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에 강하지만 윤석열 ‘정권교체론 구도’엔 역부족
내생변수만으로 판 못 바꿔···파격적 외생변수 개발해야

여야의 대선 레이스가 박빙의 승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우세의 흐름을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맹추격하면서 양자 간의 지지율 격차는 1%포인트 안팎까지 좁혀지는 초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부 보수성향 언론사는 윤 후보의 오차범위 밖 우세결과를 발표하고 있기도 하지만 어느 누구도 확실한 우위를 장담하지 못하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입니다. 여야 모두 선대위가 구체적으로 세팅되면서 이제 본격적인 경쟁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후보가 국민의힘 대권주자로 깜짝 등장하자 이재명 후보는 한때 혼란에 빠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위기를 감지한 이 후보는 선대위를 대선주자 중심으로 갈아엎고 민감 이슈에 대해 실무진 위주의 정밀 단타 대응을 보여주면서 서서히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민주당 전략팀에서는 이 후보의 주말 ‘매타버스’(매주 타는 민생버스)가 전국을 누비며 대선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며 여기에 총력을 기울일 태세입니다. 이 후보의 젊고 역동적 행보가 점차 유권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자체 분석을 토대로 매주 빅이슈 위주의 아젠다를 던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민주당의 선거유세 전략이 국민의힘에 비해 매우 정밀하고 잘 짜인 기획이벤트의 느낌이 난다”라고 평가합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최근 강원도 시군 번영회장 간담회를 둘러싸고 논란을 야기한 것도 실무진들이 현장의 분위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대세론에 빠져 안일한 기획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는 각 시도단위별 팬클럽을 중심으로 미리 현장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철저하게 동선과 시간을 체크해 후보와 국민들 간 스킨십을 최대한 유도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선대위가 늦게 꾸려져 그런 점도 있지만 윤 후보의 유세방식이 너무 올드하고 구태의연하다는 내부 의견이 많다. 이준석 대표가 빨간 유세 후드티를 깜짝 공개하면서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윤 후보의 동선과 지역 이벤트가 행사를 위한 행사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아 현재 대책을 고심 중에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민주당은 현재 한달여 전 윤석열 후보가 급부상하면서 이재명 후보가 치명타를 입고 의기소침해 있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입니다. 전국을 돌며 ‘이재명 브랜드’ 알리기에 돌입한 이후 이 후보에 대한 선입견과 부정적인 인식도 일정 부분 희석돼 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후보의 ‘뚜벅이 바닥 훑기’가 지지율 상승효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때 오차범위까지 벌어졌던 윤 후보와의 지지율도 이제는 거의 동률로 좁혀졌습니다. 이 후보의 이런 ‘조용한 약진’에는 민주당과 이 후보 자신의 절박함이 얼어붙은 민심을 조금씩 녹이고 있는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이재명 후보의 디테일한 유세 전략과 현장 위주의 공감대 형성 접근은 대선 때까지 ‘이재명 바람’을 일으킬 폭풍의 핵이기도 합니다.
흔히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정치에도 적용됩니다. 스마트폰의 무궁무진한 발달로 대선을 두고 일어나는 거의 모든 사건과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국민들에게 전달되고 여과되어집니다. 이 후보는 디시인사이드 등 여론이 형성되는 온라인 커뮤니티도 수시로 방문해 ‘신고’를 하는 등 공중전과 지상백병전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후보 자신이 박학다식하고 모든 이슈에 호기심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디테일한 접근이 가능한 것입니다. 민주당에서는 실무진들도 잘 모르는 아이디어를 이 후보가 돌발적으로 내는 바람에 ‘소화’에 애를 먹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재명 후보가 디테일에 얼마나 강한지는 그가 공개석상에서 술술 내뱉는 각종 데이터와 통계 등을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역대 대선주자 가운데 이재명 후보가 유세에 가장 최적화된 주자다. 그는 유세의 지향점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현장에서 가장 순발력 있는 퍼포먼스를 보여 준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대선이 ‘디테일’에 의해 승부가 결정 날지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정치 천재’로 불리는 이재명 후보가 아무리 날고뛴다고 해도 그것이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일부 정치전문가들은 선거의 3요소, 구도 인물 이슈 가운데 ‘구도’를 이번 대선의 승부를 가르는 최고의 변수로 꼽기도 합니다. 5년마다 새로운 대통령을 뽑게 되면서 생기는 ‘변화’에 대한 근본적인 민심의 욕구와 집권여당이 웬만큼 국정운영 실적을 올리지 않는 이상 냉정하게 평가를 하는 미래지향적 여론이 합쳐지면서 대선은 인물이나 이슈보다 선거의 기저에 흐르는 일정한 변화욕구의 응축력이 승부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 정치전문가들은 대선을 석달 앞둔 현재의 지지율과 정권교체론 ‘구도’가 그대로 내년 3월 9일 본선에서도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 후보는 천운을 타고난 대권주자일 수도 있습니다. 윤 후보는 검사직만 26년을 해오면서 정치는 이제 갓 6개월 정도 경험한 신인 중의 신인입니다. 웬만한 국정이슈에 대해 이제 어느 정도 대략의 분위기를 얼핏얼핏 말할 수 있는 단계일 뿐 아직 자신만의 뚜렷한 국정운영 철학도 없는 편입니다. ‘디테일’로 따지면 이재명 후보에게 잽도 되지 않습니다. 민주당에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이준석 대표의 ‘상왕론’을 언급하는 것도 윤 후보가 그만큼 ‘디테일 정치’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허약한 토대 위에서도 윤 후보의 지지율은 철옹성처럼 강고합니다. 왜 그럴까요?
