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중순, 불문학자이자 미술사 전문가인 지인 J교수가 ‘봄동산’이라는 제목의 시집 한 권을 보내왔다. 저자는 올해 우리 나이 86세인 그녀의 어머니 조금분 여사다. 등단을 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추어 시인이자 사진작가로서, 그동안 쓰고 찍어둔 시와 사진을 모아 시집을 낸 것이다.그녀는 우리 나이로 70세 되던 해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체류하게 된 딸 J교수와 이메일을 주고받기 위해 인터넷을 처음 배우게 되었고, 우연히 알게 된 시 동호인 사이트에 가입을 하면서 시 습작을 하기 시작했다. 그 후에는 늘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다니
코로나 시국이 길어지면서 초중고나 대학을 막론하고 영상수업에 화상토론까지 진행되는 등 비대면, 비접촉의 시절이 지속되고 있다.대개 사람들은 직접 얼굴을 마주하면서 눈과 눈을 마주치며 마음을 툭 터놓고 대화를 해야 진정한 소통과 공감을 할 수 있다.그런데 코로나가 사람들의 대면접촉을 막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사람들의 스트레스도 가중되고 있다. 가수 유승범이 부른 노래 ‘질투’(1992)의 전반부는 이렇다.넌 대체 누굴 보고 있는 거야내가 지금 여기 눈앞에 서 있는데날 너무 기다리게 만들지 마웃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많은 것을 바라진
토미 리 존스, 로버트 드 니로, 신구, 안성기. 아마도 이들 배우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기도 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꽃미남 스타일은 아니지만, 지금도 할리우드와 충무로를 '주름잡는' 명연기자들이라는 것이다.공통점이 또 있다. 할리우드와 충무로를 '주름' 잡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얼굴에도 '주름'이 많이 잡혀있다는 것이다. 가장 어린(?) 안성기(1952년생)가 60대, 토미 리 존스(1946년생)와 로버트 드 니로(1943년생)가 70대, 신구(1936년생) 선생은 80대이다. 당연히 주
'냉면은 겨울이 제격'이니 어쩌니 해도 추운 겨울보다 더운 여름에 냉면은 많이 팔리기 마련이다. 내 생각도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냉면을 가위로 잘라 먹는 사람인데, "냉면 맛은 면발이 좌우하는데, 굳이 왜 잘라 먹냐?"며 역정을 내는 사람이 주위에 꼭 있다. 그런 이들은 나름 미식가를 자임하며 냉면의 고수임을 은근히, 아니 노골적으로 내세우곤 한다. 나는 미식가도 식도락가도 아니다. 그냥 맛있는 냉면과 그저 그런 냉면을 구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내 눈에는 음식마다 이것저것 꼬치꼬치 따져가며 먹는 사람은 여간 까탈스러워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최종회 시청률이 수도권 기준 30%를 넘기는 기록을 달성했다. 인기를 반영하듯 종영 후에 하이라이트만 모아서 두 번 더 방송할 예정이고, 원작인 영국 BBC 드라마 ‘닥터 포스터’도 서비스로 보여줄 모양이다.그런데 이런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 시청자들의 반응이 특이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남녀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드라마 자체에 대한 거부반응도 상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까지 드라마를 보는 역설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
일요일 오후처럼 좀 여유 있는 시간에 사람들은 뭘 할까? 나는 서울 집 근처 용산가족공원을 거쳐 공원과 한 울타리로 연결되어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를 한 번씩 산책하곤 한다. 이렇게 공원을 거닐고 박물관을 둘러보다 보면 주중에 쌓인 스트레스도 풀리고 어느 정도 재충전도 되고 기분이 상쾌해진다.공원과 박물관 경내 풍광은 늘 바뀐다. 계절별로 여러 가지 꽃들이 만개하여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얼마 전부터 박물관 뜰에는 복사꽃이 피기 시작했다. 내가 '마음 속 깊이 존경하는 선생님'이 몇 분 계신다. 그 중 한 분이 김인환(金仁煥
요즘 한옥에 대한 관심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관심의 범위도 관상(觀賞)의 수준을 넘어 실제 거주를 위한 생활 한옥으로까지 넓어지고 있다. 일반인도 이제는 한옥을 하나의 건축물이 아니라 문화사적 안목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아졌다.나는 어린 시절 한옥에서 자랐다. 8순이 넘은 우리 부모님은 여전히 시골에 살고 계시지만 한옥을 팔고 아파트로 거주지를 옮기신 지 오래다. 나 역시 서울에서 아파트에 살고 있고, 한옥으로 옮길 생각은 아직까지는 없다. 지금의 나에게 한옥은 먼 미래의 로망일 뿐이다.그러나 한 번씩 한옥 체험을 하면서
