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노의 정치 언박싱]
역대 대선서 공동정부론 성공은 DJP연합이 유일
진정성과 신뢰가 열쇠···DJ, 1년 8개월 간 공들여
尹·安단일화 성공하려면 DJP연합 벤치마킹 필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단일화 여부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윤석열 후보(오른쪽)와 안철수 후보가 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2022 중소기업인 신년 인사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단일화 여부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윤석열 후보(오른쪽)와 안철수 후보가 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2022 중소기업인 신년 인사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선거가 1월 11일 현재 57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부진하면서 대선 레이스도 박진감이 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차기정부의 비전과 정책 개발에는 뒷짐을 진 채 오로지 정권교체라는 단발 엔진에만 의존해오던 윤석열 후보는 상승 동력을 상실하며 추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기에 빠진 윤 후보의 탈출 전략도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윤 후보 측은 청년 전략가들을 앞세워 의사결정 구조를 단순화하고 메시지도 간결하게 발신하면서 반격의 모멘텀을 찾고 있습니다. 이런 소프트웨어의 재정비도 중요하지만 윤 후보 측은 ‘후보 단일화’라는 거대한 하드웨어 한방으로 단번에 상황을 뒤집을 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징후는 지난주 초부터 조금씩 포착되고 있습니다.

필자는 ‘윤석열의 마지막 승부수’(1월4일자) 칼럼이 나가고 얼마 안 돼 윤석열 캠프 관계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글을 잘 읽었다”는 말과 함께 “내 마음과 똑 같은 글을 써서 공감을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해도 되느냐”고 필자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필자는 지난주 칼럼에서 윤석열 후보가 권력분점의 전략 연장선상에서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를 하더라도 양당이 공동정부 구성 수준의 파격적인 양보를 하지 않으면 단일화의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앞서의 윤석열 캠프 관계자 또한 “만약 단일화를 한다면 공동정부를 구성한다는 수준으로 파격적으로 해야 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습니다. 

사실 후보 단일화는 윤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안철수 대표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그 교차점에서부터 자연스럽게 발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1월 7일경을 기점으로 일부 언론에서 국민의힘 일각에서 후보 단일화를 공동정부 구성 수준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를 하면서 단일화 이슈는 조만간 대선 레이스의 최대 ‘우세종’으로 등극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국민의힘이 먼저 몸이 달아 단일화에 목을 매고 있다는 것입니다. 윤 후보의 지지율 급락을 목도한 윤석열 캠프 관계자들은 일반적인 수준의 단일화 방식으로는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없고 무엇보다 안철수 후보를 유인할 만한 ‘당근’이 부족하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공동정부 구성론’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앞서의 윤석열 캠프 관계자 또한 단일화를 언급하면서 ‘공동정부’를 조건으로 파격적인 단일화 방식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입니다. 윤 후보 측이 대선의 판세를 일거에 뒤엎기 위해 ‘자강’이 아닌 사실상 로또에 가까운 외적변수로 ‘인생역전’을 노리는 것 자체가 정치를 공학적으로 이용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윤 후보 측이 단일화를 대하는 자세가 권력분점과 타협을 통한 통합의 정치를 이루기 위한 진정성 있는 접근이냐, 아니면 오로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지분을 나눠 먹기 하는 생각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단일화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될 수 있습니다. 역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윤석열-안철수 단일화가 성공하기 위해선 진정성과 신뢰로 성공시킨 'DJP연합'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1997년 대선에서 DJP연합을 일궈낸 김대중, 김종필 당시 양당 총재가 환호하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윤석열-안철수 단일화가 성공하기 위해선 진정성과 신뢰로 성공시킨 'DJP연합'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1997년 대선에서 DJP연합을 일궈낸 김대중, 김종필 당시 양당 총재가 환호하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사실 역대 대선에서 공동정부론이 성공한 케이스는 후보 단일화 효과를 냈던 ‘DJP 연합’이 유일합니다. 김대중-김종필 ‘내각제 합의’로도 일컬어지는 이 ‘연대’ 전략은 1996년 4월 경 시작돼 2001년 중반까지 유지된 한국정치의 최대 히트작이었습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막판에 실패로 끝났고, 문재인-안철수 2012년 단일화는 성공을 했지만 대선에서 패배했기 때문에(안철수 대표의 선거 ‘태업’도 패인중의 하나였지만)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2022년 윤석열-안철수의 단일화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DJP 연합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열쇠는 바로 ‘진정성’과 ‘신뢰’였습니다. 최근 안철수 대표는 국민의힘과 공동정부론을 매개로 단일화를 한다고 해도 양 당의 정체성이 다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며 단일화 제안을 일단 거부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자민련 전 총재의 ‘연대’는 지금의 윤석열-안철수 조합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극과 극’이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좌극단’과 ‘우극단’ 세력 간의 결합이었습니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각제라는 확실한 배를 띄워놓고 거기에서 양쪽이 조타(操舵)를 나눠 맡는 방식으로 대선과 정권운영의 대해를 항해했습니다. 

