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 성격에 잦은 전학으로 친구 사귈 기회 적어 고독···경영으로 승화
창업주보다 더 공격적 혁신·도전 강조···목표 정해주고 과정엔 관여 안해

1987년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삼성그룹 회장 취임식 당시 사기를 흔드는 이건희 회장의 모습. / 삼성전자
1987년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삼성그룹 회장 취임식 당시 사기를 흔드는 이건희 회장의 모습. / 삼성전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지난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진 뒤 6년 만이다. 그의 별세 소식으로 생전 행보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인은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성그룹 후계자로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1987년 이병철 창업주가 별세한 이후, 이듬해 그룹 회장에 취임한 고인은 3년여간 눈에 띄는 활동은 손에 꼽을 정도로 조용히 지냈다고 한다. 1년에 두어 차례의 사장단 회의를 주재할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에 ‘수줍은 황제’라는 애칭까지 얻을 정도였다.

지금의 이건희 회장을 생각하면 연상되지 않지만, 그런 그가 재벌 총수로서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한 시기는 1993년부터다. 당시 여성경제신문 자매지 ‘우먼센스’는 1993년 6월호 기사 ‘삼성 이건희 회장 프라이버시 첫 공개’를 통해 경영 스타일뿐 아니라 개인적인 성향까지 놀라울 정도로 바뀐 이건희 회장에 대해 조명했다.

1993년 2월 미국 LA에서 전자 관련 회사 임원 23명을 참석시킨 가운데 호된 질책을 한 일화는 유명하다. “삼성 제품이 해외에서 어떤 대접을 받으며 팔리는지 직접 확인하라” “삼성 TV, VTR이 싸구려 대명사 같다” “조금 정신 차리면 된다고 착각하면 큰 오산이다. 심기일전하지 않으면 단번에 삼류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등 이 회장은 줄곧 심각한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삼성 제품의 경쟁력 약화에 대해 변명하는 듯한 보고를 한 임원은 “당장 나가라”는 호통을 들어야 했다.

3월 그룹의 최고경영자층 46명을 일본 도쿄로 모이게 해 장장 12시간 마라톤 회의를 주재해 “우리 땀이 밴 수출상품이 세계 진열대에서 먼지가 쌓여가는 모습을 볼 때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앞서 서글픈 생각이 든다”라며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삼성을 세계적 초일류기업으로 키우는 데 전력을 다하자”고 역설하기도 했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이건희 회장이 삼성 사장단과 주요 임원, 해외 주재원 등을 모은 가운데 '신경영 선언'을 하고 있다. / 삼성전자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이건희 회장이 삼성 사장단과 주요 임원, 해외 주재원 등을 모은 가운데 '신경영 선언'을 하고 있다. / 삼성전자

기사는 이 회장이 한 인사로부터 친구 관계에 관한 질문을 받고 답한 일화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친구가 없어졌어요. 학교 동기가 회사에서 전무, 부사장급인데… 삼성에도 2~3명은 있지만, 가끔 멀리서 볼 뿐 이야기해본 건 10년 전이에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만나도 질문과 대답 외엔 대화가 안돼요” 이 말을 하면서 이 회장은 다소 침울한 표정이었다고 한다.

이어서 그는 국민학교 때 전쟁 때문에 여러번 전학을 해 그렇잖아도 내성적인 자신에게 친구를 사귈 기회가 더 주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기사에서는 그러나 이 시기 이 회장의 움직임을 보면 내재된 고독을 기업경영에 대한 의욕과 야망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고 적고 있다.

이 회장은 이병철 창업주보다 공격적이라는 평을 들었다. 목표를 정하면 집요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 그러나 목표만 정해줄 뿐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는 가급적 간섭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기술 등 그의 애착이 특히 큰 분야에는 집요한 관심을 보였다.

‘5WHY 사고론’ ‘신경영 선언’ ‘제2의 디자인 혁명’ 등 혁신과 도전을 꾸준히 강조해온 이 회장은 그의 취임사 내용대로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라던 약속을 지켰다. 1987년 9000억원이던 시가총액은 이 회장 취임 이후 27년간 약 350배 가까이 뛰었다. 2014년 삼성의 시가총액은 318조 7634억원, 매출 338조 6000억원, 총자산 575조 1000억원을 기록했다.

이 회장 취임 후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배출한 역대 '월드 베스트' 제품은 총 9개다. 점유율 기준 스마트폰(2012년·SA), 스마트카드 IC(2006년·ABI), 모바일 CMOS 이미지 센서(2010년·TSR)와 매출액 기준 TV(2006년·디스플레이서치), 모니터(2007년·IDC), D램(1992년·아이서플라이), 낸드플래시(2002년·아이서플라이), 모바일AP(2006년·SA)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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