청록파 시인 중의 한 사람으로 유명한 박목월(1916-1978) 선생이 젊었을 적 이야기다.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 겨울 저녁, 단칸방에 사는 시인의 집에서 태어난 지 석 달된 여아가 무시로 울어 젖힌다. 선생이 도무지 시를 쓸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선생의 부인(유익순 여사)이 “옆집에 가서 놀다 올게” 하고는 둘째를 업고 바깥으로 나갔다.한참을 시작(詩作)에 몰두하던 시인이 밤이 늦었는데도 아내가 돌아오지 않자 자고 있던 여섯 살짜리 아들을 깨웠다. “통행금지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네 어머니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나가
아침에 버스를 타고 오면서 우연히 듣게 된 최백호의 ‘봄날은 간다’. 장사익도 잘 부르지만 최백호도 잘 부른다. 노래를 듣노라니 문득 ‘그리스 로마 신화’로 유명한 작가 이윤기 선생이 생각난다. 그는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나의 노래를 부르면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나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 내가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부르면 되지 않겠는가. 삶 또한 그렇다. 삶의 고수들이 도처에 수두룩하다. 그들의 삶 앞에 보면 나의 삶은 늘 초라하게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
시절이 하수상하다. 저녁안개 자욱한 숲속처럼 끝이 보이질 않는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지구촌은 아수라장이다. 바이러스의 직격탄을 맞은 곳이 한군데일까마는 영화관도 예외는 아니다. 아예 문을 닫거나 일부 몇 개 상영관을 문을 연 곳이 많다. 그나마 개점휴업상태다.나처럼 새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영화관으로 달려가거나, 심야영화를 포함해서 어떤 날은 하루 저녁에 영화 2, 3개 관람도 불사하는 영화광에게는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시절에 기분 전환용으로 한번 찾아 볼 만한 영화를 한편 소개할까 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며칠 전에 고향에 계신 엄마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 며칠 입원하여 응급처치를 받으신 엄마는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후유증을 예방하기 위해 정밀검진을 받기로 했다. 일단 아버지와 함께 앰뷸런스를 타고 서울의 큰 병원으로 먼저 올라가셨다.나는 문병을 왔던 가족들과 함께 자가용으로 뒤를 따랐다. 내 고향은 경남 하동이다. 섬진강 최하류에 위치해 있다. 나의 서울행은 하동읍에서 섬진강변을 따라 악양면 평사리 가는 길, 화개 쌍계사 가는 길, 구례 화엄사 가는 길을 따라 순조로웠다. 국도가 끝나고 순천 완주 고속도로에
TV조선의 ‘미스터 트롯’이 역대 예능 2위라는 엄청난 시청률(35.7%)을 기록하고 막을 내렸다. 지난 번 ‘미스 트롯’보다 더 큰 호응을 끌어내며 트로트 열풍을 끌어올리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엔카’의 영향을 받아 시작된 트로트가 왜 이렇게 국민들을 열광시키는 걸까?1980년대 초반 대입 재수생으로 노량진의 D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나는 당시 학원 영어 선생님의 말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내가 어제 어떤 집에 초대를 받았어요. 3000만 원 짜리 오디오 자랑을 하더라고. 그래서 무슨 노래를 듣는가 물었어. 아 글쎄 뽕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기생충'이 2019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데 이어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작품상, 국제영화상 그리고 감독상까지 4개 부문을 휩쓸면서 전 세계의 찬사를 받고 있다. BTS가 K-팝으로 한류를 견인하는 선봉장 노릇을 하고 있는 상황에 빗대, 봉준호 감독은 K-무비로 한류를 선도할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도 나온다.