년부터 사임코스 18홀을 대중제로 기부하고 정부가 지정한 회사에 운영을 맡기게 되었다. 72홀에서 54홀 규모로 축소될 운명을 맞았던 SICC는 회원 권익을 보강하기 위해 정부와 협상하여 기존 아일랜드 클럽의 18홀 부지에 9홀을 더해 27홀로 리모델링했다.

싱가폴아일랜드CC /골프코서치텍쳐
싱가폴아일랜드CC /골프코서치텍쳐

지난 주 새롭게 개장한 SICC의 뉴 코스를 방문했다. 2019년 2월에 시작된 리모델링 공사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공기가 지연되어 2021년 4월에 완공되었다. 총 450억원의 공사비를 투입하여 27홀 레이아웃으로 다시 태어난 코스는 밀레니엄 9홀, 퍼스 9홀과 포레스트 9홀로 나뉜다. 첫째 날 밀레니엄과 퍼스 코스를 플레이 한 필자는 마침 클럽을 방문중이던 그래함 마쉬(Graham Marsh)와 저녁식사를 함께 할 기회를 가졌다.

뉴 코스의 설계자 그래함 마쉬

호주 출신의 그래함 마쉬는 미국과 유럽, 일본과 아시아를 무대로 통산 69승을 기록한 베테랑 프로 골퍼이다. 그가 우승한 대회 중엔 1977년 톰 왓슨을 누른 미 PGA투어의 헤리티지 클래식이 있다. 훗날 시니어 메이저 대회 2승(1997년 시니어 US오픈)까지 기록한 그에 대해 필자는 그와의 만남이 있기 전까지 잘 알지 못했다.  과거 그가 설계한 호주 코스에서 라운딩을 한 적이 있었을 뿐이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SICC의 총지배인이 내게 물었다. ‘그래함의 프로전적 우승 횟수가 몇일 것 같나?’ ‘36승?’이라고 대답한 내가 진실을 알게 됐을 땐 내 무지(無知)에 대해 사과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1979 던롭마스터즈 우승자 그래함 마쉬
1979 던롭마스터즈 우승자 그래함 마쉬

이에 개의치 않고 그래함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훌륭한 코스가 나오기까지 꼭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나는 ‘심미안이 있는 오너와 훌륭한 코스부지 그리고 능력 있는 설계자’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가 두가지를 더했다. ‘훌륭한 설계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시공사와 완성된 코스를 잘 관리할 수 있는 관리팀도 중요한 5가지 요소에 포함된다.’ 1986년부터 36년간 전 세계에 코스를 설계해 온 78세의 베테랑 설계자인 그는 코스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열대지역에 세워진 코스들은 연중 고온 다습한 기후 때문에 플레이에 적합한 잔디를 재배하고 짧게 관리하는데 많은 애로사항이 발생한다. 특히 SICC의 뉴 코스는 도시에 식수를 공급하는 퍼스 저수지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코스 건설 시 환경훼손을 금지함과 동시에 코스관리도 환경 친화적으로 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SICC 메이데이채리티 /골프아시아
SICC 메이데이채리티 관계자들 /골프아시아

 

싱가포르 아일랜드 CC의 자선활동

싱가포르 골프의 역사를 관찰해 보면 한정된 땅 안에 골프장이 존속할 수 있는 명분을 스스로 찾는 과정이자 정부와의 끊임없는 협상에 의해 생명을 연장해가는 과정이었다. 545만 인구의 5%도 되지 않는 8만명의 골퍼를 위한 스포츠시설이 존재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환경적인 책임과 더불어 사회적인 책임까지도 짊어져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것이다.

SICC는 51년 전부터 메이데이 채리티(May Day Charity)라는 자선기금 모금 골프행사를 지속해 왔다. 금년에 개최된 행사에서는 총 47개 기업을 포함한 50곳의 후원단체가 16억원이라는 기금을 조성했다. 모금 행사의 이벤트 중 하나인 골프대회에는 700명이 참가했고, 하리마 야콥(Halimah Yacob) 싱가포르 대통령이 이날 축사를 했다.

"SICC의 이웃돕기, 특히 지금과 같이 유래없이 힘든 시기에 보여준 헌신적인 노력은 싱가포르 국민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활동입니다. 나는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려는 정신을 고무하는 SICC의 훌륭한 전통이 향후에도 지속되기를 희망합니다."

골프장이 현금을 찍어내는 캐시카우(Cash cow) 사업장으로만 머물고 환경적, 사회적 책임을 등한시 한다면 대다수 국민의 사랑을 받는 대중스포츠로서 자리잡기는 힘들 것이다. 대통령도 거리낌 없이 골프 행사에 참석하고 격려하는 싱가포르의 골프문화가 무척이나 부러웠다.

오상준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대표

한국인 최초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에서 골프코스 설계 부문 석사 및 컬럼비아대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조성공사 등에 참여했다.

2015 프레지던츠컵과 더CJ컵 국제대회 운영을 담당했으며, 미국 GOLF매거진 세계100대코스 선정위원, 싱가폴 아시아골프산업연맹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골프에세이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을 출간했고, 유튜브 '마이 골프 레시피'와 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골프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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