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 자산 관리 논의 확산
공공후견사업 실효성 부족 지적
“법원·지자체 분담, 상호 보완 필요”

치매 환자의 의사결정 지원과 자산 보호를 위한 후견제도가 시행된 지 7년이 지났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치매 환자의 의사결정 지원과 자산 보호를 위한 후견제도가 시행된 지 7년이 지났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치매 환자의 의사결정 지원과 자산 보호를 위한 후견제도가 시행된 지 7년이 지났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12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치매 어르신의 자산 관리를 지원하기 위한 공공후견사업이 존재하지만 현장에서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후견 행정의 실행 주체를 재정비해야 한다”며 법원은 사법 판단에 집중하고 지자체가 후견 행정업무를 전담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치매 공공후견사업은 정부가 법원의 성년후견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행정 지원 사업으로 치매 노인이 직접 후견인을 선임하기 어려운 경우 지자체가 후견 절차를 지원하는 구조다. 성년후견제도는 장애·질병·노령 등으로 인해 사무 처리 능력에 도움이 필요한 성인에게 가정법원 결정 또는 후견 계약으로 선임된 후견인이 재산 관리와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제도다.

‘치매머니’로 불리는 고령 치매 환자 자산이 2050년 5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면서 이들의 자산 관리 방안이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 7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은 ‘치매 어르신 자산의 안심 관리를 위한 정책 방안’을 주제로 제12차 인구 전략 공동 포럼을 열었다.

포럼에서는 치매 발병 전후를 아우르는 통합적 재산 관리 체계와 후견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사전 후견 의향서 작성 유도, 공공후견인 양성 지원, 성년후견지원신탁 제도화 등을 과제로 꼽았다.

현장에서는 공공후견사업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도권 한 치매안심센터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공공후견사업은 이미 실효성을 잃고 치매 환자는 지자체 복지 사례 관리의 일부로 흡수된 상태”라며 “지금 더 시급한 건 일반 시민들이 후견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없다는 점이다. 치매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보편적으로 상담받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일본식 ‘성년후견지원센터’ 모델이 훨씬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전문성이 부족한 치매안심센터가 공공후견사업을 맡게 된 구조 자체가 한계로 지적된다. 후견 업무의 행정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선 장기적으로 지자체의 역할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냅킨AI,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전문성이 부족한 치매안심센터가 공공후견사업을 맡게 된 구조 자체가 한계로 지적된다. 후견 업무의 행정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선 장기적으로 지자체의 역할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냅킨AI,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전문성이 부족한 치매안심센터가 공공후견사업을 맡게 된 구조 자체가 한계로 지적된다. 후견 업무의 행정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선 장기적으로 지자체의 역할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배광열 사단법인 온율 변호사는 여성경제신문에 “치매안심센터는 본래 의료적 관리 중심의 보건 조직으로 복지나 법률 지원은 전문 영역이 아니다. 또 후견 업무는 안심센터 업무 중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해 현장에서는 부수적 업무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논의 중인 치매머니 공공신탁도 법률·금융 지식이 필요한 영역인데 공공후견과 비슷한 모습이 되풀이될 우려가 든다”고 덧붙였다.

지자체 중심의 성년후견지원센터 신설 방안에 대해서는 회의적 입장을 보였다. 배 변호사는 “결국 지자체 안에서 누가 이 일을 맡을 것인가의 문제”라며 “치매공공후견에 대해서는 치매안심센터가 맡는 것으로 결정됐는데 잘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자체 안에 이 일을 더 잘할 담당 부서를 찾는 건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역시 지자체 중심 후견센터를 추진했지만 아직까지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일본의 ‘시민후견’은 후견인 선임에 대한 비용을 복지 예산에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한국처럼 체계적 공공후견인 양성과 지원 시스템을 갖춘 모델과는 다르다는 설명이다.

이어 “영국은 법무부 산하 독립기관인 공공후견청이 후견인에 대한 관리, 감독 등 후견 행정업무를 운영한다. 독일은 법원과 지자체, 민간이 후견 행정업무를 분담하는 상호 보완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소개했다. 즉 후견과 관련한 업무를 법원, 지자체 혹은 정부가 구분해 분담하고 있는 것이다. 배 변호사는 “한국도 장기적으로 법원은 후견과 관련한 사법적인 판단에 집중하고 지자체가 후견 행정업무를 전담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또 개인 위주의 공공후견 구조를 법인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정신질환자 공공후견은 두 개 법인이 480건 이상을 맡아 전문성과 지속성을 확보했지만 치매 공공후견은 개인 후견인 중심으로 운영돼 전문성 축적이 어렵다”며 “치매 분야도 법인 중심 구조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사업 도입 당시부터 법인 설립과 예산 투입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적절한 법인을 발굴하고 양성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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