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끝 김종인 위원장 "응할 수도"…가능성 고개
격 따지지 말고 당장 만나 난국 타개 머리 맞대야

청와대와 미래통합당이 여야 영수회담 개최를 두고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포문은 청와대가 먼저 열었습니다. 최근 최재성 신임 청와대 정무수석이 브리핑에서 “13일 김종인 위원장을 예방해 대통령 초청 의사를 밝혔으나 통합당이 16일 불가함을 알려 왔다”고 공개하며 통합당을 넌지시 비판했습니다. 이에 통합당 김은혜 대변인은 “공식 제안한 적이 없다”고 즉각 반발했습니다. 청와대의 대화 제의를 야당이 걷어찬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즉각 반박을 했습니다. 그 뒤 이 논란이 사그라드는 듯하다가 김종인 위원장이 “응할 수도 있다”고 밝히면서 다시 영수회담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영수회담이란 국가나 정치 단체 또는 어떤 사회 조직의 최고 우두머리가 서로 만나서 의제를 가지고 말을 나눈다는 뜻입니다. 영수(領袖)는 본래 옷깃과 옷소매를 말하는데 그 유래가 재미있어 소개해봅니다. 여야의 대표를 표현하는 ‘영수’에 옷깃과 소매가 등장하는 건 고대 중국의 전통에서 유래합니다. 옛날 중국에서는 옷을 만들 때 신체 접촉이 잦은 옷깃과 소매에 두터운 옷감을 쓰는 일이 흔했다고 합니다. 고관대작은 금 등을 덧대기도 했습니다. 고급관리들이 입는 옷의 옷깃과 소매는 화려한 장식이 더해졌습니다. 이후 영수라는 말은 지도자를 뜻하는 것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영수회담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지만 일부 언론에서 관행적으로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한국 정치에서 영수회담은 주로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과 야당 총재(지금은 대표)의 1:1 회담을 뜻하는 제한적인 의미의 단어로 대부분 쓰였습니다. 과거에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론에서 이에 적합한 단어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영수회담’이라는 단어 속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종인 위원장간의 샅바싸움 배경이 숨어있습니다. 사실 여당 야당 대표간의 회동을 영수회담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여야대표 회동이죠. 그런데 영수회담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대통령과 야당 대표간의 단독 회동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여당 대표와 야당 대표의 회동도 엄연히 ‘영수’끼리 진행되는 회담이긴 하지만 이를 두고 ‘영수회담’이라고 칭하지는 않습니다. 왜일까요?
바로 여권 내의 권력 서열 때문입니다. 야당 대표는 현재의 김종인 위원장이 1인자이지만 여당에서는 이해찬 대표가 명목상으로는 1인자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권력구도에서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1인자입니다. 엄연히 여권 내 권력 1인자가 있기 때문에 영수회담이라는 단어를 ‘감히’ 쓰지 않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관례상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도 겸했지만 이제는 당청이 분리돼 대통령은 여당의 대표가 아니라 그냥 평당원에 불과합니다. 옛날처럼 여당총재로서 당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평당원’을 끈으로 여당에도 일정정도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이 정치적 난국에 처할 때 야당의 총재들을 모아 회담하여 국정을 풀어가는 것이 정치적 관례였습니다. 특히 대통령과 야권의 실질적 리더인 야당대표간의 단독회담이 ‘영수회담’이라는 이름으로 가끔 개최되고는 했습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야당대표와의 영수회담이 총 3차례 있었습니다. 18년 집권에 비하면 참으로 빈도가 낮은 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독재로 일관했기 때문에 야당과의 협력이 굳이 필요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1965년 7월 20일 박정희-박순천(민중당), 1975년 5월 21일 박정희-김영삼(신민당), 1977년 5월 27일 박정희–이철승(신민당) 이렇게 3차례였습니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총 8회 열렸습니다. 역시 상인의 현실감각을 지닌 김대중 대통령다운 정국 운영입니다. 8회 모두 1:1회담의 대상이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습니다. 이 영수회담에서의 협상 결과로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피선거권이 제한당했던 홍준표 당시 전 의원이 사면 및 복권되었습니다. 