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노의 정치언박싱]
부인 허위경력 의혹 보도 尹 반응, 아들 병역비리 의혹 이회창 태도 유사
폐쇄적 권위적 선대위 운영에 참모들 쓴소리 안해···李 선대위와 닮은꼴
토론기피 행보도 李 기시감···입 닫고 귀 여는 열린 리더십으로 승부해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시대준비위원회 사무실을 나서며 부인 김건희 씨의 '허위 이력' 논란과 관련한 질문을 하는 취재진을 바라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시대준비위원회 사무실을 나서며 부인 김건희 씨의 '허위 이력' 논란과 관련한 질문을 하는 취재진을 바라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부인 김건희 씨 허위 이력 의혹 등으로 위기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최근 대선후보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지난 3주간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지지율이 더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윤 후보의 지지율이 오차범위 밖에서 이 후보를 앞서기도 했지만 이제는 양자의 지지율이 역전되는 ‘골든크로스’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지지율 역전 현상의 배경에는 이재명 후보가 잘해서라기보다 윤석열 후보의 자책골 성격이 짙습니다. 윤 후보의 지지율에 ‘빨간불’이 들어온 결정적 계기는 지난 14일 YTN이 부인 김건희 씨의 허위경력 기재 의혹을 보도하면서부터였습니다. 

윤 후보의 허위경력 의혹 보도에 대한 첫 반응은 놀라웠습니다. 윤 후보는 극도로 흥분한 상태로 ‘일반교수직도 아니고 강사직에 대한 경력기재는 대학가의 일종의 관행’이라는 취지로 기자들을 나무라듯, 동의를 구하듯 열변을 토했습니다. ‘생사람 잡고 있다’는 식의 윤 후보 ‘태도’에 여론은 극도로 냉담하게 돌아갔습니다. 윤 후보는 ‘과격한’ 발언 이후 3일 만에 부인 김씨의 허위이력 논란에 대해 ‘사과’를 하며 급 조신모드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이미 ‘흉중’의 본심은 들켜버렸습니다. 여론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씨 수준으로 수사를 하라’는 질타를 쏟아냈습니다. 윤 후보가 부인 김씨 문제에 대해 공직자 26년의 경험으로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지극히 감정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습니다. 윤 후보가 도덕적으로 엄정해야 할 공직자의 자세를 강조하며 한껏 몸을 낮추었다면 국민의힘 선대위 분위기도 다르게 흘러갔을 것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윤 후보가 왜 YTN 보도 이후 첫 번째 대응 때 그렇게 ‘발끈’했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윤 후보가 며칠 만에 사과를 했던 것으로 봐서 그의 ‘적반하장’식 대응은 결정적 실책이었던 것이 드러났습니다. 윤 후보 자신이 ‘아내의 이력문제와 나의 국정운영 능력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진심으로 억울해했던 것이 ‘급발진’ 반응으로 나타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변 참모들이 ‘별 것 아닌데 너무 과장돼 있다’며 사건의 본질을 왜곡해서 보고했을 경우 윤 후보가 사태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조수진 전 공보단장은 국민의힘 공개회의에서 “후보의 말씀을 전해드리겠다. 아내에 대한 사과는 온전히 후보의 몫이고, 우리 당 의원들은 왜 안 도와주나”라는 취지로 윤 후보의 입장을 ‘마사지’해 내분의 불씨를 활활 지폈습니다. 당내에서는 “윤 후보가 벌써부터 대통령이 된 것처럼 행동하니까 밑에서 아부하는 사람들은 심기경호부터 한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이는 과거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보인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태도’와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 당시에도 선대위 관계자들은 ‘후보의 아들’ 문제에 대해 누구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하지 않고 후보 눈치만 보다가 민주당의 집중공격에 허망하게 무너진 꼴이 되었습니다. 당시 당내 토론에서도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 비리 문제는 ‘우리끼리의 문제’라며 쉬쉬하며 거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회창 후보 자신도 아들 병역 비리 문제를 너무 안일하고 가볍게 여겼고 민주당이 정치공세로만 치부하다가 결국은 치명타를 맞게 됐던 것입니다. 이번 김건희 씨 사건도 초기에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김건희 씨가 기자회견이라도 열어 정리를 한번 해줬으면 하는 심정이다”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연합뉴스

