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문화권 국가 4곳, '인지증' '실지증' 등 부정적 인식 없는 단어로 변경
일반인·치매환자 대상 조사에서 40%, "'치매' 이름 때문에 거부감 느낀다"
지난 2006년부터 보건복지부 차원 노력있었지만, '지금까지도 해결 안돼'
올해 안에 ‘치매 용어 변경 검토’를 위한 인식도 조사, 정부 차원 시행 예정

'치매'라는 병명에 대해 논란이 뜨겁다. 어리석다는 뜻의 '치(痴)'와 미련하다는 뜻의 '매(呆)' 자를 사용해서다. 2020년 기준 국내 치매 환자는 80만여명에 달하는데, 모두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걸까. 또 환자와 가족들이 이 뜻을 정확히 알면 기분이 어떨까.

이 때문에 일본은 지난 2004년, 일찌감치 병명을 '인지증(認知症)'으로 바꿨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중국과 홍콩도 ‘뇌퇴화증(腦退化症)’으로 변경했고, 대만 역시 ‘실지증(失智症)’으로 개정했다.

단순히 병명의 뜻 때문에 부정적인 느낌을 받는 것은 아니다.

치매라는 용어가 주는 사회적 거부감은 치매의 조기 발견도 어렵게 만든다. 환자와 가족으로 하여금 '수치심'까지 느끼게 만들어, 관련 진료를 받기 꺼려지게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10대 학생들이나 20대 대학생 등 젊은층 사이에선 '너 치매 걸렸냐?'는 등, 치매라는 병명을 장난 섞인 말속에 비속어처럼 사용되기까지 한다. 

치매환자 40%, 병명에서 거부감 느껴

2014년,복지부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제3차 국가치매관리공합계획(2016~2020) 수립을 위한 사전기획연구 단계에서, '치매' 용어 변경 추진 여부에 대한 근거 마련을 위해, '치매 병명에 대한 인식 및 개정 욕구 조사'를 실시했다.

해당 조사에서 일반인 1,000명과 치매 유관 전문가 423명을 대상으로 ‘치매’ 용어에 대한 인식, 용어 변경 욕구, 대체 용어에 대한 선호도와 병명 개정을 통해서 기대되는 인식 개선 여부를 파악했다.

치매 병명에 대한 평소 인식 조사에서 40%가량에서 거부감을 느끼고 있음을 확인했다. 거부감을 느낀다고 응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 이유를 조사하니, ‘질환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45%로 가장 많았으며, 두 번째 이유로는 ‘질병이 불치병이라는 느낌 때문’, 다음으로 ‘질환에 대한 편견’, ‘환자를 비하하는 느낌(9%)’ 순이었다.

치매 병명 개정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

국내에선 이 '치매'라는 병명을 바꾸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지금까지도 변경은 되지 않은 상태다. 지난 2006년, 보건복지부(복지부)에서 치매 명칭 변경을 시도한 적이 있다. 2008년에 시행될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앞두고 추진했지만, 별다른 결실을 맺지 못 했다. 

이후 2011년 당시 성윤환 전 국회의원은 대체 용어로 '인지장애증'을 제안해 '치매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결국 용어 변경까진 이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2017년 5월, ‘치매국가책임제’가 도입되면서 치매에 대한 국민 관심이 높아져 병명을 개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다시 일었다. 정치권도 이에 동참하면서 용어 대체를 위한 법률개정안이 다시 발의됐다.

2017년 7월 17일 권미혁 전 국회의원은 ‘치매’라는 부정적인 용어의 사용이 질병에 대한 편견을 유발하고 환자 가족에게 모멸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치매’라는 용어를 ‘인지장애증(認知障碍症)’으로 변경하는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또한, 같은해 9월 29일 김성원 전 국회의원은 ‘치매’가 지니는 부정적인 의미가 조기 진단과 치료를 방해하는 원인이 되고 있으며 질병의 특징을 왜곡하고 있어 질병의 용어로 부적절하므로, ‘치매’라는 용어를 ‘인지저하증’으로 변경해 치매 환자 및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줄이고 질병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확산하고자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치매’를 대체할 수 있는 용어로 ‘인지장애증’과 ‘인지저하증’을 제안한 두 건의 개정법률안 모두 2년 이상 계류의안으로 머물다가 결국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이후 2021년 지금까지도 뚜렷한 병명 변경에 대한 개정안 등 어떤 법안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지난 '제3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16∼2020)'에서는 ‘치매’라는 병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가장 큰 요인이 명칭 자체가 아니라 질환이 가지는 어려움이라는 정부의 입장이 나왔다. 병명을 개정하더라도 치매의 치료 기술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인식개선 효과가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후 마땅한 대체용어가 없다는 결론과 함께 병명 개정은 보류됐고, 결국 '제3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16∼2020)'에 포함되지 못했다.

복지부는 지난 9월 제4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21~2025)을 확정 발표했다. 사회적 연대를 통한 치매포용국가 조성을 목표로 하는 이번 종합계획에 따르면, 복지부는 ‘치매’ 용어의 부정적 인식을 고려하여 올해에 ‘치매 용어 변경 검토’를 위한 인식도 조사를 시행할 예정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팩트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병명을 바꿀 용어도 신중해야 한다. 국회 차원에서 꾸준한 관심을 갖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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