사람들은 주위에서 어떤 영화나 소설이 재미있다거나, 작품성이 있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든지, 그 영화에 천만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우리가 저와 같아서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일이 끝나 저물어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나는 돌아갈 뿐이다.삽 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샛강 바닥 썩은 물에달이 뜨는구나.우리가 저와 같아서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전문내가 정희성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건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이었다. 당시 '창작과 비평'사에서 시인의 두 번 째 시집 가 나
요즘 가장 핫한 칼럼니스트를 꼽으라면 단연 서울대 정치학부 김영민 교수일 것이다. 그는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학에서 정치사상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영화평론으로 등단까지 한 다방면으로 재주가 탁월하고 문장력도 뛰어난 실력 있는 학자다.그런 그가 지난 2018년 추석을 맞아 모 신문에 ‘추석이란 무엇인가’ 하는 칼럼으로 장안에 화제를 모으며 일약 당대 최고인기를 가진 대중적인 칼럼니스트가 됐다. 그는 예의 칼럼에서 이렇게 말한다. 좀 길지만 인용해본다.”추석을 맞아 모여든 친척들은 늘 그러했던 것처럼 당신의 근황에 과도한 관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에드가 드가(1834~1917)는 사진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인물의 동작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묘사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의 많은 그림들이 발레리나, 오케스트라 단원, 경마장 기수, 서커스 단원 등의 다이내믹한 동작을 소재로 한다.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 중에 (1879)이라는 그림이 있다. 그의 특기인 스냅사진을 연상시키는 역동성이 돋보인다. 턱관절의 악력만으로 외줄을 물고 버티는 라라의 모습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여성 서커스단원 라라양이 보여주는 목숨
‘의?식?주’ 3가지 중에서 재벌과 일반 서민 사이에 가장 평등한 게 무엇일까? 그건 바로 ‘식’(먹거리)이다. 고대광실 호화 주택에 살고, 세계 최고의 고급 브랜드로 옷을 입고 사는 재벌이라고 해도 하루 5끼를 먹고 살 수는 없다. 아무리 비싼 요리도 어쩌다가 먹어야 맛있지 매일 먹을 수는 없다.오늘 진주비빔밥과 눈물 젖은 빵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주인공은 LG그룹의 창업고문이었던 고 구두회(1928~2011) 회장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01년경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모 중국식당에서였다. 그는 공식 회의를 마치고
고향에서 감이 두 박스가 왔다. 양가 부모님께서 각각 보내주셨다. 농사를 짓지도 않는 분들이 자식들 먹으라고 굳이 감을 사서 보내주신 것이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옛말이 틀림이 없다.내 고향 경남 하동에는 특산물이 몇 개 있다. 지금은 명맥이 끊어진 것 같은데 옛날에는 하동 김이 유명했다. 김은 해태(海苔)라고도 하는데, 하동 해태는 임금님께 진상하는 김으로 유명했다. 또 하나가 하동 차(茶)다. 하동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차를 재배한 차의 시배지(始培地)라는 자부심이 있다. 대량으로 재배하는 다른 녹차들과는 달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그의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사랑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 이혼소송을 낸 최 회장의 요구를 묵살하며 이혼을 거부해온 노 관장이 재산분할 요구로 맞소송을 내면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노 관장은 그의 최근 자신의 심경을 페이스북에 공개하여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오늘은 노 관장의 글을 중심으로 최-노 커플의 사랑과 이별에 대하여 심리학적으로 풀어볼까 한다.먼저 그녀의 글부터 한번 살펴보자. 도합 380자로 된 그리 길지 않은 글이므로 전문을 인용한다.저의 지난 세월은 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