후보부인의 사적 영역인 데다 오래전 일이라 누구 하나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덮어두라’는 분위기가 결국은 화를 부른 것입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YTN 보도 전까지 후보 배우자를 전담하는 선대위 차원의 팀이 없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김씨에 대한 의혹이 나오면 그것을 왜 본인이나 윤석열 후보가 직접 나서서 항변을 하느냐. 어차피 후보 부인의 사생활이라고 해도 그것은 대선의 공적인 과정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팩트의 영역에서 진영의 영역으로 넘겨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애초에 그런 시스템이 전혀 없었으니 후보가 발끈하자 그냥 전부 꼬리를 내리고 어설프게 쉴드를 치다가 제대로 얻어맞은 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국민의힘 한 전직 고위 당직자는 “윤 후보가 자신에게 쓴소리를 하는 참모들은 의도적으로 싫어한다는 말들이 계속 나온다. 한번 찍히면 가까이 갈 수 없다고 한다. 폐쇄적이고 권위적으로 선대위를 운영하다 보니 참모들도 기가 죽어 절대 싫은 소리는 안 하려고 한다. 과거 이회창 선대위와 너무도 닮은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준석 대표가 선대위에서 탈퇴해 독자행보를 하며 장외에서 윤석열 후보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너무 한다’는 반응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지금 거의 유일하게 국민의힘에서 선대위와 윤석열 후보의 수직명령체계의 폐쇄성을 지적하는 것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윤 후보가 이렇게 부인 김건희 씨 사건으로 위기를 겪게 되면서 국민의힘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윤석열 특유의 자신감이 상실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사정기관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요즘 윤석열 후보를 보면 호랑이가 고양이처럼 돼가고 있는 것 같다. 거침없고 자신감 있는 언행이 본인의 장점이었는데 부인 문제로 무슨 일만 생기면 뒤로 빠지거나 뒤늦게 나타나 해결하는 척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국민들은 ‘윤석열 후보에게 나라를 맡기면 큰일 나겠다’며 무섭게 돌아설 수도 있다. 정권교체 여론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지금 같으면 윤 후보가 20%포인트는 앞서야 정상이다. 그런데 여당 후보에게 뒤지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불안한 시그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윤 후보가 이렇게 대선 국면을 주도해나가지 못하는 모습은 최근의 대선후보 양자토론 기피 발언으로 더욱 증폭되고 있습니다. 윤 후보는 최근 이재명 후보와의 양자 토론과 관련해 “정책 토론을 많이 하는 게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며 ‘TV 토론 무용론’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윤 후보의 ‘싸움밖에 되지 않는다’는 변명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자신의 ‘실언 리스크’를 의식해 비겁하게 정책토론을 피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권투를 하는 선수가 링에도 올라가려 하지 않고 바깥에서 고함만 지르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윤 후보의 이런 토론 기피 행보도 이회창 후보와 묘한 기시감을 주고 있습니다. 과거 이회창 후보도 대선을 앞두고 TV합동토론을 기피해 타 후보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997년 8월 이회창 후보는 TV토론 직후 MBC와 SBS 여론조사에서 35.2%, 32.0%를 기록해 TV토론 직전 여론조사의 지지율에서 2.7%, 16.9%가 빠져나갔던 뼈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 캠프 내부에서는 이 후보가 TV토론에서 아들들의 병역문제에 대해 ‘남 이야기’를 하듯 대처하거나 경선자금 액수(1억5000만원)를 단정적으로 밝히는 등 ‘말실수’가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1997년 7월 5일 경기도 수원 문예회관에서 열린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 후보자 합동연설회에 참석한 이회창 후보가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997년 7월 5일 경기도 수원 문예회관에서 열린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 후보자 합동연설회에 참석한 이회창 후보가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열리는 법정 토론회에만 응하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론은 윤 후보의 국정운영 능력을 검증해보고 싶어합니다. TV토론은 유권자들이 후보의 비전과 식견 등을 검증해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TBS 의뢰로 지난 17~1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7.7%가 “알 권리를 위해 토론회는 많을수록 좋다”고 답했습니다. 이런 국민의 부름에 윤 후보는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선대위 주류들은 정권교체 구도 필승론에 사로잡혀 ‘시간만 가라’는 태도를 언뜻언뜻 내비칩니다. 벌써부터 집권 뒤 구체적인 자리 ‘배정’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런 분위기는 아마 20여년 전 이회창 선대위에서 많이 본 듯한 모습니다. 당시 이회창 후보는 아들병역 문제나 차떼기 사건 등으로 매우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참모들은 대세론에만 집착했습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자’ ‘어떻게든 이 위기만 벗어나자’ ‘나머지는 정권 잡은 다음에 해나가면 된다’는 등의 기괴한 상황논리가 횡행했습니다. 당시 김영춘 원희룡 권택기 등의 미래연대 소장파 회원들은 2030위원회를 만들어 수시로 이회창 후보에게 전략방안을 보고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회창 후보가 사사건건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보고를 하러 갔던 김영춘 당시 본부장은 선대위만 다녀오면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는 전언도 있습니다. 2030위원회가 기획안을 올리기라도 하면 선대위는 갖은 이유로 거절하거나 보류시키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당 지도부는 “쓸데없는 일 좀 벌이지 말라”며 책망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현재 국민의힘에서 소장파 의원들이 독자적인 위원회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습니다. 선대위 일원화이긴 하지만 그들은 길들여진 고양이처럼 얌전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20년 전에는 젊은 의원들의 ‘튀는’ 행동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없습니다. 이준석 대표의 무책임한 선대위 퇴진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대세론에 빠져 있는 선대위 분위기에 쓴소리를 하는 의원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 작금의 국민의힘 현실입니다. 

오히려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윤석열 후보 중심론’이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은 최근 “국민의힘 집안싸움은 윤석열이 진짜 중심되면 쉽게 풀린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준석 대표를 비롯해 일각에서 계속 윤 후보의 리더십에 문제를 제기하자 선대위 주류는 ‘윤석열 중심론’으로 맞불을 놓으며 헤쳐 나가려고 합니다. 최근 당 내분의 본질이 윤 후보를 중심으로 뭉치지 못해 생긴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번 김건희 씨 사건과 당 내분 책임의 장본인은 바로 윤석열 후보 자신에게 있습니다. 윤 후보가 자신에게 쓴소리를 하는 사람은 멀리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그에게 아부하는 참모들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회창 대세론도 쓴소리는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불통의 리더십으로 무너졌습니다. 윤석열 후보중심론이 윤석열 맹신론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입니다. 입을 닫고 귀를 여는 열린 리더십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윤석열 후보가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대선 투표함이 개봉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성기노 전 일요신문 정치부장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고 창원고와 한양대, 런던대 골드스미스칼리지 석사(언론학)를 마치고 일요신문과 에너지경제 등에서 주로 정치 분야를 취재했다. 모 정치인의 언론특보로도 활동하며 정치현장도 경험한 바 있다. 2016년 인터넷신문 피처링(www.featuring.co.kr)을 창간해서 대표를 맡고 있고 플러스정치전략연구소 소장으로 정치평론 활동도 하고 있다. 정치개혁과 시민주권정치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주소는 newser@naver.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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