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치매센터 치매안심센터 수기 공모전 최우수작]
평생 투병 생활 해오신 치매 아버지
아버지의 의자에 앉아 세상을 보는 아들
오늘따라 대문 앞에 놓여 있는 빈 의자가 애처로워 보입니다. 아버지께서 늘 앉아계시던 의자입니다. 치매를 앓으셨던 아버지는 살아생전 날이 새기만 하면 어김없이 나지막한 담장 앞에 있는 낡은 의자에 앉아 세상 구경을 하셨습니다. 지나가는 동네 분들과 눈인사도 하고 대추나무 밑에 매어 놓은 강아지랑 장난을 치시기도 하셨죠. 무더위에도 땡볕에 앉아 계시는 바람에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리고 땀범벅이 돼도 방으로 안 들어오시곤 했죠.
아버지는 군대에서 총상을 입어 머리 수술을 수차례 받으셔서 왼편 마비가 되어 걷는 것도 절룩거리고 왼쪽 팔을 사용하지 못하셨습니다. 평생 투병 생활을 해오던 중 치매 판정을 받으셨고 치매 증상이 조금씩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라지셨습니다. 경찰에 신고하고 우리 가족은 평소 어머니랑 다니던 산책로며 뒷산 여기저기를 밤늦도록 찾아다녔지만 허사였습니다. 밤 열 시쯤 장호원 고모님 댁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가 장호원 경찰의 도움으로 지금 집으로 들어오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모 댁에서 며칠 계시게 한 뒤 보낼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전화였습니다. 버스로 두 시간이면 갈 거리인데 아침에 나가신 분이 밤 열 시까지 길을 못 찾았으니 얼마나 몸이 달았을까 생각하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놀란 어머니를 달래드리고 사흘 후에 아버지를 모셔왔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아버지가 좋아하는 백숙을 먹으러 갔는데 어머니에게 미안하셨던지 뱃살 빼야 한다며 죽만 조금 드시는 걸 보니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 후 5개월여를 자식들 얼굴도 이름도 잊어버리고 어린아이처럼 지내시다 돌아가셨습니다. 한 인간의 삶의 궤적이 모두 사라지고 평생을 보듬었던 가족들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고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과정이 어떤 것인지 아버지를 보면서 알 수 있었습니다.
기억을 잃어가면서 겪어야 하는 환자의 고통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고 가족들 또한 삶의 바탕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오랜시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날들을 보내는 동안 어머니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시립니다.
아버지의 빈 의자는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 우리를 반깁니다. 아버지께서 살아생전 그러셨듯이 그 의자에 앉아 세상을 봅니다. 저마다 아버지와의 추억을 꺼내보는 추억의 의자입니다. 아버지는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속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응원해 주고 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