민심의 지향점이 이재명의 디테일이 아니라 윤석열의 구도에 손을 더 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이재명 후보가 지금까지 디테일로 승부를 걸었지만 대선이 임박해오면 윤석열의 정권교체 구도를 뒤집는 이재명만의 구도로 맞서야 한다는 뜻도 됩니다. 디테일이 구도를 쉽게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은 대선을 3개월 앞둔 현재의 윤석열 우세 지지율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잔매로 상대를 타격할 수는 있지만, 승부 자체를 뒤집을 수 없다면 그 잔매는 하나마나 한 때리기가 됩니다. 이런 점에서 이재명 후보의 판 자체를 뒤집는 ‘근본적인’ 승부수가 필요해보입니다.
이재명 후보의 ‘디테일’은 자생적인 내생변수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역대 대선에서 ‘내가 잘 나서’ 선거에 이긴 대통령은 거의 없습니다. 김영삼은 호랑이를 잡으러 3당 합당을 감행했고, 김대중은 김종필과의 DJP 연합으로, 노무현은 정몽준과의 단일화로, 이명박은 ‘묻지마 반노 정서’로, 박근혜는 박정희와 경제민주화의 절묘한 조화로, 문재인은 탄핵이라는 각각의 ‘외생변수’에 의해 권좌에 올랐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만약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승리한다면 그 배경으로 어떤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이재명 후보의 ‘3실’(실력 실천 실적)일까요, 아니면 ‘발전도상인’의 잠재력에 대한 기회부여일까요, 이도 저도 아니면 ‘윤석열’에 대한 반감 때문일까요?

윤석열 후보가 승리한다면 그 이유는 딱 하나 정권교체론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재명 후보는 무엇일까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이재명을 찍는 것에 대한 동기부여가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디테일에 강하고 인물 면에서 훨씬 낫다는 평가를 받는 이재명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한다면 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정권교체론일 것입니다. 이 후보는 출중한 능력에도 애먼 정권교체론에 밀려 다 차린 밥상을 윤석열 후보에게 통째로 갖다 바치는 셈입니다.
사실 이재명 후보가 디테일에 강하기는 하지만 자잘한 실책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줄리’에 대한 여권의 전방위적 분노 표출과 인신공격성 발언은 이재명 후보에게 그리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외모 비교를 해 ‘얼마나 잘 났기에’ 비난을 들은 손혜원 전 의원의 주장은 돌발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줄리 빨리 내 보내라’고 떼를 쓰는 민주당의 전략은 이재명 후보의 ‘과거 스캔들’만 유권자들 머릿속에 혼재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이 후보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 경제발전에는 공이 있다’고 발언한 것도 디테일에 너무 집착해 선을 넘은 실책으로 꼽힙니다. 이준석 대표가 “이재명 후보의 전두환 전 대통령 경제성과 발언에 대해 단순히 평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TK 지역의 표로 돌아오진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대목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이 후보는 디테일에 강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잘한 실수도 연발하면서 좀처럼 치고나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정권교체론이라는 지상최대의 강고한 구도로 무장한 윤석열 후보는 디테일은 거의 모르고 웬만한 실수도 ‘그냥 애교로 봐 주세요’ 하면서 얼렁뚱땅 넘어갑니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에게는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최근 이 후보가 ‘내가 윤석열 후보처럼 술을 마시고 다녔으면 뭐라고 했을까’라는 푸념을 하는 것도 윤 후보에게만(?) 한없이 너그러운 언론과 여론에 대한 서운함의 표출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윤 후보가 ‘싸나이’라서가 아니라 웬만한 내생변수와 디테일로는 바꿀 수 없는 대선의 고착화된 ‘구도’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 후보는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 근본적인 판의 구조를 흔들고 종국에는 그 판을 바꿔야 합니다. 일찍이 고 노회찬 전 의원이 말한 ‘삼겹살 불판’을 갈아야 하는 것처럼 대선의 판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대선을 앞두고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져야 합니다. 지금 이 상태로 가서 사상최초의 ‘발전도상인’ 대통령이 될 수도 있지만 문재인 정권에 대한 반감과 실정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3실’과 ‘발전도상인’이라는 내재적 강점으로 판을 바꿀 수는 없는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렵사리 정권재창출을 이뤘지만 ‘정몽준’이라는 외생변수가 없었으면 박빙의 승부에서 승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재명 후보도 ‘정몽준’급에 버금가는 파격적인 외생변수를 찾아야 합니다. 연립정부 수립에 준하는 제 정파간의 연대와 협력도 가능성 중의 하나입니다. 통합을 매개로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를 구시대 정치로 포위하는 전략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런 파격적인 외생변수 없이 이재명 후보의 승리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살을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 육참골단의 절박함 없이는 강고한 정권교체의 구도를 깨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부처님 손바닥’만 믿고 디테일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윤석열 후보를 잡는 길은 그 부처님의 손바닥을 뒤집는 길밖에 없습니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성기노 전 일요신문 정치부장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고 창원고와 한양대, 런던대 골드스미스칼리지 석사(언론학)를 마치고 일요신문과 에너지경제 등에서 주로 정치 분야를 취재했다. 모 정치인의 언론특보로도 활동하며 정치현장도 경험한 바 있다. 2016년 인터넷신문 피처링(www.featuring.co.kr)을 창간해서 대표를 맡고 있고 플러스정치전략연구소 소장으로 정치평론 활동도 하고 있다. 정치개혁과 시민주권정치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주소는 newser@naver.com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