윤석열 후보가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DJP 연합’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DJP 연합은 이번 대선처럼 선거 두 달여를 남겨두고 급조한 것이 아닌 대선 1년 8개월여 전부터 주도면밀하게 ‘궁합’을 이리저리 맞춘 장기 프로젝트였습니다.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는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1996년 5월 4일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단독회동을 갖고 신한국당이 4월 총선에서 이루어진 여소야대를 부정하고 야당에 대한 표적수사와 야당, 무소속 당선자 영입공작을 계속할 경우 15대 국회의 원 구성 거부를 포함한 7개항의 합의문을 발표했습니다(후광 김대중 평전 중에서). 이것이 DJP공조의 첫 시작입니다. 

그 뒤 김대중 총재는 김종필 총재와 함께 총선수호결의대회 참석, 양당의원 연석회의 주재(합동의원총회), 양당 당직자들과 만찬 등 한층 강화된 밀월관계를 이어나갔습니다. 두 당의 공조는 계속되어 1996년 8월에 실시된 서울 노원구청장 후보로 자민련의 김용채 전 의원을 단일후보로 선정하여 당선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대중 총재는 96년 4.11 총선 패배 책임론을 들고 나온 정대철 부총재의 제3후보론으로 퇴진압박을 받았고, 김근태 부총재로부터는 ‘내각제 개헌을 전제로 한 자민련과 후보단일화에 찬성할 수 없다’며 저항에 부딪혔지만 일관성 있게 DJP 공조를 유지시켜 나갔습니다. 

