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오건해, 한국혁명여성동맹 활동

여성경제신문·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공동 기획

광복 75주년 기념 ‘오늘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희생과 헌신으로 나라를 지켰던 항일독립운동가는 300여만 명. 그러나 2019년 기준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1만 5825명, 이들 중 여성독립운동가는 3%인 472명에 불과하다.

여성경제신문은 광복 75주년을 맞아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유관순 열사와 같이 또렷이 기억해야 할 항일여성독립운동가 75분을 1차로 8월부터 10월까지 소개한다.

아울러 항일 운동이 활발히 펼쳐졌던 미국에서 그분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기 위한 초상화 전시회가 국가보훈처 후원으로 10월 중 열릴 예정이다.

오건해_이병철作 /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오건해_이병철作 /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오건해 吳健海 (1894~1963)

운동계열 : 중국 방면   |   훈격(서훈년도) : 애족장(2017)

신건식(독립장, 1977)과 부부 독립운동가로 잘 알려진 오건해 선생. 그녀는 임시정부의 안살림과 독립운동가를 지원하는데 정성을 다했다고 알려졌다. 사위 박영준(독립장, 1977)은 선생을 두고 “독립운동가치고 그녀의 음식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 솜씨가 좋았다. 오건해 여사는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에 평생을 보낸 분”으로 회고하기도 했다.

1937년경 병약해진 이동녕의 병환 치료에 정성을 다했고, 만주에 가족을 두고 홀로 충칭으로 와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박찬익의 뒷바라지에도 힘썼다. 1938년 5월 장사에 있는 남목청에서 3당 통일회의가 열리고 있을 때 이운한의 저격을 받아 중상을 입은 김구 선생이 병원에서 퇴원한 뒤, 홀로 임시정부를 이끌었을 때 역시 오 선생이 모든 숙식을 맡아 보살폈다고 한다.

비단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에만 그치지 않았다. 1940년 6월 17일 충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이 창립되자 이에 참가하였고, 1942년부터 한국독립당원으로 참가하여 활동했다.

광복 후 딸 순호(애국장, 1990)의 집에서 함께 생활했다. 그러던 중 신건식은 일제강점기 자신을 고문하던 친일인사가 해방된 조국의 국회의사당 문지기가 되어 있는 사실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며 살다가 1963년 사망한 남편의 뒤를 따라 선생 역시 안타깝게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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