영수회담이 실질적인 결과물을 낸 경우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여덟 차례나 이회창 대표를 ‘만나준 것은’ 역시 그가 차기 집권이 유력한 대권주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대우를 해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참여정부에서는 총 2회 열렸습니다. 2005년 9월 7일 외 1회로 노무현–박근혜(한나라당)가 그 주역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도 총 3회 열렸습니다. 2008년 5월 20일 이명박-손학규(통합민주당), 2008년 9월 25일 이명박-정세균(통합민주당), 2011년 이명박–손학규(민주당) 이렇게 열렸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1:1 영수회담 기록이 전무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철저하게 1:1 회동을 하지 않고, 여당 대표를 포함하여 만나는 3자 회담이나 5자 회담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8년 4월 13일 문재인–홍준표(자유한국당) 영수회담을 딱 한 차례 했습니다. 홍준표 대표는 2017년 자유한국당 당대표로 선출되자마자 영수회담은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그래서 임기 초반 여러 번 있었던 대통령+원내 5당 대표 모임 등에도 당연히(?) 불출석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2018년 4월 13일 문재인 대통령과 1:1 영수회담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지난 2019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영수회담’을 요구했지만 청와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문제가 출발합니다. 청와대 입장에서 볼 때,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이 당연히 국가의 수반으로 대우받길 원합니다. 오로지 1인입니다. 그런데 야당 대표들은 동등한 대우를 요구합니다. 대통령 입장에서 볼 때, 특히 국정을 통할하는 입장에서 볼 때 아무리 제1야당의 대표라고 해도 1:1로 만나줄 이유가 없습니다. 대통령과 마주앉게 된 바로 그 순간, 야당 대표는 ‘대통령급’으로 올라갑니다. 이것은 청와대 입장에서 볼 때 ‘격’에 맞지 않습니다. 더구나 황교안 전 대표처럼 야당 지도자임에도 국민적 인기가 대통령보다 못할 때 굳이 더 만나줄 이유가 없습니다.
청와대가 김종인 위원장과의 영수회담에 대해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협의에 착수해보자’고 한 것은 최근의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 추세와 코로나19의 대유행 조짐이 복합적으로 빚어낸, 고육지책으로 보입니다. 사실 청와대 입장에서는 김 위원장이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도 아니고, 또 한때 문재인 대통령 밑에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일했던 ‘아랫사람’이기 때문에 굳이 만나줄 이유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영수회담에 응해보려는 것은 현재의 정국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이에 야당이 영수회담에 쉽사리 응할 수 없는 것은 코로나 정국 책임론의 여권 물타기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정치권은 ‘격’에 너무 연연해 왔습니다. 야당 대표 입장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당연히 1:1 만남을 요구합니다. 반면 청와대 입장에서 볼 때 굳이 야당 대표를 대통령과 대좌하는 국정의 최고지도자급으로 끌어올려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기싸움이 꽉 막힌 정국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국난을 극복하는 데 여야의 지위고하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여야의 대표자들이 마주 앉아(대통령이 여당 대표가 아니기 때문에 그럴 이유가 없다고 청와대나 여당은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대통령이 여당의 엄연한 대표라고 봐야 합니다) 국가적 난제를 협의하고 토론하고 또 쟁점을 타결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요?
전쟁 중에도 적과는 물밑으로 협상을 합니다. 하물며 국내 정치인들끼리 못 만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명분과 격에 꽉 막혀, 그 거추장스러운 옷깃과 소매 때문에, 한국 정치는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고 있지 못합니다. 여야 지도자들은 지금 당장 만나서, 코로나로 폐업 도산하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는 이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 이마를 맞대야 하지 않을까요? 문재인 대통령부터 그 두꺼운 소매를 걷어붙여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