김대중 총재의 탁월한 집권전략과 진정성, 신뢰는 자당의 저항과 자민련의 불신을 누르는 기제로 작용했고 결국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의정부 조각 때 총리자리를 김종필 총재에게 선사했고, 6개 부처(재정경제·과학기술·환경·보건복지·건설교통·해양수산부) 장관을 자민련의 ‘몫’으로 넘겼습니다. 양당의 공조는 2001년 임동원 통일부장관 해임안이 통과된 이후 비로소 깨졌지만 1996년부터 2001년까지 극과 극의 정당이 한 배에서 연대와 협력을 하는 정치실험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그 밑바탕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양당 공조에 대한 확실한 의지와 신뢰가 깔려 있었습니다. 그것이 자민련을 이탈시키지 않는 유일한 제어장치였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지율 3%의 자민련 김종필 총재를 자신의 휘하에 ‘복속’시키려는 얄팍한 계략이 있었다면, 그래서 그 흉중의 본심이 언뜻언뜻 내비쳐졌다면 DJP 공조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를 현재의 윤석열 후보 상황에 비교해 보면 ‘3석’의 국민의당을 제1 거대야당 국민의힘이 어떤 진정성을 가지고 대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확연히 달라질 것입니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대철 김근태 부총재 등으로부터 단일화에 대한 거센 반대에 부딪혔던 것처럼, 윤석열 후보도 대표적인 단일화 반대론자들인 이준석 대표와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 등의 저항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일 것입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오른쪽)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2022 중소기업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오른쪽)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2022 중소기업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이 단일화를 추진한다면 ‘오만’과 ‘독주’라는 가장 큰 벽을 넘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현재 윤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어 단일화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지만 아직도 당 일각에서는 윤 후보 자력 승리 가능성에 더 큰 무게를 두는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보수 유튜버들 사이에서도 ‘윤석열 스타일과 페이스대로 끌고 가면 단독으로도 승리할 수 있다’는 주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준석 대표 또한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 상승을 일시적이라고 평가하며 “안 후보 측에서 (야권 단일화에) 굉장히 몸이 단 것으로 안다”며 안 후보의 존재감을 낮춰보고 있습니다. 보수층과 당 일각에서 피어오르는 단일화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오만함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카운터파트인 안철수 후보를 자극한다면 단일화는 시도조차도 안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윤석열 후보 본인의 의중과 의지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거의 2년여 동안 공동정부론을 매개로 일종의 ‘단일화’ 길을 부단하게 닦았습니다. 윤석열 후보가 과연 그런 인내심과 의지, 진정성을 끝까지 견지할지가 관건입니다. 정권교체가 오로지 지상목표라면 공동정부보다 훨씬 더한 결과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단일화 경쟁 시 안철수 후보가 윤 후보에 비해 우위에 있다는 결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만약 윤 후보가 단일화 승부에서 패배했다면 안 후보 손을 잡고 전국을 누비며 유세를 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윤 후보의 절체절명 정권교체 염원도 그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안철수 후보 또한 ‘오로지 내가 대통령’이라는 아집에서 벗어나 유연한 전략으로 임해야 합니다. ‘안철수’ 하면 단일화가 떠오른다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불쏘시개로만 작용했고 자신은 한 번도 단일화의 주역이 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또 단일화 펌프업만 시킨 뒤 철수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도 많이 나옵니다. 2012년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때 패배한 뒤 대선 유세 지원에 적극 협조하지 않는 등 패배에 승복하지 않는다는 이미지도 안 후보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왜 안철수는 선거 때만 되면 나와서 단일화 장사를 하느냐’는 부정적인 반응도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에야말로 단일화로 정권교체의 불씨를 살리고 그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해 국민들의 찬사와 존경을 받는 정치인으로 남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한국정치에서 단일화는 ‘연대’와 ‘통합’의 긍정적 의미보다 ‘야합’과 ‘분열’의 상징처럼 인식돼 왔습니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독단적인 정치행태가 횡행하다 보니 단일화 패배는 곧 모든 것을 잃는 루저로 인식돼 왔습니다. 김성식 전 의원은 정치권의 이런 승자 독식주의 행태를 일찍이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해 왔습니다. 그는 최근 대선후보 캠프의 영입제안을 거절하며 “정책연합이든 연립내각이든, 연정이란 상대방의 생각과 정책을 상당 부분 받아들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생각에 변화를 주고 자신의 권한을 나누겠다는 공개적인 대국민 약속이기에 지지 기반과 정책 공감대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후보 단일화라는 전략은 게임에서 지고 있는 경쟁자가 무리하게 ‘수’를 내는 발상에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생각은 약자를 이용해 모든 것을 가지겠다는 강자의 우월적 의식에서부터 나옵니다. 하지만 후보 단일화를, 부족한 나를 채우고 경쟁자와 동행하겠다는 공생의 발상에서부터 출발한다면 제2의 ‘DJP연합’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정치신인 윤석열 후보가 과연 김대중 전 대통령만이 유일하게 해낸 ‘단일화’의 난제를 풀 수 있을까요. 머리로 하지 않고 가슴으로 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성기노 전 일요신문 정치부장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고 창원고와 한양대, 런던대 골드스미스칼리지 석사(언론학)를 마치고 일요신문과 에너지경제 등에서 주로 정치 분야를 취재했다. 모 정치인의 언론특보로도 활동하며 정치현장도 경험한 바 있다. 2016년 인터넷신문 피처링(www.featuring.co.kr)을 창간해서 대표를 맡고 있고 플러스정치전략연구소 소장으로 정치평론 활동도 하고 있다. 정치개혁과 시민주권정치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주소는 newser@naver.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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